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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사람들 (롬 8: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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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사람들
본  문  :  로마서 8:28-30

<기독도서발표회의 예배>

오늘 우리는 아주 귀한 책을 함께 읽고 그 내용을 서로 나누는 특별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무명의 그리스도인 시리즈 3’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의 저자가 쓴 책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을 말하고 있다고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고 좋은 책을 썼다고 하면 저자의 이름을 밝혀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이 책은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썼다고 합니다.  

교계에 나온 여러 많은 책들 중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여러 책 중에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분의 책들이 여러 권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이 저자의 이름을 적지 않고 저자는 다만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책들이 10여권이 나왔는데, 과연 저자는 누구란 말입니까?  왜 그는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무명이라고 합니까?  의혹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저명한 분들은 과연 저자의 이름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처음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에,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을 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의 이름이나 직함이 주는 어떤 선입견이 없이 하나님을 만나보라는 뜻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궁금한 것은 왜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여러 책을 내면서, 그것이 자기의 연속적인 책이라고 하면서 이름은 밝히지 않고 책 뒤에 숨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들 책에는 수많은 교훈적인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가 그렇게 좋은 말과 사례를 들어 말하지만, 말처럼 진실하게 살지 않는 그의 삶이 공개되므로 따라오는 적은 책임이나 부담도 덜어버리고 오해의 시비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겠나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좋은 뜻으로 한 것이든지, 조금은 비평적인 말이든지 그의 말과 사상과 주견이 활자화되어 공개될 때에는 부담이 되고, 말에 대한 응분의 책임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이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 더 나아가 그의 사람됨과 신앙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기게 마련입니다.   

저자가 무명으로, 익명의 글이라고 하면 온갖 미사여구를 끌어다 붙이고, 멋있게 꾸미고 단장하면서 그럴듯하고 성숙하게 보이는 표현으로 치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명의 저자가 낸 책이지만, 그의 책을 보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몸부림치는 흔적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닮은 그리스도인’,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저자는 최근에 밝혀졌는데, 정말 겸손하실 분으로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아 80년 동안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영국국립도서관의 통합도서목록에서 이 사람의 본명이 ‘앨버트 리처드슨’ (Albert Richardson, 1868~1951)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 즉 앨버트 리처드슨은 영국의 목회자로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나이지리아와 인도에서 선교사로서 헌신적으로 사역하였으며, 그는 열악한 선교현장에서 오직 기도로 난관을 돌파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목회자요, 선교사였습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 시리즈의 책을 소개해보면,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 ‘능력 충만한 그리스도인’, ‘주의 영광 그리스도인’,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행복한 그리스도인’, ‘기도를 배우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 ‘사랑이란 말로는 부족합니다’ 등이 있습니다.  

저는 전에 읽어보았던 맥스 루카도 목사님이 쓰신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책의 서두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대로 두시지는 않는다.  당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집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실내장식을 좋아하는 그의 아내를 소개합니다.  그의 아내는 흰색의 벽을 녹색으로 칠하였습니다.  창문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지금이 발을 쳐놓았습니다.  바닥 카펫도 황갈색이었으나 흰색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아내는 실내장식을 좋아하였습니다.  아내는 집을 소유하는 것으로 양이 차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내부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아내는 집을 사는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집에 들어가 장식부터 해야 했습니다.   

루카도 목사님은 아내의 이러한 성품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실내장식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소유하는 것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과 삶으로 변화되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데, 우리를 향한 큰 뜻을 품고 계시며, 그 일이 끝날 때까지 회복과 변화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로마서8:29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빚고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로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로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향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는 본래 창조되기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주신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데 있었습니다. 

고후3:18을 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주신 것을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요일3:2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일3:6을 보면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살고, 주님은 나의 안에 살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말하고 예수님이 나의 안에 사시는 것을 고백하면서 우리 주님에게 우리의 모든 결정권을 양도하면서 주님이 선택하시고 결정하시고, 주님처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육신하신 주님을 닮아가면서 우리를 비우고 낮아지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더욱 겸손하고 베풀고 나누는 삶이어야 합니다. 섬김의 삶을 사신 주님을 따라 우리의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엎드려 남의 발을 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삶을 사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는데, 말과 혀끝으로만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생활 속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과 영광을 드러내어야겠습니다. 

   루카도 목사님은 “딱 하루만 예수님이 당신이 된다면”이런 명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내 안에서 사시면서 나의 침대에 일어나고 하루를 시작하시는데, 그가 나의 신발을 신고 나의 스케줄을 대신 맡으며, 나의 하루를 사신다고 하면, 주님의 우선순위가 나의 활동이 되며, 주님의 열정이 나의 결정을 좌우하게 되고, 주님의 사랑이 나의 행동을 지시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나의 하는 일, 나의 가는 길, 나의 주도하는 삶을 예수님에게 넘겨드린다고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그의 생각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빌2:5)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대한 존중하셔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형상으로 회복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에배소서4:23-24에서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밥 브리너와 레이 프리처드는 ‘예수님처럼 하라-Jesus Way’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실행하는 예수의 방식 75가지 ”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소명을 갖고 계셨다  75) 예수님은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이렇게 75가지의 다른 상황에 따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활동을 분석하면서 오늘 독자들에게‘예수님처럼 하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으로 보내심을 받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에 소명(Calling)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오늘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하고, 작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분명한 소명의식에 살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소명을 분명히 하고 그의 부르심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오늘 네 분이 연속으로 나오셔서 책을 소개도 하시고, 느낀 점을 말씀하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가장 소원하시는 바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데, 희생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우리 주님이 사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에,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예수님은 이 순간을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시며, 말씀하실 것인지... 나를 내려놓고 나를 비우고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심을 고백하면서 주님에게 나의 전 삶을 위탁하게 됩니다.  오늘 발표해주신 훈련생들에게 감사드리며, 좋은 책을 함께 읽으며, 나누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제자훈련을 받았으며, 지금도 제자훈련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에 임하는 목회자의 가장 큰 관심은 변화에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시키는 목회자나 훈련을 받는 이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은 성경적 지식의 전수나 어떤 직위로 올라가는 과정이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훈련은 가르침과 배움보다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자녀는 태어나지만, 제자는 훈련으로만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치고 복종하면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변화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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