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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을 찾는 사람들 (요 1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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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사람들 (요 14:5-1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

소망교회의 목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결론은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를 부르신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릴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을 때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기쁜 마음이 듭니까? 아버지를 아버지로 존귀하게 여기고 어머니를 어머니로 존귀하게 여기는 자녀의 모습을 볼 때 내가 내 자녀를 잘 키웠구나 하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인격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드리는 모습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사무엘상 2:30)

하나님은 당신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함께 높여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닮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면적인 것으로써 이것을 하나님 되심으로 직접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그 분의 성품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 분 안에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두 번째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고 축복의 통로로 세워주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인 언어로 ‘진’, ‘선’, ‘미’ 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적인 언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시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아름다우십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실 때 “보시기에 좋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멋지구나.”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계를 아름답게 하고 선하게 하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보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의 질서가 공의와 정의 가운데 세움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언어이면서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정의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라고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사랑일 것입니다. 노래 가사를 들어봐도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사랑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언어이지만 동시에 신앙적인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실을 우리의 삶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세 번째로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받은 믿음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수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한국교회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아들, 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혀를 차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기도하고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의 생애를 멋지게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십시오. 우리의 젊은이들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젊은이들 가운데에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청년들이 많아야할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청년 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청년 됨을 잃어버리면 그 교회는 그때부터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유대 랍비였던 시드니 그린버그는 청년과 노인을 이렇게 구별합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을 신뢰할 줄 알면 당신은 청년이다. 그러나 사람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하면 당신은 노인이다. 우리 마음속에 행복을 갈망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있으면 청년이다. 그러나 과거만을 회상하고 있다면 노인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과거에는”, “옛날에는”, “왕년에는” 이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생의 잠깐, 1/10, 1/5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린버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할 줄 안다면 당신은 청년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남에게 사랑을 받기만 원하고 있다면 당신은 노인이다.” 그린버그는 그렇게 청년과 노인 됨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청년의 모습입니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미래가 하나님 안에서 열려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이가 몇이 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그리워하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신앙운동을 하셨을 때 그분은 청년이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누가복음 3:23)

여러분은 30세 때의 기억이 나십니까? 30세 때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마음속에는 무슨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꿈을 외적으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만을 위한 생애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생애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생애에서 하나님을 위해 자기 인생을 드리기 시작한 나이가 30세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청년들이 예수님과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함께 참여했던 것이 바로 기독교 공동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대와 희망을 품으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모든 것이 잘됐습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덩달아 제자들의 인기도 올라갔습니다. 이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고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새로운 통치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3년을 그렇게 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께서 돌변하셨습니다. 아니, 제자들이 그렇게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너희들은 나의 길을 따라오지 못할 거다. 천천히 후에 따라오게 될 거다.” 라고 하시면서 고난을 예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갑자기 흔들렸습니다. 걱정이 생겼습니다. 근심이 그들을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왜 그러실까? 왜 느닷없이 자기를 떠난다고 하고 이제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당신 혼자 그 길을 가시겠다고 말씀하실까?’ 

이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질문을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핵심 제자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본문 앞부분에 있는 13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중요한 세 명의 제자가 근심으로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등장한 제자는 베드로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나올 때마다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고 한편으로는 용기를 얻습니다. 베드로는 문제가 있으면 즉각 대응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의심이 생겼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에도 손을 들고 예수님에게 제일 먼저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한복음 13:36)

심상치가 않습니다. “어디로 가시려고 자꾸 고난을 얘기하시고 어디로 가려고 이제는 따라오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 다음에는 도마가 등장합니다. 도마는 가장 질문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회의가 있었던 사람이었고 비판적인 안목을 갖고 있던 제자였습니다. 그는 날카롭게 예수님을 향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14:5) 

“주님, 어디로 가는지 말도 안하시면서 우리가 그 길로 오라고 하시는데 그 길이 도대체 무슨 길입니까?” 하고 자기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떻게 가야합니까?” 

