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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과연 우리 인간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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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엔 딸만 둘 있다. 결혼한지 7년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 은]이가 태어났고, 또 4년 뒤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고 [하경]이가 태어났다.
     [하경]이가 돌이 갓 지났을 때 일이다. [하경]이는 아가 날 때라 잇몸이 가려워 선지 아니면 제 아빠를 닮아서인지 무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하 은]이가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하경]이가 또 [하 은]이 등을 물었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하경]이를 야단치고 [하 은]이를 위로하곤 했었지만 그 부드러운 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물렸으니 얼마나 아팠겠나. 그런데 그 날 [하 은]이는 멀리서 신문을 보고 있는 아빠를 쳐다보더니 동생을 때리지도 않고 그냥 참는 것이었다.
     옛 말에 아이들은 서로 싸우면서 큰다고들 하지만 싸워도 너무 싸운다.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해 낼 수가 있다. 아이들이 제 아비의 어린 시절을 모를텐데 어떻게 그렇게 꼭 같은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 그들의 행동에서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의 속마음이 발견될 땐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왜 아이들이 제 아비를 닮아도 그렇게까지 닮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선 과연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지만, 과연 우리 인간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자라면서 서로 싸우는 아이들의 모습과 나의 마음을 살펴볼 때, 난 내 형제나 이웃을 사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장래에도 나의 힘만으로는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가능성조차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볼 때 자기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  우리들은 언제나 자기 입장에서 남을 보기 때문에 상대의 행동만을 보고서는 서로 사랑하기 힘들게 된다. 좀 가진 자는 없는 이를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판단하며 업신여긴다. 반면에 없는 자는 있는 자들을 모두 도둑같이 생각하기도 하며, 열 번 도와주다가 한번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면 그 동안의 도움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오히려 욕하게 된다. 무엇이든 조금 아는 자는 안다고 유세떨고 모르는 자 또한 저들이 아는 체 한다고 아니꼬와 한다. 이런 우리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계속 피해를 줄 때는 각자 그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끝까지 참지는 못한다. 그 상대가 부모자식간이든 부부지간이든 인간과 이간 사이엔 참는데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자기가 상대를 위해 많이 참아줬다고 생각하거나 또 자신이 참아 준 만큼 상대가 변화되기를 기대하면 할수록 지속적인 사랑은 불가능할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을 봐서는 서로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인간들을 창조하셨고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며 서로 화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서로를 바라볼 때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신이 나면 아무리 힘든 일도 잘 참아낼 수 있다. 운동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구경꾼이 있어야 힘이 나듯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구경꾼이 있을 때 신이 나다. 더욱기 그 구경꾼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경우엔 더욱 신이 난다. 우리들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나님께서 우리들의 행동을 지켜보아 주심을 인식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겸손이란 남을 높이고 내가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나의 눈으로 나의 기준으로 남을 보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자가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위선이 아니면 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자기 바하 감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 즉 하늘나라의 법으로 볼 때는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속한 모든 높음이나 풍요는 하늘나라에서 비천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동생한테 피멍이 들 정도로 물린 [하은] 이가 동생의 행동을 보았더라면 동생의 행동만을 보았더라면, 동생과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을 것이고 부모의 마음도 무척 아팠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하은]이는 고통을 준 동생의 행동만을 보지 않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알아주었다. 이 아빠는 [하은]이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또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생이 속히 자라주기를 [하은]이와 같이 기다려 주었다. 하나님은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을 가르치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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