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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울지마 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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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의 사제 이태석의 사랑이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지천으로 깔린 톤즈의 병든자들을 위해 그는 
비록 12칸의 한국 보건소 수준의 클리닉이지만 소중한 병원을 만들었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톤즈의 청소년들을 위해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12년 과정의 돈 보스코 학교를 열었습니다. 
전쟁으로 정서가 고갈된 이들을 위해 서른 다섯 명으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한센 병 환자들의 마을을 찾아 무너지고 닳아빠진 하나 하나의 발들의 
치수를 재어 맞춤 샌들을 만들어 신겨줍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일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실천은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는 그가 이 톤즈의 선교사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이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처음 그곳에 단기 선교를 갔다가 다시 그곳에 장기 선교사로 돌아온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톤즈에서 열흘을 지난 뒤 떠나오며 서품을 받은 후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강한 다짐을 가지게 한 것은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인간적인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살아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있어주며 사랑을 나누는 자리, 
거기에서 우리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언약하신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울지마 톤즈>다큐 영화는 마지막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저는 마지막 대목에서 극장인 것을 잊고 거의 오열할 뻔 했습니다. 

사제 이태석은 잠시 휴가로 한국에 나왔다가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습니다. 
그는 암 판정을 받고도 톤즈 선교 사역을 후원하는 음악회를 열고 활동을 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로 48세를 일기로 
그는 작년 2010년 1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병석에서도 온통 톤즈 생각 뿐 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끼는 사람들이 마지막 의식으로 그의 장례 후 이태석 신부의 장례식 광경을 담은 
비디오와 영정 모습을 갖고 아프리카 톤즈로 떠납니다. 

-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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