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상한 심령의 제사 (시 51:10-17) - 회개

첨부 1


상한 심령의 제사 (시 51:10-17)

저와 아주 절친한 동기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몸에도 털이 아주 많은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콤플렉스가 되어 여름에 반바지도 잘 입지 않고 면도를 할 때에도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주변 자매들은 다리에 무성한 털을 보면 징그럽다고 아우성이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결혼을 하고 사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은 목사님 사모님께 물어 보았더니 사모님은 털이 많은 남자가 좋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예배를 안빠지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찬양을 잘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물질로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일까요? 아니면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까요?

모두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오늘 시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람은 바로 ‘상한 심령’ 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심히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좋아하시고, 다윗을 축복하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상한 심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말에 ‘눈물의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고 합니다.
이 말은 인생의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 조금 말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엎드려 통회하고 자복해 본 사람만이 신앙에 대해 조금이나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시51편의 배경은 다윗이 자신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에게 자신의 죄를 지적 받았을 때에 통회하며 지은 회개의 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은밀한 죄라도 결코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자신이 범한 죄를 지적 받았을 때에 다른 사람 같았으면 왕의 권세를 이용해서 그것을 무시하거나 선지자를 위협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비천한 자신을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시고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것에 대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하여 견딜 수 없는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통회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편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잘 흘리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을 겪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눈물의 의미를 잘 아는 다윗은 ‘내가 고난 당하는 것이 유익’ 이라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은혜 받으려고 일부러 죄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내 자신이 깨어질 때에 비로써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은혜를 경험하므로 인생이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로 일컫는 마틴 루터는 뷔텐부르그 성당 앞에 붙인 95개 조항의 반박문 가운데 기록하기를 ‘우리 주 예수께서 회개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회개하라는 말이 아닌 우리 주 예수께서 나를 통해 회개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죄인만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감옥에 있는 사람만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교황도 회개하고 사제들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루터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신 말씀을 카톨릭이 잘못 번역해서 회개를 단순히 고해 성사를 하라는 것으로 번역하였지만 루터는 회개가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사제에게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화되고, 행동이 변화 되는 것까지를 회개’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이 달라지는 것이 곧 회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상대방에게 잘못을 하면 사과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사과만 했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자복하며, 내 죄에 대해 슬퍼하고, 괴로워 하며 참된 회개에까지 이르지 못한 신앙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회개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회개가 얼마나 진정된 것이었는지 시6편을 보면 다윗은 눈물로 침상을 띄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사람의 눈물이 아무리 많이 흐른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침상을 띄울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그 한 번의 죄로 인해 다윗은 평생 눈물을 흘리며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정말 침상이 눈물에 띄워질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과 다윗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만 했지 근본적으로 돌이키고, 회개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일평생 자신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며, 상한 심령으로 살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한 심령의 사람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높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할 회개가 바로 이와 같은 회개입니다.
원하기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회개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지 상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먼저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을 구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지은 죄 그대로 갚으신다면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을 것입니다. 

성경은 눈이 죄를 지으면 눈을 뽑으라 하였으며 손이 죄를 지으면 손을 잘라 버리라 했습니다. 다리가 죄를 지었으면 다리를 잘라 버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성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애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렇게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하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여러분 하나님이 자비한 분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죄로 망하고,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소망이 없으며 죽음의 세계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비록 죄를 지어도 소망이 있고, 죄를 지어도 살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같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각기 제 욕심대로 행하고, 자기 갈 길로 갔지만,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그 아들을 죽음에서 내어주시고 자비과 긍휼을 베푸시며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내 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죄의 본성을 회개해야 합니다.

