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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웃 돕는데 자격증 있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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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담안에서 변화된 사람들] “이웃 돕는데 자격증 있어야 하나요” 

나이 예순다섯인 김봉례 여사는 남편과 지난 30년간 서울 창신동에서 옷가게를 해 왔다. 2000만원 보증금에 월세를 내는 작은 점포였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손님들이 점점 떨어져 나갔다.

교회에 가도 봉사는 시키지 않고 자꾸 노인으로만 대접해주려고 했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노인이 되기는 싫었다. 뭔가 아직 땀 흘리며 남에게 봉사하는 일을 갖고 싶었다. 김 여사는 자신이 할 줄 아는 마사지를 생각했다. 그녀가 엄지손가락으로 전신의 혈관을 구석구석 눌러주면 다들 시원하다면서 좋아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면 몸이 아픈 노인들에게 마사지를 해줬다. 그렇게 해서 혈액순환이 잘 되게 되니까 많은 노인의 병이 좋아지게 됐다. 김 여사의 인기가 점점 올라갔다. 그녀는 구슬땀을 흘려가며 몇 시간씩 마사지를 해주었다. 환자들은 고맙다며 케이크를 가져오기도 하고, 더러 1000원짜리 지폐 몇 장을 몰래 놓고 가기도 했다.

한번은 무명지가 굽어 손바닥에 붙어버린 노인이 찾아왔다. 젊어서 농사를 짓다 낫에 베었는데, 그때부터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기도하면서 그의 오그라든 손가락을 열심히 주물러주었다. 그러자 오그라들었던 손가락이 펴져 거의 정상에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마사지하면 완전해질 것 같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잡고 약간 힘을 가해 봤다. 그 순간 ‘톡’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지만 그 날은 환자가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별 말 없이 돌아갔다.

며칠 후 그 노인의 딸이라는 여자가 왔다. “할머니. 이런 일, 자격증 없이 한 거죠?”

여자는 이미 이쪽의 약점을 잡고 있다는 오만함이 표정에 역력했다.

“그런 거 없는데요. 왜 그러죠?” 김 여사는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가 여기 와서 치료를 받다가 손가락뼈가 부러졌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었고 치료도 했어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김 여사는 떨면서 대답했다. 가슴속에서 방망이질하는 소리가 났다.

“손해를 배상하셔야죠. 2000만원만 준비해 두세요. 그러면 없던 일로 해드리겠어요.”

“네? 그렇게나 많이? 나는 그런 돈 없는데….”

그녀는 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은 그냥 남들을 위해 좋은 일 하려고 한 것뿐인데…. 어쨌든 그 돈을 마련하려면 가게 보증금 2000만원을 빼줘야 하고, 그러면 영감과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었다.

“의료법 위반으로 걸리면 벌이 엄할 걸요.” 딸이라는 여자가 덧붙였다. 김복례 여사는 결국 그 딸이란 여자에게 고발을 당했고 난생 처음 법정이란 곳에 서야 했다.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을 치료하셨죠?” 판사가 물었다.

“그냥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사람들에게 좋은 일 좀 하려고….”

“그래도 자격증 없이 그런 일을 하시면 의료법 위반이라는 것도 모르셨어요?”

판사가 사정이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판사가 다시 물었다.

“합의하실 생각 없어요?” 합의하면 의료법 위반죄도 용서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돈을 줘야지요…한데 그 집 딸이 너무 많이 달래서요.”

그녀는 법정 분위기가 무섭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많이 주눅들어 있었다.

김 여사를 변호하면서 나는 그녀의 도움을 받은 여러 이웃들을 증인으로 동원했고, 그녀의 순수한 동기를 열심히 변론했다. 판사는 결국 정상을 참고한 판결로 김 여사를 풀어주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자격증 시비’에 종종 휘말렸다. 예수님이 장님을 고쳐주고, 벙어리를 고쳐주고, 문둥병을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려낸 성경의 기적들도 요즘의 시각으로 본다면 모두 의료법 위반이고, 감옥에 가야 할 중죄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세상은 모든 행위에 자격증을 요구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해서 아무 대가 없이 주님의 사랑을 전달하려고 해도 자격증을 요구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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