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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소설 <우리의 사랑은....> 제31회 ~ 제35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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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 혹시 어느....


하지만 병찬의 눈은 골대 쪽이 아니라 운동장에 쓰러져 뒹굴고 있는 그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떨어질 때 정말 무방비 상태로 떨어졌었는
데....

병찬과는 정 반대의 방향에서 병찬처럼 공보다 쓰러져 뒹굴고 있는 선
후에게 관심이 집중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윤정이었다. 윤정은
선후가 쓰러져 운동장 바닥에 뒹굴자 마자 마치 튕겨진 화살처럼 운동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숨
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윤정에게 그 순간의 운동장은 너무 넓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선후의 주위에 수철을 비롯한 여러 명이 둘러쌌다.
그 틈을 윤정이 비집고 들어갔다.
<오빠, 선후 오빠, 괜찮아?>
<응....>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으면서도 선후는 그렇게 대답했다. 괜
찮지 않다는 것은 윤정이 얼핏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선후의 발목 부
근이 잠깐 사이에 엄청나게 부어 있었던 것이다. 옆에서 수철의 걱정스
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뼈에 이상이 있으면 안 되는데....>
선후가 몸을 옆으로 틀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어지
간해서 그런 소리를 낼 선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윤정은 얼른 주
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자.>
그러자 선후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아직 경기가 안 끝났는데....수철아, 나를 좀 일으켜
봐.>
<그 몸으로 뛸려고?>
윤정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 운동장 밖으로 나갈려고....>
수철과 또 한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선후는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왼
쪽 발은 도저히 땅을 짚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발로 껑충 껑충 뛸려
니 축 늘어진 발목이 흔들거려서 더 아팠다. 그 때 언제 가져왔는지 저
쪽에서 들것을 들고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후는 잠시 그들을 기다렸
다가 들것 위에 누웠고 수철을 비롯한 네 명의 남학생들이 그 들것을 들
고 운동장 밖으로 나왔다. 윤정도 창백한 얼굴로 그들을 따라갔다.

병찬은 걸음을 빨리하면서 스탠드를 돌아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왠지 운동장에 쓰러졌던 사람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그 사람은 사학과의 응원석에
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들것에 실려왔다가 조심스런 부축을 받아 스탠드
맨 아래칸에 앉았다.
아까 경기를 지켜보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키가 더 커
보였다. 그 사람의 곁에는 한 여학생이 그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걱정스
런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병찬이 한 눈에 보기에도 아주 예뻤다. 이제
불과 서너 걸음 사이의 간격만이 남아있었다.
운동장 안에서는 다시 경기가 속개되었다. 심판이 한 손을 들어 손가락
네 개를 펼쳤다. 이제 4분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공은 운동장 한 가운데
놓여졌고 체육학과의 선수들은 모두들 비장한 표정이었다. 한 골차와 두
골차는 그만큼 엄청난 차이였던 것이다. 운동장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
들은 다시 경기에, 공의 움직임에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지금 병찬은
더 이상 운동장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병찬은 주머니에서 4영리를 꺼내 움켜쥐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복음
을 전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저 사람의 관심은 보나 마나 경기 결과
에 쏠려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부상을 당해서 고통 속에 있고, 그
곁에는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게다가 응원석이 바로 근
처에 있었기 때문에 꽹과리 소리와 징소리, 그리고 응원의 함성소리로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몇 사람인가 그에게 와서 몇 마디 말을 건네면
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한 걸음 좁혀졌다. 그 짧은 순간에 병찬의 머리 속에는 전도사님의 말
씀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전도할 대상에 대해 인간적인 평가를 내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즉, 전도의 대상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섣부른 추측
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거의 대개 부정적인 결과로 예측되기 때문에,
그러면 결코 전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도사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었다.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 혹시 어떤 작업을 미리 해놓으셨으면 어쩐다?>라
고....
하지만 나는 지금 정말 전도하려고 가는 걸까? 사실, 병찬은 지금 전도
하러 간다기 보다 호기심과 이유 모를 끌림으로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었다.
또 한 걸음 좁혀졌다. 한 칸 아래에 그가 있었다. 문득 그가 뒤돌아보
았다.
또 한 걸음 좁혀졌고, 이제 그의 곁에 있던 여학생의 눈길이 병찬에게
느껴졌다.
마지막 한걸음....
하지만 병찬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멍청하게 그와
그녀를 바라보면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거의 동시에 그와 그녀의 눈
이 병찬의 손에 들려있는 4영리 책자에 모이는 것이 보였다.

