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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요 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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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요 3:14-16)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쓴 한 우화는 "옛날에 한 가난한 아가씨를 사랑한 임금이 있었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임금은 그녀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했을까요? 그녀를 두려움이나 위압으로 억지로 응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임금은 그녀가 자기 그대로를 사랑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왕으로 나타나면  사랑하는 사람이 자유를 잃게된다는 것을 알고서 평민으로 내려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왕위를 내어놓고 왕의 예복을 벗고 초라한 외투를 둘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장이 아니고 신분을 아주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젊은 여인으로부터 결혼을 승낙 받기 위해 하인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영국의 왕실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대영제국의 왕의 자리를 포기한 사건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런 사랑을 한 번 받아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하며 심프슨 부인을 부러워합니다.  사실 사랑을 위하여 비싼 값을 지불할수록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러분도 그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덴마크나 대영제국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완벽한 나라의 왕인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이처럼...  이처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외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농장에 병아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병아리가 병들어 시름 시름 앓더니 급기야 죽어갔습니다. 수의사가 진단을 하더니 암탉을 한 마리 잘 고아서 먹이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수의사를 향해 "당신 정신 나갔소? 병아리를 살리려고 암탉을 죽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하며 막 화를 냈습니다. 
  
만약 수의사가 송아지를 잡아 먹여야 한다고 하면 그 말을 따를 농장주가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병아리를 살리려면 농장 주인의 아들을 죽여야 한다면 그 말대로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불의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거룩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계산적으로 따져볼 때 그것은 손해보는 일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바보여서 그렇게 귀한 아들을 내어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실수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실수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무지무지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외아들을 기꺼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해 보셨습니까?  정말로 사랑하면 이쁜지 안이쁜지 따지지 않습니다.  정말로 사랑하면 돈이 많은지 적은지도 따지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도 따지지 않습니다.  능력이 많은지 적은지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아무 조건없이 그냥 좋은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잘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처럼 열렬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하늘의 그 영광스러운 보좌를 포기하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종의 모습으로 세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언제 나를 사랑했느냐?고 따집니다.  '난 예수님의 사랑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고 투덜거립니다.  여러분,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도 내어 주며  죄를 용서받을 길을 열어주신 사랑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목숨까지도 희생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그 크신 사랑을 외면한다면 천벌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잘 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셨을까요?  여러분이 가진 것이 많고 대단한 존재라 사랑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큰 죄인입니다.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누리며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마치 세상에 사랑할 대상이라고는 여러분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십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불의하기 짝이 없는 자를 향하여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수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가와 권하고 붙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불하신 값은 아주 비싼 것입니다.  외아들하고 맞 바꾼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거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선물로 받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어떤 수도원에 있는 주방장의 어린 아들이 날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수도원장은 어린 아이를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매일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예수님께 세 가지를 물어보고 대답을 해 다오. 첫째, 원장님 등에 점이 있는데 몇 개가 있느냐?고 물어봐다오.  둘째 원장님이 학창시절에 특별히 공부를 못한 과목이 무엇이냐고 물어봐다오. 셋째 원장님을 괴롭히는 죄가 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다오."  

다음날 아이가 수도원장에게 달려와 대답했습니다. "원장님 등 뒤에 점이 다섯 개 있습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수학을 늘 D학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장님의 죄는 예수님께 고백하여 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억하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피차 상처를 많이 받고 잊지 못해서 서로 미워합니다. 용서하지 못합니다. 가족간에도 용서가 잘 안되어 갈등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조차도 실수한 것이 잊혀지지 않아 괴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로 우리는 죄사함받고 멸망치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믿어야 합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선물로 주시는 영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믿음을 이해하려면 14,15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옛날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노예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힘없는 민족이 쫓기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건져주셨습니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목마른 것을 보시고 만나와 생수를 주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더위를 식혀주시고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독사를 보내셔서 심판하셨습니다.  물리는 사람마다 그 자리에서 죽어갔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해독제를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놋뱀이었습니다. 구리로 만든 뱀을 장대에 매달아 누구든지 독이 퍼져 죽어가는 자마다 장대끝에 매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면 살아난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니 상처에 바르는 해독제나 독을 없애는 먹는 해독약을 먹어야지 그깟 것을 본다고 사나?'하며 외면한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왜 구리뱀을 보면 산다고 하셨을까요?  믿음을 가르쳐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어도 논리적으로 틀린 것 같아도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눈을 들어 구리뱀을 바라본 자는 독이 사라지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모세가 장대에 매달았던 구리뱀처럼 십자가에 높이 들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바라보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여러분을 파멸로 이끄는 독이 다 빠져 나갈 것입니다.  죄악의 독이 빠져 나갑니다.  저주의 독이 빠져 나갑니다.  사단이 여러분의 마음에 뿌린 독이 사라집니다.  우울증도 없어집니다.  미움과 시기의 감정의 독도 사라집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여러분 자신을 괴롭히는 죄가 용서받고 사라집니다.  가족을 괴롭히는 악한 성격도 사라집니다.  마약의 중독도, 알콜의 중독도, 방탕의 습관도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앞에 가서 심판받아 마땅한 여러분이 지은 모든 죄가 다 지워집니다.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보세요.  예배를 드리면서 눈을 크게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예수님께서 만나뵙기를 사모하는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면서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예수님께서 사모하는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영의 눈을 크게 뜨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말씀을 통해 만나주실 것입니다.  모든 삶 속에서 수시로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예수님께서 영으로 만나주시고 말씀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치료해 주시며 기쁨과 평안을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하며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독사에게 물려 온 몸에 독이 퍼져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바라보듯이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삽시다.  아무리 바쁘지만 예배시간마다 내가 살려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며 주님을 만나러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합시다.  마지못해 예배드리러 오는 분은 매 주일마다 빠지지말고 예배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주일 낮에만 한 번 드리는 분은 당연히 여기지 말고 주일 오후에도 수요일에도 참석하려고 노력합시다.  공예배만 참석하는 분들은 기도회에도 참석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기도속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은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잘 못 믿는 것은 거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음이 식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거의 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세상과 벗하고 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과 벗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벗이 되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전도하려고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영향이 여과없이 그대로 우리안으로 흘러들어오면 믿음이 식어지고 종국에는 믿음에 파선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같이 어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충만케하여 확신속에 영향을 끼치며 사는 것입니다.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못 되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저들을 따라 죄 짓는 것입니다.  저들을 따라 육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들을 따라 썩어질 것에서 만족을 찾고 이 세상에서 잠시 잠간의 만족을 위해 영원한 것을 팔아버리는 에서같은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믿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체적인 모임에도 열심을 내고 목장안에서 작은 그룹으로 자주 모여 믿음으로 승리한 경험들을 피차에 나누며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까?  잘 믿는 사람입니까?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님이 보입니까?  여러분을 진실되게 사랑하신 하나님이 보입니까?  혹 세상만을 바라보느라 눈이 어두워져 갑자기 빛되신 예수님을 보려해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예배에 마음을 쏟아보십시오.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조용히 성경을 펴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눈이 열릴 것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충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뵈오며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아 누림으로 행복하게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부지런히 사랑하여 행복을 확산시키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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