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16)

첨부 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16)

초등학교 5학년생이 ‘소나기’라는 단어로 3행시를 지었습니다. 여러분 ‘소나기’라고 운을 띄워 주시겠어요. - ‘소’ : 소방차가 불난 집에 불을 끄고 있다. ‘나’ : 나는 신나게 불구경을 했다. ‘기’ : 기절했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었다. ... 이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남의 어려움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정작 내 일이라면 기절하고 작은 일에도 난리를 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이냐 나냐, 하나님이냐 어떤 쪽이 나의 삶의 중심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독교 강요’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겼고,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그리고 한 손에는 신문을!”, 

이 말은 그 시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복음을 그 정황에 맞게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국민일보 어제 신문에 나온 기사들의 타이틀을 몇 가지만 보면, 먼저, ‘독극물 테러 고교생, 괴롭힘 복수로 제초제 섞은 음료 몰래 가져다 놓아, 엉뚱한 급우만 다쳐’, 또 ‘SG워너비 출신 가수 채동하 자살’, 그리고, ‘부산 아내 살인 사건, 대학교수 제 발등 찍은 사연, IT전문지식 동원했다 덜미’, 또 ‘캠프 캐럴 독극물 매립지역 헬기장 부근 외 2곳 더 있다’, 그 외에도 ‘복수 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딜레마’, ‘과학벨트 유치 대전 유성구 아파트 매매가 큰 폭 상승’ ... 

내용들을 보면서 자신을 괴롭힌다고 음료수에 제초제 섞은 학생, 대학교수가 자신의 아내를 살인하고 내연녀에게 카카오톡으로 문자 보냈다가 증거 제거하려고 삭제 요청했는데, 다 복원되어서 덜미를 잡혔다는 내용. 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이 우울증으로 자살하여 이미 자살한 여러 명의 연예인 중의 한 명으로 기록이 되게 되었다는 것임. 

또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노조문제가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학벨트 유치한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이를 놓친 지역들은 배 아파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시고 뒤 이어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세상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의 본질이 무언인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즉 이 세상은 어두우므로, 캄캄하고 절망적이고 죽음의 세상이므로 빛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사회가 어떠합니까? 불의를 정죄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사회요, 자신의 편리와 이익만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사회요,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요, 사회 전반에 죄악이 있는 어두운 사회인 것입니다. 

(찬송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실제로 이 세상을 보면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이 조종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적인 물질주의자들이나 과학주의자들을 조종하고 있고, 세상에서 영향력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이상 세계나 천국이 아닙니다. 어두운 곳입니다. 빛이 필요한 곳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해야만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별로 훌륭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 보십시오. 선은 별로 없고 죄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들마다 못된 것들, 욕심과 권력, 명예,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은 절대 선행으로 천국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빛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위치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말씀은 세상 밖에서 세상을 도피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그래요. ‘이 지긋지긋한 세상 잘 안 보고, 산 속에 들어가서 속 편하게 살고 싶어요.’ - 이 죄 많은 세상을 도피하여 신앙 속에서만 산다? 현실을 잊어버리고 저 태백산이나 또는 계룡산 같은 데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 기독교는 세상을 떠나 사는 은둔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과 하나 되는 세속주의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비관, 은둔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세상과 동일, 세속화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분명하게 우리가 살아야 할 위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 속의 빛’...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와 로마서에서 빛에 대한 말씀을 했습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전에는 어두움에 있었어도,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빛은 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익명의 그리스도인’,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가리켜서 ‘신앙 고백적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은 울리지 않으면 종이 아닙니다. 그렇듯 신앙 고백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구분할 것이 있습니다. ‘선한 행동과 종교적 행위(구제, 기도, 금식, 등)는 가능한 한 은밀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만, 신앙 고백은 반드시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 믿음을 나타내고 증거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인 됨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식사 때만이라도 기도함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 됨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유혹도 적어지고 신앙도 성장하는 법입니다. 