윤정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독 동아리 학생이네....오빠가 아는 사람
은 아닌데....하여간 분위기 파악 못 한단 말이야....지금 다쳐서 아픈
사람에게 교회 가자는 소리가 나와? 윤정은 얼핏 쌀쌀한 눈길을 전도책
자와 전도책자의 주인에게 보내고는 다시 선후의 다친 다리를 본 후에,
운동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냥 무시해 버리려는 생각이었다. 체육학과
의 공격이 더 매서워졌다. 오빠가 빠지니까 더 불리해졌네....그때 선후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윤정이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말이었
기에 너무나 깜짝 놀라 윤정은 선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 않을 수 없
었다.
<저....혹시 어느 교회 다니시나요?>

병찬은 너무나 놀랐다. 아니, 이 사람이 왜 나에게 그걸 묻지? 병찬은
잠시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서 있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자기가 다
니고 있는 교회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주 반가운 얼굴로....

<제32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제32회 - 에라 모르겠다....


<그럼, 지금은 이야기 듣기 좀 그러니까, 내일이나 모레에 우리 과에
한 번 오세요. 무슨 과이신가요?>
병찬이 얼른 말했다.
<예, 국문학과....국문학과 2학년입니다.>
<그런가요. 나는 사학과 3학년 권선후라고 합니다.>
<아, 예....전 손병찬이라고....>
<예....병찬씨....>
<예, 맞습니다....>
또 다시 어색한 침묵....그 침묵 사이로 갑자기 양쪽 응원단의 고함소
리가 몰려왔다. 세 사람 모두 동시에 고함소리의 이유를 찾기 위해 운동
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학과의 골대 앞에서 지금 일대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비수를 맞
고 나오던 공이 다시 체육학과 선수에게 갔고, 다시 슛! 골키퍼의 필사
적인 펀칭, 하지만 공은 수비수의 어깨에 맞고 튀어 뛰어들어오던 체육
학과의 발에 걸려 또 다시 슛! 다시 몸으로 공을 막는 수비수, 급하게
차 내는 수비수, 하지만 또 다시 공은 왼쪽 사이드의 체육학과의 선수
앞으로 떨어지고 코너 쪽으로 몰고 들어가다가 센터링, 뛰어오르는 양팀
선수들, 하지만 달려들어오는 반동으로 뛰어오른 체육학과의 선수가 조
금 더 높이 뛰어오를 수가 있었고, 그 조금의 차이는 곧바로 골로 연결
이 되고 말았다. 반대편 쪽의 응원단에서는 함성이 터져나오고 이쪽편
응원단에서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것은 지금 함께 있는 세 사람의 입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병찬은 고개를 돌려 그 사람, 선후씨라고 했던가....의 얼굴을 바라보
았다. 각이 진 얼굴 속의 짙은 눈썹이 V자를 그리며 일그러져 있었고 이
마와 목에 파란 핏줄이 돋아난 것이 보였다. 꽉 쥐고 있는 주먹이 그의
안타까운 속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병찬 자신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병찬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운동장에서는 골을 넣은 체육학과의 선수가 얼
른 공을 들어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한 골차로 뒤
지고 있는 체육학과로서는 시간이 금이었던 것이다. 지금 병찬 앞의 두
사람은 어느새 자신의 존재는 새까맣게 잊은 듯 했다. 인사를 하고 가야
될 것 같았지만 도저히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시 파상공세에 나선 체육학과, 전혀 상관없는 병찬으로
서도 왜이리 시간이 더디갈까, 하고 생각하는데 저들이야 오죽할까. 병
찬은 천천히 몸을 돌려서 걷기 시작했다.


