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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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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엄마와 저는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 모처럼 엄마가 쉬시는 날인데 저한테 영화 '집으로..'가 아직도 하냐고 물으시더군요. 신문에 여러번 소개되어서 보고 싶으셨나봐요. 마침 문화상품권 안 쓴게 있었고 나도 보고 싶어 했는데 잘되었죠. 어버이날 선물 앞당겨서 한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쓰면 한 사람은 공짜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영화는 한 시간 반정도 되었는데 손자의 엉뚱한 행동에 사람들은 울고 웃고 했습니다. 상우가 비녀대신 숟가락을 꽂은 할머니를 보고 몰래 다시 비녀를 꽂아주는 모습에서 엄마는 웃으셨어요. 순간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왜냐구요? 엄마가 웃으시는 모습을 정말 오랫만에 보기 때문입니다. 어릴때부터 너무 많이 고생했던 엄마.. 힘들다고 한 마디도 안 하셨었는데 요즘은 일하고 돌아오셔서 가끔씩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하셨는데 웃다니... 영화 때문에 우는건지 엄마 때문에 우는건지.. 엄마가 영화 보는데 방해될까봐 얼른 훔쳤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닐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 얘기는 여기 '마음 나누기에' 언젠가 올렸었죠. 너무 늦게 병을 알았고 갑자기 악화가 되어서 병원에 입원한지 20일만에 돌아가셨어요. 내 나이 열두 살, 여동생은 열 살, 남동생은 일곱살때 일입니다. 그때부터 엄마는 우리를 키우기 위해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어요. 안 해본 일이 없었죠. 건물 청소에 김밥집 주방일에 학교급식일까지..한 번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마늘이 산더미처럼 쌓였더군요. 뭐냐고 했더니 마늘을 깐 만큼 돈을 준다고 했다는거에요. 하나라도 더 까기 위해서 나는 숙제를 마치고 엄마를 도와서 마늘을 깠습니다. 한 달쯤 지나서 돈을 받는 날.. 엄마는 나한테 수고비를 주셨어요. 적은 돈이지만 너도 도왔으니까 받을 자격 있다고.. 엄마는 기관지가 별로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먼지가 많은 곳에서는 일하실 수 없었고 가끔씩 호흡곤란이 오면 약을 꼭 먹어야 했어요. 약을 먹으면 부작용으로 한 시간은 꼼짝 못하셨고...

그런데.. 이 못난 딸은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와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완벽주의에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라 화를 낼때면 제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쏟아놓으셨거든요. 그 때문에 받은 상처가 많다는것을 대학생이 되고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으면서 알게 되었어요. 어쨌든 행동으로 말썽부리지 않았지만 상처는 가슴속에 쌓여서 엄마가 정말 미웠어요. 남동생을 싸고 도는 엄마가 정말 미웠습니다. 왜 맛있는것이 생기면 남동생부터 먹이고 우리들은 나중에 먹이는지... 모든것을 엄마탓으로 돌리며 난 피해자라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나보다 내 남동생이 더 중요하다고  난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라 생각했어요. 난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을 요구하는 엄마...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냉전이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너같은 딸 낳아보라고 소리쳤죠.

원서를 넣은 두 대학이 떨어지자 엄마는 전문대에 가라고 했어요. 난 싫다고 했죠. 내가 가고 싶은과 갈거라고..그날 교회에서 수련회가 있었는데 자초지종을 들은 담임목사님이 집에 전화를 하셨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 나한테 다 들렸는데 엄마는 할아버지가 여상보내라는걸 일반계 고교를 보냈고 전문대 쓰라고 한걸 일반대학 보낸거라고 하시는거에요.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결국은 후보로 일반대학에 합격했죠.
그때부터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때 선교단체 수련회에서 '치유'에 관한 강의를 두 번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엄마에게 받은 상처와 동생들에게 받은 상처가 많다는걸 알았어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원망하고 분노하고 있다는것도... 용서한다는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난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알았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노력했어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가 얼마나 하나님앞에서 죄인이었으며 그 죄를 용서 받았는지 알게 되면서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용서했습니다.

그런데.. 난 여전히 냉담했습니다. 용서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었으니까요. 용서하면 치유는 된거고 그럼 다 아니냐는 생각이 의식속에 있었어요. 집안일에 그리고 대화하는데는 도통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선교여행때 깨닫게 하신것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인지.. 그리고 내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싶지 않아 도망가거나 정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라는것..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선물 공세를 펼치는 사람이라는것.. 그 모든게 가족과의 관계때문이라는걸 알게 하셨죠. 용서를 넘어서서 대화의 단계로 나가야 하는데 용서만 하고 냉담한 제 자신을 보았어요.그리고 가족외에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있는데 치유된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하셨어요.가족들에게 냉담한 나를 회개하게 하셨어요. 다녀와서 치유에 관한 책을 학사회 간사님과 공부하면서 가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엄마와 대화할 기회를 찾게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힘듭니다.

엄마는 요즘 힘들다고 네가 결혼하든지 취직하면 그만두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얘기 들으면 괴롭습니다. 둘 다 내 힘으로 될 수 있는게 아니라서요. 직장 구하는게 쉽지 않아서 엄마의 고생을 그냥 지켜보아야 한다는게 괴롭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자책하고 있었는데 어제 영화를 같이 보러 간거였어요. 치유가 진행되면서 엄마가 왜 그랬고 왜 그렇게밖에 말 할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게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거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영화 보고 와서 엄마한테 어버이날 선물을 했습니다. 유선전화기.. 전화기가 낡아서 전화할때마다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애먹었는데 제가 선물한거죠.. 작년에 중국 선교여행을 다녀오느라 그동안 조금씩 벌어온 돈을 거의 다 쓰고 얼마 안 남아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진 끝에 가장 저렴한거로 샀어요. 엄마에게 처음으로 내가 번 돈으로 선물한거랍니다. 중고등학교때는 선물같은거 안했는데..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차마 못했습니다. 원래는 작년 내 생일에 하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못했죠. 곧 있으면 엄마 생신인데 그 때 할 수 있으려나..

"엄마.. 사랑해요.  나와 내동생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잘 길러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 고생하는거 뻔히 보면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어렸을때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서 못되게 굴었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정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 이렇게 공부만 해도 되는건지.. 내가 일자리 구하면 그만 두어도 될텐데..엄마 나 낳아주고 잘 길러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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