서울에서 꽤 큰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이 어느 날, 택시를 타고 볼 일을 보러 갈 일이 생겼는데, 돌아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요금계산을 하면서 얼마 되지 않는 요금으로 기사분과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한참 시끄럽게 시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만 택시에 가방을 두고 내렸어요. 그런데 그 가방 안에는 성경책과 주보, 등이 있어서 금방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안절부절하고 하룻밤을 지냈는데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목사관으로 돌아왔을 때 그 기사분의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인즉 가방 주인을 알 수 없어 내용물을 확인했더니 목사님인줄 알고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어느 교회의 집사라고 고백을 하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그러더래요. 그러자 목사님은 아니라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전화를 통해서 서로의 부족과 허물을 고백하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빛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3. 빛은 적극적으로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계속해서 예수님은 빛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말 아래’에서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나무 그릇입니다. 촛불이나 등불이 바람에 꺼질 것 같으면 이 ‘말’로 가리거나 덮는데,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등경’은 등불 받침대를 말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에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결국 빛은 비추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이 비추어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빛이 비추어지면, 

1) 어두움이 드러나게 됩니다. 

빛의 고유하고 독특한 역할은 어두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빛이 없을 때는 어두움이 어두움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즉 죄는 죄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방에 불이 켜졌을 때 드디어 어둠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에 들어오기까지는 내가 어두움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지만 예수님이 나의 생에 들어오면 그 동안의 나의 삶이 얼마나 절망 속에 있었고, 허무와 죽음 속에 있었고, 잘못된 삶이었었는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빛이 비추는 순간 어두움은 사라지고 죄와 허물과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앞에서는 거짓과 불의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앞에서는 불의가 두렵고 부끄러워서 비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그리스도인은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2) 빛은 길을 인도해 줍니다. 

빛이 없이는 어두움이기에 갈 바를 모릅니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수밖에 없으며 갈 길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빛은 환하게 갈 길을 인도해 줍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분명하게 나아갈 길을 아는 사람입니다. 

죄 사함의 길, 평안의 길, 행복의 길, 오늘의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길, 진실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압니다. 

흔히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진실하게 살 수 없고, 바르게 사업할 수 없고, 양보해서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진실하고도 살 길이 있고, 정직하고도 사업할 수 있고, 손해 보고도 평안할 수 있고, 주일을 지키고도 대학 갈 수 있고, 양보하고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평생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평안과 행복과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 있음을 자신 있게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왕십리 교회의 박경진 장로님이 계십니다. 진흥문화사라는 회사를 일으켜서 오늘에까지 이른 분입니다. 제가 종교교회 전도사 시절, 처음으로 만나고 이후에 군에 있을 때, 장로님의 도움으로 군인교회에 무료로 달력을 제작해 주셔서 사용했었던 인연이 있었는데, 중곡교회 시절 같은 지방에 있다 보니까 함께 일도 하고 교제할 시간이 있었던 장로님이십니다. 

요즘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실린 글을 중심으로 책을 내셨는데, ‘나의 믿음은 오직 감사’라는 책입니다. 

박 장로님은 충남 서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떠지지 않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에 20살이 될 때까지 부끄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열등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16살까지 호적에도 없는 아이로 성장할 정도로 집에서도 관심과 기대를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일평생 머슴살이를 하신 아버지께 계속해서 들은 말이 “주제넘지 마라”, “분수에 맞게 살아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곧 타고난 대로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비록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골 농가에서 장애를 안고 태어났으나, 장로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 결혼한 후부터는 매주 ‘감사헌금’을 드려왔다고 고백합니다. 큰 기업을 이루고 성공한 이후에도 자신을 위한 삶이라기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세상에 봉사하려는 장로님의 모습은 저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장로님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감사할 뿐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에는 정말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빛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업인으로는 ‘이랜드’의 박성수 사장 같은 분이 계시고, 과학인으로는 과기처 장관이었고, 명지대 총장을 지낸 정근모 장로님 같은 분도 있음. 정치인으로는 또한 자신은 하나님의 대사임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신실한 크리스챤 외교관으로서 살아왔던 김하중 대사 같은 분도 계십니다. 

이밖에도 고3시절 주일을 온전히 지키고 찬양대로 봉사하면서도 소위 일류 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얼마든지 있고, 직장에서 양보하고 손해보면서도 진실하게 살아 고위직으로 승진한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정 예수 잘 믿는 길이 평안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구원의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예수 잘 믿고 살리로다” 

이렇게 살게 될 때 그 결과로 이 세상은 밝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빛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이 된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기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빛이 비추어지면 그 영광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면 영광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빛으로서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주님께로서만 축복받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