윤정은 마른 침이 꿀꺽하고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꼭
쥐고 있었던지 두 손의 주먹관절이 아프기까지 했다. 평소의 윤정 성격
이라면 이런 순간에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응원하고 있을 터였지만, 지
금은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그저 입술을 꼭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골문 쪽으로 우겨넣으려는 체육학과와 그것을 온몸으로 저지하는 사학
과의 축구 경기는 이제 거의 육탄전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학과
의 응원단에서는 이제 심판을 야유하는 고함까지 있었다. 그것은 윤정의
심정이기도 했다.
왜 빨리 호루라기를 불지 않는 거야! 아까 4분 남았다더니....옆에 앉
은 선후 오빠의 안타까움에 젖은 낮은 목소리가 그런 윤정의 마음을 더
욱 애타게 했다.
<코너킥이 되어서는 안돼!!!>
흙먼지가 날리는 골대 앞에는 이제 사람의 머리들만 보일뿐 공도 잘 보
이지가 않았다. 간혹 그 사람들의 틈에서 공이 튀어나왔지만, 곧 다시
중앙선을 한참 넘어와 있는 외곽의 체육학과의 수비수에 의해 다시 그
속으로 차 넣어졌다. 그러고 보니 골키퍼도 거의 중앙선까지 나와 있었
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낯익은 모습이 번개같이 솟구쳐
오르더니 공을 가슴으로 받아 멀리 중앙선을 넘어 전진배치해 있는 수비
수의 키를 훌쩍 넘어서도록 차냈다. 수철오빠였다. 그 공은 골키퍼의 옆
을 지나 흘러갔다.
당황한 골키퍼는 얼른 공을 따라가 다시 사학과 쪽으로 길게 찼다. 공
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날아갔고 동시에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날카로운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순간 윤정은 하
늘 높이 날아가는 공에서 그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것
은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였다.
하늘 높이 날았던 공은 사학과 수비수의 가슴에 안겼고, 그 수비수는
그 공을 땅에 힘껏 내리치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동시에 골대 앞에서
죽을 힘을 다하던 선수들이 일제히 한덩어리가 되어 승리의 기쁨을 누렸
고, 곧 운동장으로 뛰어든 사학과 응원단들과 부둥켜 안고 운동장을 뒹
굴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수철을 비롯한 사학과 선수들이 선후와 윤정
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윤정은 일어서서 두 손을 번쩍 들며 그들을
맞이했고, 선후도 그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대신 기쁨의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승리자와 패배자는 저렇게 차이가 나지....병찬은 스탠드 꼭대기와 자
연스럽게 이어지는 잔디밭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학과의 모습과 허탈하게 운동장 이곳 저곳에 앉거나 누워있
는 체육학과 선수들과 그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
서고 있는 체육학과 응원단의 모습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조금전까지는 병찬도 사학과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체육학과의 쓸쓸한
모습을 보니까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마 병찬이 사학과를 응원
했던 것도 그들이 상대적인 약자로 비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병찬의 국
문학과가 체육학과에게 져서 8강행이 좌절되었던 것도 한가지 이유이기
도 했지만....
병찬은 돌아서서 학생회관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아직 병찬의 마
음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내 손에 들고 있던 사영리책을
보고 내가 교회다닌다는 것을 짐작했던 것 같은데....왜 그 선후라는 사
람은 내가 다니는 교회 이름을 물었을까? 그리고 내 대답을 듣고 왜 그
렇게 좋아했을까? 원래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었나? 우리 교회를 다니고
싶어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 교회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병찬은 고개를 저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쯤 사학과에 찾아가서 만
나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아무튼 병찬으로서는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전도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 혹시 어떤 작업을 미리 해놓으셨으면 어쩐다?>
맑은 하늘 저 너머에서 하나님께서 병찬을 내려다보시며 짖궂게 웃고
계시는 것 같았다.


