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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의 주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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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스나이더

교회 건물에 왜 그렇게 많은 재정적 물질적 신경을 쏟아야 합니까. 어떤 성도가 던진 질문이다. 흥미롭게도 교회사를 보면 교회의 부흥과 건물 소유는 반비례했다. 교회 성장이 더디거나 쇠퇴할 때 건물 소유가 강조됐다. 반면 교회가 급성장할 때는 건물이 덜 강조되고 실용성과 융통성을 지향해 어디서든 모였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그 자신에게서 성전의 의미와 기능이 성취됐다고 주장하셨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물리적 성전은 이제 신학적으로 불필요하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 성령 강림을 통해 신앙공동체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오순절 이후부터는 건물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거처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제자 공동체 안의 '장막'과 '성전'에 거하신다.

그렇다면 왜 건물에 관심을 쏟는가. 교회 사역을 위해 가끔 체육시설만큼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이 건축에 대한 압박을 받기도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건물이 '하나님의 집' 즉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된 성스런 곳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사실 많은 교회 건물들이 건축양식과 용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시각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왜곡할 수 있고, 건물과 예산에 지나친 강조점을 두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그러다 보면 성경이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성(코이노니아), 즉 주일 교회 안에서의 몇 시간이 아니라 주중 내내 이뤄져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교제가 쉽게 흐려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성령 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건물 없이 가정 교회들이 그물망을 형성한 가운데 부흥했다. 신약성경의 기록자들 가운데 건물이 없다고 불평한 사람은 없었다.

예수님 중심 교회는 우선 순위를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건물을 일주일 내내 사용하는 다용도 시설로 전환한다든가, 시설물을 다른 단체나 교회와 함께 사용할 수도 있고, 또는 교회 기능을 가정집이나 다른 모임 장소로 옮길 수도 있다. 일부 교회는 자신들의 부동산을 팔아 그 돈을 선교와 빈민 구제 사역에 투자하는 것이 아주 좋은 대안임을 발견했다. 그 경우 장기적 이익은 훨씬 크다. 이 점은 교회 갱신의 징후이기도 하다.

예배를 약화시키라는 뜻은 아니다. 건물 벽 안에서의 일에 온통 신경쓸 때 쉽게 상실할 수 있는 예배의 외적이고 선교적인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뜻이다. 활기찬 교회들은 대개 인건비와 시설비보다는 선교 전도 사회정의와 구제 사역 등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번역=김춘섭 예수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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