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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듣고 믿게 해주신 은혜 (롬 1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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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듣고 믿게 해주신 은혜 (롬 10:16-21)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의 구원을 소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롬10:1). 그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음을 증언했습니다(롬10:2). 다만 그들이 열심만 있지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를 모른 채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롬10:3). 달리 말하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행위로 말미암는 의에 의해 살기를 힘쓰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의를 얻어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인한 의는 실제로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불가능한 일이기에 오직 믿음에 의한 의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유대인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0:9-1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유대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내어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롬10:11-15).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비록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응답한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은 아주 적은 무리만이 복음의 요구에 순종한 사실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가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본문 16절) 하며 탄식했음을 상기합니다. 즉 아주 적은 수의 이스라엘 사람만이 믿음에 의한 구원이라는 복된 소식을 믿는 것은 이미 이사야의 탄식을 통해 예견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믿음은 복음을 들음에서 오는 것이며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분명하다고 바울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본문 17절) 한 말이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도 은혜이고, 우리에게 그 은혜의 소식을 들려주시는 것도 은혜이며, 그 복된 소식을 듣고 믿게 해주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복음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를 사도 바울은 생각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편에서 내세울 수 있을 두 가지 핑계를 생각합니다. 그 첫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핑계입니다. 그러나 이 핑계가 통할 수 없음을 바울은 분명히 밝히며 말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복음은 이미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다고 핑계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는 데 대한 두 번째 핑계는 그들이 복음을 들었어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번째 핑계에 대해서도 설 자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말합니다. 본문 19절에서 그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신32:21에서 쓰기를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참 하나님이 아닌 헛된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기에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이 아닌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받들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시기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이미 모세는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한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너무나 어려워 이해할 수 없다는 핑계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전혀 훈련되지 않은 어리석은 민족들도 복음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핑계는 설 자리가 없음을 잘라 말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만드는 그의 논리를 다시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들어 강화합니다. 본문 20-21절입니다: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이사야가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을 전할 때 그 대상으로 찾지도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사야를 찾았고 이사야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알고자 하여 묻지도 않던 자들에게 오히려 자기를 나타내보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은 이사야에게 관심을 갖고 그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무관심과 거부에 대해 모세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언급한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복음을 이해할 수 없는 지적 능력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해 마음을 열려는 의지의 결함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듣고도 이를 받아들이기를 외면하며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의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참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수많은 성경의 예언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으며 문자적 율법이해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사랑을 실현하시기 위한 계획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 그가 바로 이 세상과 인류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사랑하던 동족 유대인의 비극인 것입니다.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하나님과 그의 뜻을 대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그래서 그의 구원을 그 어느 민족보다 빨리 잘 알아듣고 받아들였어야 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가장 복음에서 멀고 적대적인 집단이 된 것이 바울의 근심과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복음을 깨달아 알게 하시며,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신 은혜입니다. 천년이 넘도록 불교와 유교의 지배를 받아왔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복음 안에서 위로를 받고 희망을 되찾으며 새 삶의 용기와 힘을 얻어 가난과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신 은혜입니다. 복음이 들어온 후에 닥친 일본제국의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전쟁과 공산화의 위기 속에서도 온갖 혹독한 박해와 탄압을 견뎌냈을 뿐 아니라 순교의 피가 강산을 적실 때도 요원의 불길처럼 교회가 부흥하게 하신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승천하신 후 1850년 쯤 지나서야 비로소 뒤늦게 복음을 듣게 된 우리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만한 전이해도 전혀 없었던 우리 민족이었지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복음을 반겨 맞았고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열심히 전도하여 신구교를 합하여 국민 전체의 사분의 일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보다 일찍 복음을 받아들인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기독교인의 수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오천만 명 정도의 국민 중 개신교의 신자가 천만 명도 안 되는 한국이지만 세계 최강의 선교대국이 되었고 세계교회를 움직이는 주요국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되게 하신 은혜입니다. 35년 동안 이 나라를 강점하고 온갖 탄압과 강탈을 일삼으며 생명의 희생을 강요하고 우리 민족의 정신과 역사를 말살하려한 일본이지만 지진과 쓰나미와 원전사고로 재난을 당하자 주 안에서의 사랑으로 그들을 위하여 뜨겁게 기도하며 물질적으로도 아낌없이 지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도 힘껏 헌금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구호헌금 전액을 일본기독교단에 직접 전달했습니다. 우리 교회로 보낸 일본기독교단 총무의 감사편지에서 그는 전 세계에서 답지한 구호헌금 중 한 개교회가 보내준 헌금 중 최고액의 헌금이었다고 밝히고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계 교회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속성장을 하느라고 한국교회가 교만해진 면도 있고, 또 너무나 거센 세속의 풍조 때문에 해이해져 일부 주님의 몸 된 교회답지 못한 모습들이 나타나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반기독교세력들의 거센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한국교회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며 건전한 신학을 세워가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입니다. 성도들이 교회 일에 그토록 헌신적이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가 할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종적이고 열심 있는 교회가 되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제사장나라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임을 깨닫고 그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두고두고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나라의 제헌국회가 그 첫 본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의원 전원이 기립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것은 이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라는 증거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나라가 되어야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음을 항상 일깨우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더 많아지도록 열심히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말로 복음을 전하기만 할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국민으로 하여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을 맞아 한 목소리로 기도하며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로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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