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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스승이 있고 스승이 되는 신앙생활 (마 28:1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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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저는 오늘 유년주일학교 교사로, 학생회 교사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의 우리교회를 책임질 교회의 기둥을 다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코 흘리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다음세대의 리더들을 준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작은 일 같지만 미래의 시각으로 보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수고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급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좋은 스승님이 있습니다. 서울중앙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지원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은 저에게 참스승이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설교와 기도생활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분 때문에 저는 지금의 신앙생활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김지원 목사님을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분의 책망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생활을 하던 중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목사님은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엎드려있는 저를 매로 때리셨습니다. 몽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매질을 하셨습니다. 그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회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운동선수생활을 하면서 매를 많이 맞아봤습니다. 또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매는 넉넉하게 버틸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때 제가 흘렸던 눈물은 몸이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김지원 목사님이 매를 때릴 때 하나님께서 제 영혼을 터치 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책망은 저를 의로 교육했던 것입니다.
   
저는 저를 부족한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책망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책망이 중요합니다. 선지자들의 사역에서 책망은 중요했습니다. 성경은 책망이 있습니다.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여러분을 책망할 수 있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선생님이 존경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존경 받는 나라는 미래가 밝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뛰어난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철저히 하나님을 섬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선생님을 존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뛰어난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들은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입니다. 둘째는 교육입니다. 유대인들이 교육을 귀하게 여기는 증거는 그들이 선생을 가리키는 ‘랍비’라는 용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랍비’라는 말은 ‘위대하신 분’ 또는 ‘존경할 사람’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선생님을 위대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존경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신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위대하게 보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모든 사람은 부모가 됩니다. 사람은 어린 아기로 세상에 태어나지만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되고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는 스승이 있습니다. 스승 없이 존재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먼저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제자 삼는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은 주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먼저 제자가 되어라. 그리고 제자를 삼아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두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스승은 누구인가?”입니다. 둘째는 “나는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하는가?”입니다. 
 
1. 우리의 스승은 누구인가? 
   
우리의 스승은 누구일까요? 
 
1) 삼위일체 하나님이 스승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스승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부르셔서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의 반복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쳐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보내셔서 지속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도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3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셨습니다. 주님은 허다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만 모아놓고 특별 교육을 시키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필요할 때는 1:1 교육도 시키셨습니다.
   
성령님도 스승이십니다. 요 14:26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시대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령 하나님의 활동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에 민감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께 물으면 성령께서는 친절하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면 행복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의 작은 행동도 바로 잡아주시는 좋으신 스승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차선변경 하는 차 때문이 깜짝 놀랐습니다. 즉시 속력을 내어 추월하면서 주먹을 휘두르려고 할 때, 그 목사님 마음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급히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펴라.” 목사님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폈습니다. “이제는 그 손을 흔들어라.” 목사님은 성령의 지시대로 상대방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작은 행동에도 간섭하시는 성령님을 느끼며 감격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령님은 스승이십니다. 
 
2) 부모님이 스승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년이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소년은 깊은 숲과 황량한 사막을 헤맸으나 ‘위대한 스승’을 찾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너무 지쳐서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 수염과 맑은 눈동자를 지닌 한 노인이 나타나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방황하고 있느냐?” 소년이 대답했다.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찾는 위대한 스승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마. 지금 곧장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한 사람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올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네가 찾는 ‘위대한 스승’이란다” 소년은 ‘위대한 스승’을 빨리 만나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이 대문을 두드리자 한 여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와 소년을 맞았습니다. 그 ‘위대한 스승'은 바로 소년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최선의 교육자입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인 것입니다.
   
이상하게 알콜중독자인 아버지를 저주하며 자란 아들이 아버지처럼 알콜중독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학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많이 맞으며 자란 아들이 자기는 자라서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수 없이 결심을 했지만 아버지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역시 아버지를 보면서 학습이 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서 학습을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는 좋은 모습을 학습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는 좋지 않은 모습을 학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아들 하은이가 자기는 결혼을 하면 화목한 가정생활을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화목한 엄마, 아빠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랍니다. 부모는 자녀의 스승입니다. 
 
3) 목회자가 스승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배우고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스승입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배우고 또 목회자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배우는 것입니다.
   
전 12:11에 보면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기록된 성경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설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한 목자이신 주님이 주시는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이 잘 박힌 못처럼 여러분의 가슴에 박혀야 합니다. 주님은 그 가르침을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지혜자들의 말씀들 즉 기록된 성경입니다. 또 하나는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 즉 설교입니다.
   
목회자를 단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책임자로 생각한다면 불행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여러분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를 스승으로 여기는 사람은 목회자의 가르침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가르침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행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8대왕 요아스의 일생을 공부하면 목회자를 스승으로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역대하 24장에 보면 7살에 왕위에 오른 요아스라는 왕이 등장합니다. 7살에 왕이 된 그가 바른 정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스승이 되는 목회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하 24:2을 보면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요아스가 여호야다 후에 스승을 두지 못했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 왕은 자기를 지도해 줄 목회자를 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요아스 왕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대하 24:17이하에 보면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가 어떻게 행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백성들의 말을 들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다른 선지자를 보내셨으나 요아스는 그 선지자를 스승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안타까워하신 하나님은 스가랴를 감동시키셔서 요아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스가랴도 스승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요아스는 스가랴를 스승으로 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 결국 요아스는 그 일이 있고난 후에 1년이 지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일 년 후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하나님은 숫자가 적은 아람 군대에게 요아스를 넘깁니다. 요아스는 그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신하들의 반역으로 침상에서 맞아죽습니다.
   
