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행복한 눈물

첨부 1


- 김상근(연세대 교수)

2005년 겨울로 기억된다. 유난히 따뜻했던 그해 겨울, 나는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르네상스 미술이 날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고향은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피렌체이다. 여기서 미켈란젤로가 나왔으며, 다빈치,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이 '꽃의 도시'란 뜻의 피렌체에서 찬란한 천재성을 꽃피웠다.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의 박물관이지만, 진짜 명품들은 우피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소장돼 있는 곳이다. 일찍 우피치 관람을 마친 나는 아르노 강을 건너 피티 궁전 미술관을 찾았다. 우피치와 쌍벽을 이루는 피티 미술관은 피렌체의 명문가였던 메디치 가문이 사용하던 거대한 궁전으로, 지금은 건물 전체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피티 궁전 미술관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놀랍게도 그 유명한 미술관 외벽을 삼성의 휴대전화 광고가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 강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압도하는 충격적인 광고 현수막이었다. 삼성이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이기로서니 피티 궁전 미술관의 외벽을 뒤덮는 광고를 내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한국 사람으로서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삼성이라는 세계적 기업이 한국의 기업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삼성은 휴대전화 광고 현수막으로 피티 미술관의 외벽을 도배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 건물의 주인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정신을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재벌이었다. 금융업을 통해 피렌체 최고의 재벌가문으로 성장했지만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늘 자기 분수를 지켰다. 그들은 피렌체의 거리에서 절대 말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한 가문의 결정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자진하여 보통 시민들보다 더 많은 누진세금을 바쳤다. 많이 가진 자의 의무를 충실히 다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엄청난 재산으로 사 모은 모든 예술품은 현재 피렌체 시민의 소유이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 소장품 전체를 피렌체 시에 단 한 개의 조건을 걸고 모두 기증했다. 그 조건은 어떤 예술품도 외부로 매각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메디치 가문 덕분에 르네상스 명작을 소유하고 있는 피렌체 시민들이 부러울 뿐이다.

아직 폭로 단계지만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716만 달러에 팔려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던 로이 리히텐슈테인의 '행복한 눈물'을 삼성이 비자금으로 매입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제기됐을때, 피렌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메디치 가문이 문득 생각이 났다. 만약 사실이라면 삼성가의 사람들은 '행복한 눈물'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피렌체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메디치 가문의 행복은 누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