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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상처받은 마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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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마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
(이한규)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금방 짜증을 내지 않고 침착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원자폭탄처럼 짜증을 탁 내버리고 나서 나중에 변명합니다. "성질을 내서 미안하지만, 아시잖아요? 저는 뒤끝이 없어서 금방 풀잖아요?"

  폭탄을 터뜨려 사람을 죽여 놓고 자기는 풀었다고 하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태도입니까? 자기는 금방 풀겠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행위가 얼마나 큰 데미지를 주는지 모릅니다. 성질 내는 것은 아무리 적게 내도 상대방에게 대단히 큰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닌 성숙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지, '헐고 뜯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살랑거리는 말로 남에게 아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아첨하는 것'과 '남을 세워주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너무 상처를 잘 받는 존재이기에 서로 격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 마음이 상했을 때 그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왜 상처를 입에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합니까? 적절한 충고입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해해주는 것'이고, '같이 있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큰 어려움에 빠지면 대개 심한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보혜사'라는 말의 원 뜻은 '우리 옆에서 우리가 부를 때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사랑이란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어떤 일보다 '함께 있어주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충고'를 진지하게 주기보다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주어야 합니다.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형제들에게 충고를 듣는 것'보다 '형제들의 말을 잘 듣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우선적으로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실상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욱 소중한 사랑의 표식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복음)'을 주셨지 '좋은 충고'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남에게 '좋은 충고를 주기'보다 '우리 자신을 주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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