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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제사장 (롬 1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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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제사장 (롬 15:14-19)    

지난 주간 절대긍정, 절대행복, 절대가치, 절대능력의 복음을 사실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복음이 이끄는 삶이라는 사실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이 언약을 붙잡은 447명의 중직자들이 임직을 하고 렘넌트 문화센터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어제 입당 및 임직 감사예배에서 류 목사가 ‘언약의 한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적 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존재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한은 심령을 상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적 한은 심령을 부요케 만듭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한은 생명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에 쓰임을 받게 될 수 있는가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렘넌트 문화센터를 세우고 대규모로 중직자 임직을 하는 것도 결국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없어서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을 해서 문제가 됐습니다. 소위 선망의 대상이라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어려운 관문을 다 통과했는데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속칭 ‘인터넷 살인’이라고도 불리는 네티즌들의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살려내려는 것이 아니라 악성 댓글을 달고 공격하는 것에 생을 거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절대긍정, 절대행복이 아니라 절대부정, 절대불행의 시각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복음입니다. 복음이 이끄는 축복을 이들이 맛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르셨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의 사단 굴레 속에 갇힌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이러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복음의 제사장이라는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는 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은혜로 하는 전도

예수를 믿고 나서 많은 성도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내가 어떻게 전도를 해?”하면서 아예 포기를 하고 맙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이러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5:14~16) 

사도 바울은 전도가 은혜의 산물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도 커서 자연스럽게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바울의 삶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바리새 율법주의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게 되자 과거의 모든 삶이 배설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절대가치를 발견하고 나니 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삶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감사와 감격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자녀로 구원받은 은혜를 넘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일꾼으로,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놀라운 은혜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온갖 고난을 다 겪고 힘든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은 절대행복을 누린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가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이 복음의 진전을 위한 것이라는 절대긍정의 시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사역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갇혔을 때나 자유인으로 있을 때나 상관없이 복음이 확산된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뻐하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을 가리켜 복음의 제사장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제사 드리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발생한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원수 된 관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수 관계를 청산하고 화목케 하는 유일한 길은 피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고 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해석할 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 떠난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전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막힌 담을 허무신 이후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이 제사장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벧전 2:9에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왕적 권세를 가지고 복음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를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영적 정체성이며, 인생 최고의 은혜입니다.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제대로 방향을 맞추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불상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지금 현장의 불신 영혼은 눈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을 얻는 길을 모른 채 자신들의 방법을 따라 최선을 다합니다. 

종교, 무속, 점술, 철학, 재물, 쾌락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최악의 결과만 남을 뿐입니다. 영원한 멸망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복음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의 전도계획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17~19)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사역을 통해 많은 이방인이 돌아오게 된 것에 대해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본문에서 자신이 이렇게 현장 사역을 증거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성령의 능력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이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4) 우리가 현장으로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사실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충만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을 가장 많이 체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현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말하는 전도 현장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오신 목적이 바로 전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이 말씀이 바로 답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증인 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최고의 성령 충만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 이후를 보면 바울은 로마 방문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막연하게 전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라며 확실한 계획을 밝혔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면 서바나(지금의 스페인)까지도 가서 복음을 증거하겠다는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스케줄을 미리 짜고 실행하는 것과 그냥 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전도 계획을 세우면 그 삶이 규모가 있게 되고 사실적인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막연한 삶을 살지 마시고 구체화된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자신만의 전도 계획을 세워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5월이 다 지나고 있습니다. 5월에는 각종 기념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다소 생소한 날도 있는데 바로 5월 25일 ‘실종 아동의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실종 아동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에서만 7만 6천명의 아이들이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날 행사에서 많은 실종 아동 부모를 대표하여 한 어머니가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그 내용은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든지 부모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현장에 있는 불신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언약적 한을 우리가 가슴에 품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 그 영혼을 찾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복음의 제사장 역할을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 여러분이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이렇게 좋은 성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영적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복음의 제사장으로 당당히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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