수철은 정민과 함께 선후를 부축해서 복잡한 병원의 로비를 빠져나오면
서도 아직까지 축구시합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표정으로 들떠
서 시합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제33회로 계속 이어집니다.>



제33회 - 아무리 생각해도....


옆에서 그들을 따라오던 윤정이 그런 수철에게 핀잔을 주었다.
<오빠, 그 얘기 도대체 몇 번째인 줄 알아?>
하지만 그런 윤정의 얼굴에도 흥분의 빛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다.
선후 오빠가 다치지만 않았어도....그런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검
사결과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말, 예술이었다는 거 아냐. 바로 코 앞에 공이 딱 떨어지는데, 진짜
아무 생각 없더라고, 저걸 꼭 넣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니까. 내가
그런데 그 골키퍼는 오죽 했겠냐. 공을 딱 잡고 골키퍼랑 눈이 딱 맞았
는데....햐, 정말 그 눈빛, 평생 잊혀지지 않을 거야. 그 급박한 순간에
도 여유있게 골키퍼를 싹 제치고....>
<아유, 지겨워! 벌써부터 이런데 앞으로 며칠을 더 들어야 하는 걸까?
아유....>
<하하하....며칠이 뭐야 아마 최소한 졸업할 때까지는 무조건 들어야
할걸?>
윤정의 툴툴거리는 소리에 정민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선후도 맞장구
를 쳤다.
<하하하....맞아, 맞아. 정민아, 우리 둘은 아마 죽을 때까지 듣게 되
겠지? 어쩐다. 이 기회에 수철이 하고 인연을 끊을까?>
<어머, 어머,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네. 저 지겨운 얘기를 어떻게 평생
들어. 그러자, 응?>
<뭬야? 이런 무엄한 것들이 있나!>
<하하하....>
<호호호....>
<킥킥킥....>
병원 건물을 나와서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에도 네 사람의 이야기는 끝
이 날 줄을 몰랐다. 그 와중에서도 수철은 선후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
고 있었다. 저 녀석도 오늘 축구를 이긴 게 너무 너무 좋은 모양이군.
저렇게 내놓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하긴 진짜 재
미있는 경기이긴 했지만....정말이지 발목을 그렇게 다친 놈 치고는 선
후의 얼굴이 너무나 밝아 보였다.


