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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강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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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나라 안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많고 주장들 또한 다양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얼마전 일본에서 열린 에큐메니컬 모임에서 우리 대선에 대해 염려했더니 남미에서 온 한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기 나라는 대선과 관련한 사고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무정부가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나라들마다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내심 새로운 지도자가 메시아적인 인물이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광과 실망을 반복하게 되고 호산나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를 동시에 내뱉던 예루살렘사람들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가 탁월한 지도력과 난제 해결의 능력을 지닌 메시아적 인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못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신기루일 뿐 현실이 될 수는 결코 없다. 희망이긴 하여도 역사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들이 하도 많아 메시아적 능력이 아니면 해결의 길이 없기도 하지만 세상 정치인에게서 그런 희망을 가지는 것은 미련하고 우둔한 일이다. 하나님은 이미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를 변화시키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창조하실 메시아를 보내셨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예수의 은혜가 임하기를 겸허히 기다리며 마음을 비우는 절기가 대림절이다.

원래 대강절(Advent·대림절)은 기다림을 뜻하는 용어이다. 기차에서 내릴 손님을 역에서 기다리듯 약속된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리며 다시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사모하는 절기이다. 그래서 더 경건한 기간이 되어야 하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계절이란 의미에서 대림절은 겨울의 사순절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절기를 보내는 신앙인의 자세가 다양하겠으나 지금처럼 다툼과 분열이 당연시되고 의혹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서로를 해치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는 평화이다. 예수께서 오실 때 하늘의 천사도 ‘땅위의 평화’를 노래했듯 우리가 구해야 할 은혜도 평화여야 한다. 이 평화를 위해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20세기 유대인 최고의 랍비로 지목되는 벤 예후다는 끝없이 계속되는 중동의 갈등을 괴로워하면서 다름에 대한 존중(Dignity of differences)을 역설했다.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의 욕심만 주장하고서야 무슨 평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욕심은 원죄에 가장 가까운 죄이다. 욕심이 모든 죄의 모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 욕심을 버리고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맞이하면서 부디 마음 속 숨겨진 욕심의 한 줄기라도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전능의 능력을 지닌 지도자인 것처럼 자신을 선전하는 대선 후보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이 욕심이 자꾸 보이는 것이 나만의 염려이기를 바라면서 욕심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어 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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