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3등석이 더 좋은 이유

첨부 1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는 마차(馬車)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그 차에는 지금 비행기처럼 1등석, 2등석 그리고 3등석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다만 오늘 날 비행기와 다른 점은 공간이 아니라 운행(運行)중 문제가 있을 때 길에서 달라진다.
곧 언덕을 올라가거나 진흙탕처럼 어려운 길을 만났을 때에 3등석 승객은 무조건 내려서 밀어야 하고, 2등석은 내리지만 따라만 가면 된다. 허나 1등석은 내리지 않고 마차(馬車) 안에 앉아 있으면 어려움은 그냥 지나간다.
이 세 등급의 구분은 평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머나먼 서부(西部)로 갈 때 수없이 만나게 되는 험로(險路)에서는 1등석은 비싼 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우리 인생도 그 서부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를 갈 때 이와 같은 세 부류의 자리가 있다.

가장 먼저 1등석 인생은 스스로 특권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로, 공동체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려오지 않고
앉은 채로 명령(命令)만 하려고 든다.

또한 2등석 인생이 있다. 어려울 땐 내려서 따라는 가지만, 결코 밀어주지 않는 기회(機會)주의자다.
그러면서 돈이 더 있으면 1등석을 타리라는 아쉬움과 원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3등석은 처음부터 앉을 생각도 않고 내려와서 같이 돕고 섬기려고 한다.
물론 어쩔 수 없이 3등석에 탄 사람도 있지만, 1등석 표를 가졌음에도 험로에서는 함께 밀어주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1등석을 원한다.
겉으로 볼 땐 그 자리는 좋은 것 같으나, 사실은 서로를 경계하는 가장 살벌한 자리다.
2등석은 항상 1등석을 침범하려고 살기등등하다.
‘티켓’이라는 영화처럼 기차 안에서는 서로 간에 밥그릇 싸움에 혈안이 되어있지만, 기차에서 내릴 때는 모두가 빈손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오늘도 1등석만을 고집하고 있다.

인생의 목적은 1등석에 타는 것이 아니다. 설령 1등석 환경에 산다 해도 삶의 모습은 3등석으로 살아야만 인생의 멋과 맛이 무엇인지를 알며 살 수 있다.

3등석 좌석이 오히려 좋은 점은 첫째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옛날에 가끔 비둘기호 기차를 탈 때, 3등석 열차답게 자리가 비좁아 서 있기조차 어려워 떠밀려 구석으로 처박히곤 한다.
마치 찜질방 분위기처럼 후덕지근한 곳에서 끼리끼리 모여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미있게 하는지, 열차 안은 더욱 시끌벅적해진다. 옆 사람과 피부가 닿기에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방처럼 세상 소식을 다 듣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사꾼들의 소리와 술 취한 사람의 노래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전쟁터가 타로 없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3등 칸 열차에서는 그런 혼란스러움이 당연한 줄 알고 탔기 때문이다.

타이타닉호는 세계 최고의 여객선이다.
고급일수록 등급은 더욱 엄격하게 따지므로 1등석의 승객은 최고 대우를 받는다.

1등석에 탔던 로즈는 잭을 만나 3등석 파티 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1등석에서는 경험(經驗)할 수 없었던
영혼의 자유 함을 느끼며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되지만 배는 두 동강나며 잭의 도움으로 로즈는 살아나게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로즈는 3등 인생인 잭을 통해 구원받으며, 그의 유언대로 자신이 원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선(僞善)은 결코 사람을 건저내지 못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그 무엇이 모든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을 구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냄새 나는 곳이 몸은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오늘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평안함이 있기에 3등석을 고집하는 이가 있다.

둘째로 3등석은 섬김의 자리이기에 좋은 것이다. 3등석은 가격이 무지 싼 만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차라리 그런 자리가 더 복되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이미 흰 눈이 머리에 쏟아진 뒤다.

어느 재벌 그룹 비서실장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평생을 2등의 위치에서 섬기며 살았는데 자식들에게도 1등의 자만보다는 2등의 겸손과 섬김의 정신으로 살라고
가훈(家訓)으로 남겼던 것이다.

사람은 소유와 성취에 대한 욕심(慾心), 그리고 존경 받고자 하는 마음 등 세 가지 본능(本能)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러한 욕망들은 사람을 발전하게도 하지만 더불어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게도 한다.
만약 그러한 본능대로만 살아간다면 보나마나 뻔한 인생, 곧 겉으론 많은 것을 이룰지 몰라도 존경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뻔하지 않는 성숙한 인생을 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튼튼한 집이란 인테리어가 아니라 철근과 콘크리트라는 기초에 달려있듯이, 성숙한 인격이란 외적인 멋이 아닌
섬김과 겸손의 삶을 보고 공동체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신문에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각 분야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외적인 조건들이 아닌 사람이 항상 들어 있곤 하였다.
그러므로 본능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섬김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 세상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변화(變化)의 본질과 소명(召命)의 목적이 여기에 있기에 오산학교에서는 졸업생들에게 항상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라’고 권했던 것이다.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낮은 곳에서 섬기므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때,
진실로 뻔하지 않는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로 3등석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기에 1등석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어느 행사를 참석하고 오다가 어떤 분이 자기 딸에 대해 이야기가 했다.
7여 년을 사귄 남자 집에 처음 인사하러 갔다 온 후로 그 남자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조카에게 천만 원짜리 카메라 렌즈를 선물하는 것을 보고서,
자기 집과 남자 집은 환경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맞질 않기에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 집으로 시집간다면 자신의 역할도 적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춘 집에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하는 항변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벌써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그 딸이 대견스럽게만 느껴졌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목적은 돈 벌기 위함이다.
그래서 큰 아파트사고 큰 차를 사서 편히 사는 것이 생의 목적(目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말로 생(生)의 목적이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사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과연 몇 명이나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인생의 목적은 결코 모으는 자체가 아니라, 내가 모았던 것을 이웃과 나누며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에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볼 때 가장 기뻐했던 순간은 내가 상대를 눌러 이기는 것에 있지 않고,
나의 것을 갖고 나누는 순간이었음을 내 영혼은 알고 즉시 동의할 것이다.

연말이 되면서 사람들이 착해지고 있다.
죽을 때에는 더욱 순수해 질 것이다.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오늘 3등석 승객처럼 섬길 때 우리는 생의 확실한 목적과 더불어 자신의 소명(召命)을 알게 되는 것이다.

주여,

화려한 타이타닉 배에는 엄격하게 자리가 등급이 매겨져 있지만,
그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 배처럼 짧은 생을 살아갈 때,
성취가 아니라 성숙한 생을
대우받기 보다는 섬기는 삶을
높은 자가 아니라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의 미래와
종말(終末)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