3절에서는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 고 하였으며 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내가 죄인인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죄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가 늘 내 앞에서 나의 길을 막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죄의 본성을 슬퍼하고, 괴로워해야 참된 회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놀라운 것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그렇게 부모를 닮는지 모릅니다.
외모부터 시작해서 체질까지 닮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유전이라고 합니다.
특히 암과 같은 질병은 유전적인 영향도 대단히 크게 받기 때문에 집안에 암환자가 있었던 분들은 검진을 자주하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사람들은 보이는 현상만 갖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 따지지만,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본질’ 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인’ 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흉악범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렸을 때에 나쁜 환경적인 요인이 그 사람의 미래를 좌우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할 때에도 그 사람의 병력을 다 조사하고, 그 사람의 가족 사항, 가족관계, 어릴 때 가정의 분위기 이런 것들을 다 파악한다고 합니다. 
즉 오늘의 나는 바로 과거의 여러 환경을 통해 영향을 받아 만들어 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죄를 짓는 것도 다 우리가 가진 죄의 본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지금 지은 죄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의 본성부터 회개하고 죄의 본성부터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근본적으로 죄를 미워하며 죄와 단절된 사람이 되지 않고는 아무리 죄를 회개하고 또 회개해도 그것은 사과의 수준이지 진정한 회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저주하고, 죄의 본성을 완전히 잘라내 버리시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죄를 이기는 사람, 죄에서 참 자유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로 진정한 회개를 이루기 위해선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죄의 본성을 이기는 능력은 바로 ‘성령’ 입니다. 

10-11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렇습니다. 다윗이 죄의 본성을 이기고, 능력의 삶을 회복한 비결은 성령입니다.
성령만이 죄를 이기게 하시며 죄의 본성을 정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한 뒤에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에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이 일 이후로 평생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받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다시 이와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런 기록이 다시 언급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 위인들의 수치스러운 성적인 문제까지도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시아버지를 취한 다말의 이야기, 아버지를 취한 롯의 딸들의 이야기, 누이 동생을 취한 암논의 이야기, 수천명의 여인을 두었던 솔로몬이 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 이후 다윗은 더 이상 여자문제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 문제가 나오긴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여자문제를 다윗이 이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에 보면 다윗이 나이 많아 침소에 들어갈 때 신하들이 왕이 이제 기력이 많이 약해졌으니 젊은 여인을 넣어 원기를 회복해 드려야겠다 라는 생각에 당시 이스라엘에서 뽑고 뽑아 아름다운 여인 아비삭을 왕의 침소로 보내었지만 다윗은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령으로 함께하는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기도하고, 늘 상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성령 충만 하였기에 모든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귀하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성령에 충만하여 어떠한 죄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할 중요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를 14-15절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왜 우리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하느냐?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찬송의 문, 기도의 문’ 이 막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죄사함 받지 않은 기도는 가증된 것이며 찬송도 가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아파하며, 탄식하며 예배함으로 죄 사함의 기쁨이 충만하고, 구원의 기쁨이 충만해야 이 예배가 하나님 받으시는 합당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위선된 모습을 벗어 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약한 모습 그대로, 죄 지은 모습 그대로, 냄새나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파하고 그 모습을 괴로워 할 때에 비로소 회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명의라 하더라도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환자는 의사에게 모든 증상을 숨김없이 그대로 말해야 제대로 치료를 받게 되듯이 오늘 이시간 저와 여러분은 가슴속에 담아진 모든 것을 십자가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감추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죄 지은 모습 그대로,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내려 놓을 때에 그때 치유가 일어나게 되며 하나님의 긍휼로 옷 입게 되는 것입니다.  

조양은, 조세형 이들은 모두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도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심하였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영화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조세형씨는 다시 절도를 하다가 구속되었고 얼마전 조양은씨 역시 다른 사람을 공갈 협박하다 구속되었다는 것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변화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진정한 회개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아무런 회개할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계시지 않습니까?
원하기는 다윗처럼 나의 죄를 통회 자복할 수 있는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실 때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의 불신앙을 회개합니다.
교회는 나와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믿음 없는 말, 믿음 없는 행동을 하며 살았던 모습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나의 불순종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살았던 것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내 고집대로, 내 욕심대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소홀히 생각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던 불충함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는 나의 위선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 숨기고, 안그런척, 문제가 있음에도 문제가 없는 척 살아왔던 나의 가증된 모습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로 하나님께 온전히 구별하여 드리지 못한 물질에 대해 회개합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감사하는 것과 드리는 일에 인색하였던 나의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내가 고통하는 일들도, 미워하는 것들도, 원망하는 것들도 모두 물질 때문에 생긴 죄들이지 않습니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여러분 감옥에 있는 사람만이 죄인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단지 그들의 죄가 사람들에게 들켰을 뿐입니다. 우리는 안 들킨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제는 진실해야 합니다. 
죄의 무거운 짐으로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이제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죄를 영원히 이길 수 있는 성령을 내게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원하기는 이제 가짜 회개가 아닌 진정한 회개를 드리고, 가짜 성도가 아니라, 진짜 성도가 되어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받는 믿음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