심하게 부어오르기는 했지만 다행히 뼈와 신경에는 이상이 없었다. 물
론 모레 있을 4강전에 뛰지는 못하겠지만....떨어질 때 땅과 부딪힌 오
른쪽 어깨와 옆구리도 꽤 아픈 모양이었다. 그나마 평소에 운동을 꾸준
히 했기에 망정이지....윤정은 선후의 부상이 생각보다 그리 심하지 않
은 것에 대해 안심이 되는 순간부터 아까 뜻밖의 선후의 행동에 대한 생
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왜, 선후 오빠가 그 사람에게 어느 교회에 다니냐고 물었을까? 왜, 그
사람보고 다시 찾아오라고 했고, 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걸
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교회에 대
한 관심이 생긴 것일까? 그 사람이 찾아와서 할 이야기는 뻔하잖아. 그
런데 오빠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그것도 먼저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찾아오라고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정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윤정은 선후를 흘끗 쳐다보았다. 수철 오빠나 정민 오빠처럼 약간 상기
된 환한 표정이었다. 분명 보기 좋은 표정인데도 왠지 윤정은 그런 선후
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수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왕 이렇게 나왔는데 오늘같은 날 그냥 갈 수가 있냐. 가자, 오
늘은 내가 쏜다!>
<어머, 오빠. 선후오빠는 집에 가서 쉬어야지. 이 몸을 해가지고 어디
를 간단 말야. 저 다리 안 보여? 붕대를 칭칭감고 있는 저 다리....>
<어허....뭘 모르시는 말씀. 이런 날에 그냥 집에 쳐박혀 있으면 더 아
파요, 더 아파. 그렇지 정민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냥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날
이긴 해.>
정민의 말에 선후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가자. 앞장 서라.>
윤정은 그런 세 남자를 보며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하여간 셋이 죽이 잘 맞아요. 하긴 뭐, 수철 오빠가 쏘는 걸 먹을 기
회가 잘 없으니까, 쏜다할 때 왠만하면 가야돼. 맞지?>
그 말에 정민과 선후가 동시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맞아.>
<그래, 맞아. 이런 기회가 자주 없지.>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얘들 보게.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내가 진짜 짠돌이인줄 알겠네. 오
늘부터 내가 쏜 것을 적어둬야지. 다음부터 이런 소리들 못하게.>
<어머 어머, 저 말하는 것 좀 봐. 진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우리
가 거짓말 하는 줄 알겠네.>
<그냥 넵둬. 오늘 적고, 내년 이맘 때나 또 적게 될 텐데 뭘.>
정민의 한마디에 또 다시 폭소....서로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들은 주차장 입구의 택시 정류소에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던 첫 번째
택시에 올라탔다. 어느새 줄지어 선 택시 지붕 위 플라스틱 캡의 빈택시
임을 알리는 불빛이 선명하게 보이는 시간이었다.


병찬은 애써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도저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이
진정되지 않았다. 병찬은 사학과 과사무실에 들러 3학년의 강의 시간표
를 물어본 다음, 점심시간 직전의 강의가 있는 강의실에 찾아와 있었다.
그 축구경기가 있은지 이틀이 지났다. 화요일에는 병찬의 수업이 아침
부터 저녁까지 빼곡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
만 수요일에는 아침에 두 시간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래서 이렇게 사학과 강의실을 찾아온 것이었다.
지금 강의가 마치기를 기다리는 5분이 마치 이틀 전의 축구 시합에서
마지막 5분이 엄청 길게 느껴졌던 것과 같았다. 도대체 처음에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꺼내야 할 말은 고사하고 어떻게 인사해야될 지도 병
찬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에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저
사람이 찾아오라고 했던 거니까, 저 사람이 뭔가 말을 걸겠지....

<제34회로 계속 이어집니다.>



제34회 - 신기하지 않아?....


