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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매치기와 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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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담아에서 변화된 사람들]

범법자, 재소자, 전과자….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무서워 차라리 죄에 죄를 덧씌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을 만난 후 새 사람이 되었다. 소외된 자들의 인권 보호에 힘써온 엄상익 변호사가 법정과 교소도를 찾아가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준 사연들을 연재한다.

쉰을 훌쩍 넘은 정갑득(가명)씨는 어린 시절부터 소매치기 전과로만 징역 23년을 살았다. 풀려나면 또 소매치기, 또 감옥…그렇게 평생을 살았다. 결국 가족한테서도 버림받아 갈 데가 없어진 그가 몸을 의탁한 곳이 임석근 목사가 운영하는 담안선교회(출소자들을 위한 교회 겸 숙소)였다.

갑득씨는 임 목사의 소개로 건설현장 잡역부로 일하게 됐다. 그는 선교회 쪽방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선교회 마당에 지어놓은 비닐예배당에서 기도도 열심히 했다. 선교회 식구들도 뒤늦게 예수 믿고 엄청나게 달라진 갑득씨의 모습을 축하해줬다.

어느날 일이 끝난 후 회식이 있었다. 갑득씨는 술 한잔 얻어먹고 얼큰해진 채 퇴근 버스에 올라탔다. 그날 갑득씨는 소매치기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임 목사의 연락을 받고 나는 구치소로 달려갔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볼이 유난히 움푹 들어간 갑득씨의 눈에는 후회의 빛으로 가득했다. “왜 또 그러셨어요?”

“이 놈의 버릇은 손모가지를 도끼로 잘라내기 전에는 절대 못 고칠 깁니더. 허술한 호주머니나 핸드백만 보이면 손이 먼저 가는 기라예. 더는 죄 짓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 열심히 기도했건만…하나님도 못 고치시겠는 모양입니더.”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었지만 단순한 변명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만큼 절박함이 강했다.

“변호사님 헛걸음하셨습니다. 전과 열 번이 넘는 저같은 놈은 제가 판사라도 안 봐 줄 깁니더.”

재판이 열렸다. 사실 변론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검찰에서 자백한 범행 사실을 법원에서도 전부 시인했다.

“훔친 게 뭐죠?” 갑득씨가 여자 핸드백에서 훔쳐낸 것은 전화카드 한 장과 주민등록증이었다.

“그걸로 뭐하게요?” “그냥 저도 모르게 손이 갔십니더. 제가 백번 잘못한 거지예.”

“어떻게 해야 그 버릇이 없어질까요?” “도끼로 이 손모가지를 없애야지예. 방법이 없십니더.”

재판장은 나와 그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제 내가 변론할 시간이 됐다.

“저 사람은 자기 잘못을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징역을 살고 나와도 똑같은 범행을 저지를 거 같다고 말합니다. 법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 사람이 막 믿기 시작한 주님에게 맡겨 보는 게 어떨까요? 그를 보호하던 천막교회 목사가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어차피 안 될 사건이었다. 소매치기범은 절대로 봐주지 않는 게 관례다. 때문에 2주일 후 갑득씨가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갑득씨 사건을 맡았던 재판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풀어주셨다는 소식에 놀랐습니다. 너무 봐 주신 거 아닙니까?”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판사보다 더 높은 주님께 그를 맡기자고 하는데 감히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엄해 보였지만 마음이 따뜻한 판사였다. 그의 책상 위에 성경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인사를 끝내고 나가려는 나를 그가 불러 세우더니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판사 월급이 많지 않은 건 아실 테고…저도 마음으로나마 그런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법전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없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판사들이 법전 이곳저곳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끼워넣고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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