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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영혼의 감독에게로 (벧전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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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감독에게로 (벧전 2:18-25)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그러면 아직까지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1946-) 감독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감독의 이름은 몰라도 히딩크 감독의 이름은 온 국민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마만큼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아주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럽에서는 안드레 비야스-보아스(Luis Andre de Pina Cabral e Villas Boas, 1977-) 감독이 엄청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한 축구클럽인 FC포르투의 감독인데, 올해 자신이 이끄는 FC포르투를 포르투갈리그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것도 포르투갈 정규리그 30경기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27승 3무라는 경이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비야스-보아스 감독이 세간에 관심을 갖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특이한 경력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축구감독은 선수출신입니다. 선수시절 유명했든 그렇지 못했든지 간에 선수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이 감독을 합니다.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 역시 모두 선수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야스-보아스 감독은 축구선수 출신이 아닙니다. 그가 축구를 한 것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조기축구회 수준에서 미드필더를 맡았던 것이 전부입니다. 더구나 그는 올해 33살 밖에 되지 않는 젊은 사람입니다. 지난 해 32살의 나이에 FC포르투의 감독이 된 그는 불과 1년 만에 경이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일굴어냈습니다.
  
그의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16살이었을 때, 바비 롭슨(Bobby Robson, 1933-) 감독에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롭슨 감독은 축구종가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적인 존재로, 당시 포르투의 감독으로 있었습니다. 

16살의 비야스-보아스는 그 편지에서 롭슨 감독의 용병술의 문제점을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지적을 했습니다. 그리고 롭슨 감독을 만날 때마다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 때 롭슨 감독은 불과 16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축구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음에 감탄하며 16살인 그를 포르투의 스카우트팀에 채용합니다. 그렇게 축구의 지도자 길을 걷게 된 비야스-보아스는 불과 21살 때에 버진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33살인 올해에는 고향인 FC포르투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려놓는 쾌거를 올리게 됩니다.
  