초조하게 복도를 오가는 동안 마침내 강의가 마치고 학생들이 나오는 소
리가 들려왔다. 병찬의 가슴은 삐걱대는 의자 소리와 강의실 밖으로 나
오는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보조를 맞추며 두근거림의 강도가 강해졌다가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병찬을 먼저 발견한 것은 윤정이었다. 윤정은 병찬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경계심이 들었다. 선후가 기독교인을 싫어하는 만큼이나 윤정도 사
실은 기독교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윤정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 치부하고 있었고, 윤정의 일생에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막연히 여기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런데 지금 저기 서 있는 사람이 윤정의 삶 속으
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후 오빠
를 통해서....
윤정은 걸음을 멈추고 조금 뒤에서 목발을 짚고 걸어나오는 선후를 돌
아보았다. 선후의 눈길이 윤정의 질문이 담긴 눈빛에 잠시 닿았다가 곧
바로 강의실 밖에 서 있는 병찬 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 윤정의
눈으로 갔다가 뒤따라 나오는 수철과 정민에게로 움직여갔다.
<야, 수철아, 정민아, 오늘은 너희들끼리 점심 먹어야 겠다.>
그러자 의자들 틈을 비집고 나오던 수철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윤정을
잠시 보고는 물었다.
<왜? 윤정이 하고 따로 데이트 하려고?>
그 말에 씨익 웃으며 선후가 말했다.
<아니, 오늘은 윤정이도 너희한테 좀 맡겨야겠다. 점심시간에 만날 사
람이 있거든.>
<그래? 누구하고?>
그러자 옆에서 윤정이 얼른 대답했다.
<응, 저기 얼굴에 여드름이 좀 있는 사람 있지? 국문학과 2학년이라던
데 이틀 전에 체육학과하고 시합할 때 잠시 만났었거든. 그때 선후 오빠
가 저 사람한테 한번 찾아오라고 그랬어. 오늘 왔네....>
윤정의 목소리에 뭔가 평소답지 않은 어떤 여운이 있는 걸 눈치챈 수철
이 윤정 쪽을 보며 말했다.
<그래? 원래 아는 사람인가?>
윤정이 다시 문밖에서 기다리는 병찬과 선후를 흘끗 흘끗 쳐다보고는
수철에게 대답했다.
<글세....그런 건 아닌 것 같애. 그 날 분명히 서로 처음 보는 거였어.
서로 이름을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이야. 저
사람 기독 동아리 사람이거든.>
그 말에 수철은 물론이고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정민이
깜짝 놀랬다.
<응? 기독 동아리 학생이라고?>
<응....그날....>
윤정이 좀더 자세히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려고 할 때 선후가 끼어들
었다.
<어쨌거나 나는 저 친구하고 얘기 좀 해야하니까 나중에 운동장에서 보
자. 수철이하고 정민이는 오늘 축구 경기 있으니까 먼저 몸 풀고 있으면
되겠지? 윤정이도 조금 있다 봐. 그럼 나 먼저 간다.>
그리고는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며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문 밖에 서 있
던 사람과 인사를 주고 받더니 함께 걸어갔다. 그런 선후의 뒷모습을 세
사람은 잠시 지켜보다가 정민이 윤정에게 조금 전에 하려던 얘기를 계속
해보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윤정이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을 두 사람에게
쭈욱 설명을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수철과 정민은 서로의 얼굴을 멍하
니 바라보았다. 수철이 말했다.
<이게 무슨 천지개벽할 일이냐?>
정민이 맞장구를 쳤다.
<글세 말야. 도대체 무슨 일인걸까?>
윤정도 곁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정말 어제, 오늘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가 왜 저러는지 도저히 모르겠
더라고.>
<....>
<....>
<....>
세 사람은 잠시 서로의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에 수철이 윤정에게 물
었다.
<그러니까, 선후가 저 친구한테 어느 교회를 다니느냐고 물었다는 거
지?>
<응. 그것도 저 사람은 아무 말도 안하고 서 있기만 했는데, 오빠가 먼
저....>
<....>
<....>
<....>
또 다시 침묵....잠시 후, 이번에는 정민이 물었다.
<그래 무슨 교회 다닌데?>
<응? 글쎄....지금 잘 생각이 안나. 근데 선후 오빠가 아는 교회가 있
다는 것도 신기하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허 참, 그거 수수께끼일세....>
수철이 손으로 턱을 긁으면서 말했다. 정민도 팔짱을 끼며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고, 윤정은 그런 두 사람을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수철과 정민으로서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아니 이해가 되지 않
는 사건이었다. 그 때 수철이 두 사람을 장난끼어린 눈으로 보더니 손가
락을 딱 튕기며 소리쳤다.
<아! 맞아!>
정민과 윤정이 동시에 외쳤다.
<뭐가?>
<뭐가, 오빠?>
그러자 수철이 얼른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제35회로 계속 이어집니다.>



제35회 - 참 이상한 방법으로....


