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이태백의 눈물

첨부 1


- 김상근(연세대 교수)

‘이태백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여기서 이태백이란 ‘이십대 태반이 백수’란 말을 줄인 것이다. 이 촌철살인의 경구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이 땅의 대표적 실업자 세대인 20대를 싸잡아 골려주기 위한 말장난도 아니다. 20대의 명민한 청년들을 모아놓고 매일 그 앞에서 강의하는 나로서는 ‘이태백’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무릇 한 시대의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의 패기와 기상을 보면 될 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20대는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냉소적인 표현조차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더 이상 격분하거나 모순된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냉혹한 현실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 땅의 20대를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허겁지겁, 동분서주, 좌충우돌, 좌고우면, 노심초사 등이다. 토익 공부에 목숨을 걸고, 외국대학 교환학생과 무급이나마 인턴십은 기본. 각종 공모전에 기웃거리며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 넣으려는 이태백의 노력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이태백의 눈물은 다 말라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들로 하여금 울지 못하도록, 언감생심 눈물 흘리며 분노의 어금니를 깨물지 못하도록, 있는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이들로 하여금 눈물짓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경제구조는 이태백의 강요된 침묵을 전(全)지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운데 어느 정신 나간 자본가가 한국의 비싼 대학졸업 인력을 사용할 것인가? 중국에, 베트남에, 개성공단에 값싼 인력들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노동조합과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쓸데없이 정규직 사원을 뽑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은 이태백에게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는다. 왜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이태백은 정치세력화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의 이태백은 생존의 절박함 때문에 정치에 특별한 관심도 없다. 구름 잡는 헛공약을 남발해도 모두들 그러려니할 뿐이다. 나는 아무렇게 내버려둬도 꼼짝 못할 만큼 대한민국의 이태백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킨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그저 그들의 정치적 단견(短見)이 놀라울 뿐이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이 땅의 이태백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이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 삼아 정권 수호 혹은 탈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 땅의 정치인들을 위해 나는 기도한다. 오 주님, 이들을 용서하소서.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