그 다음에 세 번째 등장했던 제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빌립이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뜻을 잘 이해했고,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께 순종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빌립까지도 예수님 앞에 나와서 질문을 합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한복음 14:8)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알면 아버지를 안다.” 그러자 빌립이 질문합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버지를 보여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믿음 안에서 견고히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이들은 3년 동안 따라다녔어도 예수님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마지막으로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지 몇 년이 되었습니까? 성경을 펴서 읽은 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참 지혜입니까? 예수님이 생명입니까? 예수님이 길입니까?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예수님이 진정 우리를 저 하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까?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죄악을 고백하면 내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참된 평안과 자유가 주어지는 것입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질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다. 내가 진리다. 내가 생명이다.” 여러분, 인류역사 속에서 이런 말을 하신 분이 없습니다. 어떤 성인이, 어떤 지혜자가, 어떤 철학자가, 어떤 위대한 선생이 이런 말을 단순하고 담백하고 진솔하게 했습니까? “내가 길이다. 내가 진리다. 내가 생명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까? 어떤 공부를 해야, 어떤 대학에 들어가야, 어떤 여자를 만나야, 어떤 남자를 만나야 내 인생이 참된 길에 들어서는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결단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광수가 쓴 나침반 제목의 글입니다. “예전에 어린 나는 가슴속에 나침반이 하나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가슴속의 나침반이 나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돈의 집착하기 시작했고 가슴속에 나의 나침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몸에 쇠 가루가 많이 묻으면 나침반은 돌지를 않는다. 나의 순결한 나침반이 우울증을 앓던 날, 나는 그렇게 나의 길을 잃어 버렸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니 우리도 겪고 있는 삶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가면 모든 것이 있을 줄 알고 달려왔는데 빈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잠깐의 기쁨, 잠깐의 쾌락이 있었는데 그 마음속에 영원한 평안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돈 버는 방법, 지식을 얻는 방법,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출세하는 길 그것을 향해서 달려가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의 길이고, 너의 진리고, 너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나침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동쪽으로 갈까? 남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떤 길로 가도 괜찮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가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신데 그 분과 함께 내 인생을 열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길 가운데에서 물어보지 아니합니다. 길이신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합니다. 그러면서 잘못된 길을 찾았다고, 잘못된 길로 갔다고 탄식하고 슬퍼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이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을 빼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통로, 모든 길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나아가는 길도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분 안에 용서가 들어있고, 진리가 들어있고, 생명이 들어있고, 길이 들어있고, 지혜가 들어있고, 능력이 들어있고, 평화가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축복해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예수님을 더욱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갖는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서 수많은 남성들이 돌을 들고 쳐 죽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봐라.” 수많은 남자들이 다 물러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그러면서 그 여인을 위로해주셨습니다. 하늘의 커다한 죄 용서의 축복이 이 여인에게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동료로부터 조롱을 받고 “너는 불결한 놈이야. 너는 더러운 놈이야.” 라고 비난받으면서 왕따를 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의 손을 만지시고 “네가 고침을 받으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이 나병환자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예수님에게 안기려고 할 때 제자들은 “야, 너희들 시끄럽다. 너희들 다 물러가라. 귀찮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시며 어린 아이들을 감싸 안으시고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때 하늘의 축복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악의 도시인 예루살렘 성을 보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며 슬퍼하시면서 통곡하실 때, 하나님도 똑같이 슬퍼하시면서 통곡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도 인간의 죄악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시고 너무나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대낮이 어둠과 같이 깜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것이 죄책감입니까? 예수님 앞에 토해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셔야 합니다. 지혜가 모자랍니까? 예수님에게 내 모든 것을 아뢰어서 하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용기가 없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길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제 세상을 향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내가 길을 찾는 자였다가 예수님을 통해서 길을 찾은 자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선포해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에 예수 믿는 것을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이 안에 하늘의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의 모든 보화와 지식과 은혜를 나의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고 증거 하는 하나님의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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