<응, 지금 밥 먹어야 할 시간이라고!>
<뭐라고?>
<엥?>
<야, 나중에 선후한테 들으면 될 것을 괜히 쓸데없이 왜 고민하냐? 배
고파 죽겠다.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쳇, 난 또 뭐라고....어쩐지 수철 오빠 머리에서 뭔가 해답이 나올 것
을 기대한 우리가 바보지.>
<하하하....>
<사돈 남 말하고 있네. 자, 빨리 가자.>
<응....>
수철의 뒤를 따라 정민과 윤정도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런 순간에도 세 사람의 머리는 제각각 풀리지 않는 문제를 계속 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성경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세 여학생이 캠퍼스의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에 열
중하고 있었다.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풋풋한 새내기들....화장기가 거
의 없는 맨 얼굴에 아직은 자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찾지 못해 어설퍼 보
이는 머리 모양과, 옷차림....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야, 저렇게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젊음이 있는데....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문
득 쓴웃음을 지었다. 꼭 나이가 40이 넘은 아줌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
는 것 같아서였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이 있다....그래, 맞아. 성경을 한마디로 아주 잘 요약한 것 같아.>
수진의 칭찬에 수진의 왼편 앞에 앉은 여학생이 약간 얼굴을 붉혔다.
영희였다. 수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참 이상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
르쳐 주신 것 같아. 왜 그러냐 하면 성경을 가만히 보면 그 속에는 시도
있고 편지도 있지만 뼈대는 역사책이거든. 그것도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 형식의 역사책....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
해주실까?>
수진은 잠시 말을 끊고 앞에 앉은 두 후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자
매의 눈 속에 호기심이 초롱초롱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년 이
맘 때의 수진의 눈빛과 똑같은 눈빛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은태
전도사님과의 예비조장 훈련 첫시간....그날 전도사님은 지금 수진이 하
고 있는 말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 전도
사님은 '성경'이라고 커다랗게 써놓고 예비조장들에게 성경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하셨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성경은 길이다.>
<성경은 66권이다.>
<성경은 구원이다.>
등등등....
예비조장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생각나는 대로 말했고, 그때 수진은 방
금 자신에게 성경에 대해 정의를 내렸던 영희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기를 원하시는 길이 있
습니다.>
전도사님은 그 말들을 하나씩 화이트보드에 쓰시더니 몸을 돌려 예비조
장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방금 수진이 영희에게 말한 것처럼....그 날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으로 수진에게 다가왔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형식의 역사가 있어.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이런 형식으로 우리에게 해주셨을까? 왜 그
러셨을까? 당연히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기 때문
에 그러셨겠지? 그럼 우리는 성경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까? 그건 바로 성경 속의 인물들을 제3자인 독자의 눈으로 보면서 그들
의 삶 가운데서 배워야할 점과 배워서는 안되는 점들을 배울 수 있기 때
문이야. 상상을 해봐. 성경이 만약 구약의 레위기나 신약의 서신서들처
럼 딱딱하게 해야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쭉 나열해 놓은 도덕책
이었다면....>
그러자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일독하기 정말 힘들었겠지요.>
웃음....그리고 전도사님의 이어지는 말씀....
<맞아. 맨날 창세기, 출애굽기는 잘 넘어갔다가 꼭 레위기, 민수기, 신
명기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헤매다가 포기해버리곤 하지.>
또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전도사님도 그러셨었어요?>
<글쎄....하하하....나라고 별 수 있었겠어? 더 심했었지. 나도 청춘의
방황 시절이 있었거든.>
그러자 또 누군가의 한마디....
<청춘의 방황이라고요? 꼭 60년대 영화제목 같네요. 킥킥킥....>
또 다시 바글거리는 웃음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결국 성경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
고 우리는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일부분들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우리
는 그 등장인물들 속에서 우리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지.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은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모아지게 되는 거야. 그런데 여
기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 수 있게 돼. 성경은 하
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지?>
<예.>
<그리고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셨음을
가르쳐 주지?>
<예.>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 곁에 오셨
지?>
<예.>

<제36회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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