요아스가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을 섬길 때 평안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목회자를 스승으로 두지 못하자 결국은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목회자가 스승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지도자들도 스승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어느 분야든지 지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성경에 보면 지도자들은 스승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희한하게 그 시대의 지도자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이 달라졌습니다. 모세나 다윗, 다니엘 같은 사람들은 선한 지도자였으며 선한 선생이었습니다. 반대로 여로보암이나 아합 같은 사람들은 악한 지도자였으며 악한 선생이었습니다.
   
삿 2:7에 보면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는 좋은 지도자였으며 백성들에게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이 나라의 백성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지도자들이 좋은 스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5) 우리는 서로서로가 스승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배우고 또 누군가를 가르칩니다. 우리는 잘 배우는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잘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한인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께서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가셨습니다. 남편은 학교 교사로 백인이고 부인은 한국인 입니다. 남편이 목사님을 맞이하는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인인 남편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목사님을 환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개새끼, 어서 오세요.” 

목사님께서 얼마나 당황하셨겠습니까?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고 그 집에서 나오는데, 마음이 참 무겁더랍니다. 목사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한국인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오늘 놀라셨지요?”, “아니, 집사님의 남편이 저보고 왜 개새끼라고 하셨습니까?”, “목사님, 사연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남편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영어가 짧지 않습니까? 남편은 도로로로로로록 하는데, 저는 말이 잘 안 나오니 더듬더듬 해야 되지 않습니까?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제가 그만 ‘야, 개새끼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개새끼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부르는 한국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일 그 부인이 남편에게 개새끼의 뜻을 바로 가르쳐 주었다면 그 즉시 이혼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이 남편에게 거짓말로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 바람에 목사님께서 개새끼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스승입니다.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2. 나는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하는가? 
   
두 번째 생각할 것은 나는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하는가입니다. 
 
1) 기준이 명확한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승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본문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성경말씀이며 인생의 기준 역시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내 기준,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가진 기준이나 판단은 언제나 부족한 것입니다.
   
똑똑한 의대생 둘이 있었습니다. 같은 병원에서 레지던트 일을 하게 되었는데 둘 다 유능하여 인정을 받았습니다. 유능한 의사들은 사람을 조금만 보면, 어디가 아픈지 압니다. 하루는 한 환자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가 다리와 허리를 구부린 채로 걸어옵니다. 얼굴은 샛노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얼마나 힘들게 걷고 있는지, 그것을 본 선생님 둘이 이야기를 합니다. “저분은 분명 류마티즘 관절염일 것이다”, “아니야, 허리를 구부린 것으로 봐서 분명히 디스크일 거야”라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두 의사 선생님은 그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장실이 어딥니까?” 여러분 내 생각 내 판단은 모든 것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잘못 판단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정확한 기준은 성경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5) 우리는 영원토록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2) 모범을 보이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따라오는 사람은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합니다. 스승이 보여주는 대로 제자는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1994년 12월 17일의 동아일보에 매우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홀어머니가 장시간 직장에서 일하는 바람에 집안에서 키우던 두 마리의 개에 의해 양육된 베르치라는 네 살짜리 헝가리 어린이가, 개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으르렁거리는 등 마치 개와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보호 시설로 옮겨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도 개만 보고 자라면 되면 개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신 스승이셨습니다.
   
바울도 제자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말했습니다. 바울 역시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참석했던 목회자 세미나의 강사는 목사님이십니다. 그 목사님은 대학교수생활을 하다가 그만두시고 목회자 교육에 힘을 쓰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강의 중에 자신의 가정생활에 관해서 잠시 언급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자녀들과의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자신은 목회자로 대학교수로 그리고 부흥사로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자녀들과의 관계에 벽을 허물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도저히 아버지 노릇을 못 하겠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아버지가 되는지 알 수 없어서 고생을 했답니다. 

한번은 자녀 중에 하나가 “아빠는 목사님으로는 좋은데 아빠로는 빵점이에요”라고 하더랍니다. 그 강의를 듣다가 제가 “목사님이 가정에서 아버지 역할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더니 그 목사님이 “맞습니다”라고 하더니 자기가 자라온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자기 부모님은 무당이었는데 자기가 교회를 나가니 자기를 많이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는 자기를 보기만 하면 때렸습니다. 이 목사님은 너무나 많이 맞으며 자랐고, 중3부터는 집을 나와서 살았답니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역할을 보질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좋은 모범을 보이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3)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을 제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스승입니다. 사람은 몸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아무리 몸이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훌륭해도 영적으로 죽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이 땅을 사는 동안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 때에는 영적인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육체적으로 볼 때 부족한 것이 많아도 그 영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고, 비록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아도 그 영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면 그는 불쌍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주님께서 이 땅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하나님 앞에 세울 수 있는 스승인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이 되었을 때, 그는 지오반니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의 놀라운 재능을 본 지오반니는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너는 네 기술로써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결정을 해야 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나가서 두 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구경시켜준 곳은 술집입니다. 
“스승님, 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이 있어요.”,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이 조각을 사용했단다.” 

이 스승은 다시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서 아주 거대한 성당으로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면 저 술집 입구에 있는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하나는 술 마시는 쾌락을 위해서 세워졌단다.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의 물음에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스승은 미켈란젤로를 하나님 앞에 서는 미술가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는 참 스승이었습니다.
   
단 12:3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저와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세우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스승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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