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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풍선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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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 (동화작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 얼굴이 가을 민들레처럼 파리했다. 여섯명이 함께 쓰는 병실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엄마가 말하셨다. 병실료는 하루에 1만원만 내면 된다고 엄마가 웃으며 말하셨다. 노랑꽃 핀 엄마 얼굴에 골짜기가 가득했다. 까마득한 시간 동안, 안으로 안으로 울음을 삼키며 엄마는 고목나무가 되어 있었다.

자식에게 봄을 주려고 엄마는 날마다 겨울이었다. 철이 들어 엄마의 풍경 속을 걸어나온 뒤 나는 다시는 엄마의 풍경 속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갈 수만 있다면 엄마의 풍경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환자복 사이로 엄마의 늘어진 젖가슴이 보였다. 새끼를 위해 가슴 깊이 두레박을 내렸던 엄마의 젖가슴이 철 지난 꽃처럼 쪼글쪼글했다. 마음이 아팠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저녁 무렵, 엄마가 있는 병실에 허리 굽은 할머니가 새로 들어오셨다. 할머니 걸음걸이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걸음걸음마다 삶과 죽음이 두꺼비 씨름을 하고 있었다. 칠십이 훌쩍 넘은 할머니는 병실 끝 유리창 아래 야윈 몸을 뉘였다.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할머니 손을 잡은 아들도 말이 없었다.

겨울비 속을 우산도 없이 걸었다. 엄마가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 병실 유리창 가득 풍선꽃이 피어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흰색…. 희뿌연 병실 유리창이 하룻밤 사이에 때때옷을 입었다. 창가로 들어온 찬바람을 맞으며 오색 풍선이 방글방글 얼굴을 부벼대고 있었다. 할머니 보라고 아들이 붙여 놓고 간 풍선이었다. 할머니 아들은 트럭 운전사라고 했다. 풍선꽃 아래 누워 할머니는 온종일 아들을 기다렸다.

인생은 그런 거라고, 자식이 부모 되고 부모가 자식 되는 게 인생이라고, 내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셨다. 엄마 옆에 누워 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결에 할머니 신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엄마…엄마…." 할머니가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할머니 주름진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칠십 넘은 할머니에게도 보고 싶은 엄마가 있었다. 엄마꽃은 바람에 떨어진 뒤에도 자식을 위해 꽃길을 만들어야 했다. 세상 모든 엄마의 사랑이 그랬다. 엄마는 죽어서도 죽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할머니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다. 늘어진 눈꺼풀을 무대의 막처럼 내리고 엄마를 부르고 있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리고 싶었다.

막이 내리면 가난한 할머니도 주인공이 되리라. 가슴 가득 셀 수 없을 만큼 국화꽃 송이를 받으리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눈물을 꾹꾹 누르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엑스트라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엑스트라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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