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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中 선교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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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선교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1832-1905)는 1832년 5월 21일에 영국 요크셔주 반슬레에서 태어나 평생을 중국선교를 위해 스스로 중국인을 자처한 열정의 선교사였습니다. “수억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 매시간 1000명이 죽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선교했습니다.

23세의 나이로 중국에 선교사로 온 테일러를 보려고 현지의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신사복 정장 차림이 그들에게는 큰 구경꺼리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씀을 전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바지의 주름과 상의의 단추와 그의 땋은 머리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들이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은 단순했지만 열정이 넘쳤습니다.

그는 중국인 모습으로 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길고 헐거운 중국옷을 사고 머리털을 상당한 부분 밀고 남은 머리털은 엷은 갈색 머리털을 검게 물들여 길게 땋아 늘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선교사들에게 혐오감과 두려움이 될 것이며 중국에 나와 있는 영국 영사(領事)나 중국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사업가들이 분노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양식 복장이야말로 그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아주 좋은 표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하나님의 분명한 소명을 받은 자로서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처음 머리를 염색하려 염료혼합을 시험하다 암모니아 병이 터져 산(酸)이 그의 얼굴에 쏟아졌습니다. 다행이도 그가 끼고 있던 안경이 그의 눈을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는 머리를 밀고 남은 머리털을 땋았습니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그가 ‘서양 도깨비’의 경멸스러운 옷 대신 품위 있는 중국옷을 입은 점잖은 손님으로 취급해 주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1년에 네 번 적은 액수의 봉급을 받기로 선교회와 계약한 후 파송을 받아 중국으로 왔었지만 ‘중국복음화협회’라는 선교회는 재정 상태가 취약했기 때문에 종종 봉급을 보내지 않거나 봉급을 삭감하여 보내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여러 선교지역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놀라운 진리를 깊이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역의 원동력은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북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호주, 뉴질랜드에 중국선교회 지부가 설립되고, 이렇게 하여 한 때 중국에 모여든 선교사는 1천명을 넘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선교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 지방에 이르자 성문 위에서 금빛으로 ‘내륙 은인’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여러 선교 본부를 방문한 후 그는 이전에 배타적인 지방이었던 호남의 지방도시 ‘장사’에 도착하여 73살의 나이로 일생을 마칠 때 까지 열정적인 전도자로 일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욘 1:2]

- 정충영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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