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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간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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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연 (소설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러시아의 소설 '시간을 정복하는 사나이'는 곤충학자였던 류비세프라는 실제 인물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시간통계법을 사용해 얼마나 쓰고, 읽고, 일할 수 있는가를 시험했습니다. 일생을 통해 일기를 썼는데, 전부 짤막한 시간에 대한 명세표였습니다.

"곤충분류학- 3시간15분. 나방을 감정함-20분. 보충업무- 2시간25분."

그는 그날그날 얼마나 일했는지 기본 업무 총계를 냈습니다. 시간을 통제해서 사용했으므로, 시간이 배로 늘어나 언제나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잠은 10시간 가량 잤으며, 70여권의 학술서적을 발표했고, 편지는 283통이나 썼습니다.

저는 시간을 잡아두려는 듯이 색색의 크고 작은 포스트잇에 메모합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성경 구절을, 책 속의 좋은 구절을 적습니다. 몸에 좋다는 식품도 기록해둡니다. 어느 때는 돈만 있으면 해결이 될 항목들이 유독 많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앞날이 막막할 때는 메모판 앞에 우두커니 서서 습관적으로 한참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짤막한 기록들은 벽에 붙어 있는 구실을 하려는 듯 주인에게 무얼 놓쳤는지를 환히 보여줍니다. 밤바다의 등대처럼 빛을 비쳐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색색의 메모지들을 벽에서 떼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지난날의 추억이, 전화번호가, 물건이 날듯이 가볍게 떨어집니다. 삶의 자취, 종이쪽지를 버릴 때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뿐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밀림 속으로 다시 헤치고 들어갑니다. 산적한 짐을 등에 지고, 이 속도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다시 무엇인가를 기록합니다.

잊어버리라. 사랑하라. 깨어나라. 다시 시작하라. 믿으라.

대개 이런 글을 반복해 쓴 것 같습니다. 쓰고 버리고 하는 사이사이, 세월은 흘러갑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축제와 같았던 시간들이, 불꽃 같았던 열정의 시간들이 가슴에 떨어져 쌓입니다.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 변화를 겪었던 창조적인 카이로스적인 시간만이 저 깊은 곳에서 별빛처럼 빛납니다. 우리는 시간을 사랑하면서, 목숨을 사랑하면서, 영원히 살 것을 믿으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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