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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 돌 같이 신령한 집 (벧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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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돌 같이 신령한 집 (벧전 2:1-5)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불행은 대체로 남들을 부러워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부러워하는 것도 매우 다양한 것 같지 않습니까? 외모, 재산, 학력 등 거의 모든 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목사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를 맡아서 목회하는 목사는 큰 교회 목사를 부러워합니다.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 성도들은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 다니는 교회 성도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러움이란 것이 도대체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부러움은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무인도에서 살 것 같으면 부러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만 뜨면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는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지, 어느 교회가 더 큰지 비교하는 마당에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삶을 조금만 진지하게 살필 것 같으면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대체로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들은 이미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부자라고 해서 숨을 쉬는 데 있어서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명 현상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삶에 있어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소중한 것들만으로는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크고 높은 것은 선호하지만 반면에 작고 낮은 것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겨울이 다하면 곧 봄이 오는 것처럼 높고 낮은 것은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것을 아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주님은 그렇게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삶을 사셨고 또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 주님의 삶과 죽음을 회상하면서 사도 베드로는 오늘 주님을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본래 건축자들이 버린 돌과 같았습니다. 그런 하찮은 돌을 하나님께서 건물을 받치는 기초석, 즉 요긴한 모퉁잇돌로 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주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돌은 모든 믿는 자들의 구원을 보장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더욱 보배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그 때 거기서 있었던 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동일한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도 보배로운 산 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핍박이란 것이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정도의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반사회적인 존재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리고 황제 숭배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에 걸핏하면 목숨까지 빼앗겼습니다. 실제로 갑바도기아 지역을 가 보면 로마 당국의 핍박을 피해서 모여든 수만 명의 성도들이 땅굴을 파고 숨어 지낸 흔적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그 흔적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와 같이 낮고 천한 삶이 놀랍게도 거룩한 제사장으로 섬기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친히 보여 주신 삶이 그런 삶이기 때문에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도 역시 그런 삶을 통해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하며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 말씀에서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그 유명한 ‘만인 제사장설’이 나왔습니다. 원래 제사장직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이 맡았습니다. 그 제사장직은 혈통에 따라서 특권처럼 대물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믿음으로 나아가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새 시대의 제사장들은 교회의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섬기면서 누구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반절)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그 열매를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만인 제사장설은 순수한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버려진 돌에서 보배로운 산 돌로 완전히 역전된 주님의 삶과 죽음을 깊이 새길 때에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제사장직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겸손하게 선교적 사명을 실천해야 할 섬김의 자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지는 않습니다. 약간의 어려움은 있을 수 있겠지만 옛날에 비하면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가치 기준이라는 것이 또 다른 우상 숭배로 우리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아니 오늘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 그 고난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모퉁잇돌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돌이 버려진 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로는 ‘만인 제사장설’을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을 민주적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뜻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삶과 죽음의 구체적인 목표가 되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섬기는 삶을 통해서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모퉁잇돌의 가치에 집중한 나머지 그 전에 버려진 돌로서 겪었던 주님의 고난을 결코 외면해서는 아니 됩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가야 할 이 순례의 길이 때로는 돌에 맞아 죽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도 우리를 아주 넘어지게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될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7~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렸습니까? 우리는 과연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과 비교할 것도 없고 남들을 부러워할 이유도 또한 없습니다. 일찍이 주님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모든 것 다 떨쳐버리고 그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가신 주님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끝까지 주님을 뒤따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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