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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깨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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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맞으면 깨진다고 한다. 두꺼운 자아를 깨기 위해서는 시련과 고통이 필요하다. 탕자는 아버지를 저버리고 허랑방탕하게 지낸다. 외국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주는 자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깨진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생각나서 돌아온다. 맞아서 깨지는 것은 아프다. 대부분 깨지는 길이 맞아서 깨지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찬양도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맞아서만 깨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뜨겁게 사랑하고, 의를 붙들고 제대로 살려고 발버둥쳐도 깨진다. 한번 철저히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 보라.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도저히 자신은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산산조각이 나고, 철저히 깨진다.

마르틴 루터는 철저히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다. 죄만 지으면 신부를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했다. 너무 자주 오니까, 신부가 "좀 한꺼번에 몰아서 가져오면 안되냐"고 외쳤다는 일화도 있다. 루터가 발버둥치면서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자신은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자각이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치며 일어섰던 것이다.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순종하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하는 교만과 자부심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깨지는 길로 가게 된다. 종종 불효자를 만난다. 양심이 있어서 어떤 계기를 통해서 깨지곤 한다. 그러나 불효자만 깨지는 것이 아니다. 효자는 더 철저히 깨진다.

오랜 병상의 어머니를 10년 넘게 섬겼던 헌신적인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불효자라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뜨겁게 효도해도 깨지는 것을 보았다. 효도하면 할수록 자신은 온전한 효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깨지는 것이다. 뜨겁게 사랑할 때, 더 크게 깨진다.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랑의 뜨거움을 부인할 수 없는 진실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꽃같은 나이에 데려와서 험악한 손을 만들었구려.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구려." 뜨겁게 사랑하는 남편의 깨지는 모습을 본다.

보통 참회록은 죄인이 쓰는 것인 줄 안다. 그러나 참회록은 성자가 쓰는 것이다.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깨지면서 고백하는 것이 참회록이다.

왜 믿는다고 하면서 메마르고 거친가? 깨짐이 없기 때문이다. 왜 지속적인 능력이 임하지 못하는가? 맞아서 깨지는 것 외에는 깨지는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사사기'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말씀대로 산다고 발버둥치고, 내가 말씀대로 살았다고 외치는 것이 율법주의이다. 나는 올바른데, 남은 모두 거짓 선지자라고 외치는 것이 율법주의이다. 진정한 헌신과 뜨거운 사랑은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고백과 함께 깨지는 것이다. 이런 깨짐만이 교회에 새생명을 줄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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