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b>기억, 또다른 치유의 방법^^</b><br>

첨부 1


  

                              
창문 너머로 노랗게 핀 개나리가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샛노란 개나리가 바람에 힐끗힐끗 날리면서, 수줍은 듯,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 개나리를 무심코 바라보고 있노라니...아주 오래전... 노란 개나리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오시던, 고등학교 시절 목사님의 영상이 살며시 그려진다...그리고, 그때처럼, 나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 2학년생이 되었을 때 3월의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시내로 놀러 갈 준비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옷도 나름대로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어디에 놀러갈 건지 수다를 떨며, 주머니속에 든 향토 장학금^^(부모님께서 부쳐주신 돈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을 만지작거리며, 기숙사를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총총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그 앞에는 언제부터 피었는지 모를, 개나리가 샛노랗게, 활짝 피어있었다. 어머...저 개나리좀 봐~ 너무 색깔이 곱다... 어쩜 저렇게 노랄 수 있을까...하며, 우리는 연신 개나리의 화려한 색상에 감탄해하고 있었다.

그 때, 그 개나리를 헤치고, 유유히, 개나리속을 걸어나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보았지만,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 사람의 얼굴은 나에게 굉장히 낯이 익어 보였다...

어머나...목사님...목사님이 여기 웬일이시지???

그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목사님이셨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었고,  목사님은 나와 내 또래의 친구들을 친딸처럼 대해주셨다. 특히, 항상 기독교에 대한 의문과 굼궁금증에 가득 차있던 나의 질문에, 목사님께서는 성실하고, 시원스럽게 답해주셨다.

하지만, 대학 진학과 더불어, 나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점차 세상 문화와 철학에 심취하게 되어,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고향에 계시던 목사님께서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개척교회를 하시느라 굉장히 바쁘실 텐데도 6시간 거리의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나를 만나기 위해 달려오신 것이었다.

<현주야~!>
목사님은, 나의 얼굴을 발견하시고서는, 내 이름을 크게 부르시면서 나에게 달려오셨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런 목사님이 굉장히 어색하고,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_- 나는 이제 교회에도 다니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 왜 여기까지 오셔서 나를 귀찮게 하시는 거야... 오늘 모처럼만에 놀러 가려고, 돈도 모으고, 친구들하고 약속도 했는데 말이야...하면서, 다른 일을 제쳐두시고 먼길을 나를 위해 달려오신 목사님의 마음과 입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현주야... 이 넓은 학교에서 너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난감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단다. 하나님, 현주를 꼭 만나야겠습니다. 부디, 현주를 꼭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말이야.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너를 만나게 되다니...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구나...>

목사님은, 너무나 반가와 하시면서, 나에게 저녁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목사님께서는 비싼 고기는 사줄 수 없어도, 칼국수 한그릇은 사주실 수 있으시다면서, 땀을 뻘뻘흘리신 채, 훤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마음이 아프지만, 그 당시 난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나는 그런 목사님께 반가운 표정한번 없이, 쌀쌀맞게 이야기했다.

<목사님, 저는 더 이상 교회에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제가 너무 바빠서, 목사님과 같이 저녁 먹으러 갈 시간이 없네요...목사님, 저 버스를 타고 나가시면 돼요. 여기는 버스가 1시간만에 1대씩 오니까, 저 버스를 놓치시면, 오래 기다리셔야 해요, 지금 저 버스를 타고 가시면 돼요...> 라고 말이다. 목사님께...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어떻게 부산으로 돌아가시는지...주무실 장소는 있으신지...저녁은 어떻게 하실 건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말이다...

목사님께서는 나의 의외의 반응에 너무나 놀라신 표정이셨고, 한참을 내 얼굴을 말없이 보시고 난 후, 나에게 인사를 하시고서는 내가 친절하게(?) 안내해준 그 버스를 타시고, 내 시야에서 멀어져가셨다...

그 일이 있고난 후,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나기까지, 나는 교회를 떠나,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았고...연속적인 큰 사건들로 인해,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가고 싶었지만, 차마 갈 수가 없어서 몇 개월을 방황하다가,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고향의 그 교회로 돌아갔고, 목사님께서는 나를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셨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말이다...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목사님과 사모님께 아무렇지 않게 찾아가서, 그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아픔을 나누곤 한다...

얼마 전, 한 사람에 대해서, 나는 매우 흥분하며, 목사님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그렇게 힘들 때 도와줬더니만, 지금 와서, 그런 식으로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느냐면서...나는, 입을 다무신 채, 묵묵히 듣고만 계시는 목사님께 마구 불평을 토로하고 있었다...그런 나를 보시며, 목사님께서는, 조용히 입을 여셨다.

<현주야...용서해라...>

순간적으로 나의 입에서는 목사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 대항하는 말, 거부하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차마...차마...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그분이 나를 그렇게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용납해주셨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그 <기억>이 나의 입술을 제어시켜버린 것이었다. 목사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셨던 상황을 내가 잊어버리고, <기억>해내지 못했다면, 난 <용서>와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느낄수 없었을 것이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 치유받고, 온전해짐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만약 닭울음소리를 듣고, "새벽닭 울기 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그는 예수님을 배반했던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치유받기 힘들었을 것이고,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기도 힘들지 않았을까...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The Living Reminder>이라는 책에서 <기억>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억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영혼에 닿을 수 있습니다. 각자가 그 사실을 알면 우리는 언제나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은 또한 분명하게 해주고 순화해 주며, 초점을 맞추게 하며 숨겨진 은사들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불러내 영적인 연합이라는 새로운 친밀감 속으로 들어갑니다...

  간혹, 사람들 중에는,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는 잘 기억하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은혜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평생 죽을 때까지,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날이 <기억>이 나서, 마음이 떨렸을 베드로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그는, 그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며, 스스로 겸손해지며, 또한 그것을 통하여, 다른 이웃들을 용서하고 용납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과연 어떠한 기억들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