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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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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동화작가)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나는 산동네에 살았다. 성냥갑만한 집들이 산동네 높은 곳에 들꽃처럼 모여 살았다.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옆집에 오쟁이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오쟁이 아저씨는 안마 일을 하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오쟁이 아저씨는 밤 11시만 되면 노래를 불렀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창문을 활짝 열고 아주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드름장아찌 같은 얼굴로 오쟁이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돼지 목 따는 소리 내지 말라고 고추 먹은 소리로 소리소리 치는 술 취한 아저씨들도 있었다. 오쟁이 아저씨는 미안스런 얼굴로 머리만 조아렸을 뿐 부르던 노래를 멈추지는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오쟁이 아저씨의 야윈 뺨 위로 푸른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오쟁이 아저씨가 불렀던 노래는 '등대지기'였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오쟁이 아저씨는 등대지기만 계속 불렀다. 어떤 날은 열 번을 불렀고 어떤 날은 스무 번을 불렀다. 서른 번을 넘게 부른 날도 있었다. 나는 오쟁이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했다. 아저씨 노래를 듣고 있으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다의 전설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노래를 들으며 까까머리 사춘기 소년은 가끔씩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오쟁이 아저씨의 노래가 모두 끝나면 아저씨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아저씨의 예쁜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쟁이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때, 아저씨의 아내는 지팡이 걸음을 더듬더듬 멈출 수 있었다. 노랫소리의 크기로 집 앞에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저씨의 아내도 아저씨처럼 안마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의 노랫소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등대나 마찬가지였다. 캄캄한 어둠을 비춰줄 환한 등대나 마찬가지였다. 오쟁이 아저씨는 아내보다 늘 먼저 집에 들어와 노래를 불렀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캄캄한 골목을 걸어오는 아내를 위해 오쟁이 아저씨는 매일 밤 노래를 불러주었다. 북풍의 거리를 더듬더듬 걸어오는 아내를 위해 오쟁이 아저씨는 별빛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목이 터지도록 사랑의 찬가를 불러주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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