비야스-보아스는 자기팀 선수와 상대팀 선수들의 전력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올해 이룬 엄청난 성과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거기에 맞게 선수를 기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도 그렇거니와 비야스-보아스 감독의 모습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명감독은 선수시절의 명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많기 때문에 좋은 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지도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선수라 하더라도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실력의 팀이라 하더라도 감독의 지도력에 의해서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수는 좋은 감독을 만나는 것이 굉장한 축복입니다. 좋은 감독 아래서 지도를 잘 받으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선수는 감독의 요구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감독 아래 있다 하더라도 감독의 요구나 명령을 거절한다면 그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조광래 감독이 이천수 선수를 국가대표 명단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한 주 전만 해도 이천수 선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요즘 플레이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주만에 이천수 선수를 국가대표팀에서 유보시켰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천수 선수의 움직임과 자세가 예전에 비해서 많이 신중해졌고 적극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표팀과 대표선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의 최고 집단이며 최고 선수들의 집합체다. 최고 집단 최고 선수에 대한 해석을 축구의 기량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천수 선수는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천수 선수는 실력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때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종종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감독이나 팀에게 상당한 불화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감독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감독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 발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좋은 감독과 좋은 선수가 만난다면 그 팀은 절대강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생 최고의 감독이 계십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우리 인생의 최고 감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분을 우리 인생에 감독으로 모시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우리 인생과 영혼에 최고의 감독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목자이실 뿐만 아니라 감독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감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선수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위대한 감독이신 예수님께 돌아오기 전에 우리는 길을 잃은 양과 같았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았고, 자신을 돌보아주는 감독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내팽개쳐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았습니다. 마치 소속 팀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선수처럼, 아무도 불러주는 팀이 없어 방황하는 선수처럼 이전에 우리는 길을 잃은 양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감독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감독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팀에 합류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감독으로 계시는 하늘나라에 소속된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가장 먼저는 감독이신 예수님의 지시를 잘 받아 철저하게 훈련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 하더라도, 그래서 어떤 명성 있는 팀에 발탁이 되었다 하더라도 감독의 지시를 따라 훈련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로 뛸 수가 없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조광래 감독이 이천수 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흔히 이천수 선수를 ‘게으른 천재’라고 말합니다. 축구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만을 믿고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에게도 혼이 나고, 몇 년 전에는 차범근 감독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고, 지금 조광래 감독에게도 발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천수 선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축구에서 게으른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선수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유명한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국제대회 때에는 늘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들은 게으른 천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혹 운동경기나 음악과 같은 예술에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신앙생활에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신앙적 훈련에 게을리 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천재성만을 믿고 신앙의 훈련에 게을리 한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신앙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훈련을 통해서 영적인 근육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고난을 겪을 때 이겨나갈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그 힘을 만들어내는 근육은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여러분, 근육은 훈련한 만큼 발달합니다.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있는 힘껏 100m 달리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며칠 동안 잘 걷지 못할 것입니다.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썼기 때문입니다. 어느 근육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훈련을 통해서 단련하지 않는 근육을 갑자기 쓰면 오랫동안 통증을 느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받지 않는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고통이 아주 극심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은 별로 힘든 것 같지 않은데 내게는 아주 고통스럽다면 그만큼 내가 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다. 어떤 사람이 얼마의 돈을 손해 보았습니다. 똑같은 액수의 돈을 손해보거나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무덤덤하게 이겨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여러분, 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잘 이겨내고, 없는 살림에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힘들어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서 돈을 잃을 때에 대한 훈련을 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가까운 친구가 죽거나 등을 돌리고 떠나갔을 때 - 즉 인관관계가 깨어졌을 때 어떤 사람은 무덤덤하게 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살이 에운 것처럼 고통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것 역시 얼마만큼 훈련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간혹 모악산에 오르다 보면, 맨발로 등산하는 사람을 보곤 합니다. 그 사람이 맨발로 등산할 수 있게 된 것은 맨발의 훈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훈련을 통해서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혔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맨발로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굳은 살이 박히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맨발로 산에 올라가도, 때로는 나뭇가지를 밟거나 돌부리를 밟는다 하더라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않고 등산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굳은 살, 연단의 굳은 살, 상처의 굳은 살이 박혀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을 너무 힘들지 않게, 또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근육을 골고루 단련시켜야 합니다. 달리기를 많이 해서 하체가 튼튼한 선수라 하더라도 손으로 하는 운동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 상체를 많이 훈련시켜야 상체를 이용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기도의 훈련, 찬송의 훈련, 경건의 훈련, 침묵의 훈련, 인내의 훈련 등 신앙의 다양한 방면에서 근육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기도만 잘하고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 섬김, 찬양, 언어와 삶 모든 부분에서 신앙인다운 모습으로 훈련되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감독이시면서 동시에 훌륭한 선수이셨습니다. FC포르투의 비야스-보아스 감독은 선수생활은 거의 하지 않고도 좋은 감독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이셨으며 또한 가장 훌륭한 감독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부조리와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사셨습니다. 온갖 유혹과 핍박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죄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가장 아름답게 당신의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 

예수님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 되셔서 우리 인간이 당하는 모든 것을 당하셨습니다. 고통을 당하기도 하셨고, 버림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채찍에 맞기도 하셨고,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거짓증언으로 마음고생을 하셔야 했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데도 그런 아픔과 고통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픔과 고통과 힘든 삶의 문제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모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델이신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예수님의 삶을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우리 가슴에 늘 가득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좋은 선수는 경기 전에는 감독의 지시 아래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을 때에는 감독의 사인을 따라 경기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않습니다. 야구경기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사인을 보냅니다. 상대팀 선수가 알 수 없도록 여러 가지 몸동작을 통해서 선수에게 사인을 보냅니다. 그러면 선수는 감독이나 코치의 사인을 받고 그대로 해야 합니다. 비록 사인대로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거나 사인대로 했는데 우리 팀에게 불리하게 된다 하더라도 선수는 감독의 사인을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주자가 나가 있을 때에 감독이 타석에 들어선 선수에게 번트 사인을 보냈다면, 타석에 있는 선수는 번트 자세를 취해야 하고 번트를 대야 합니다. 그 번트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번트를 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방망이를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번트 사인이 나왔는데 선수가 자기 마음대로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러 홈런을 쳐서 팀이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관중들에게는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감독에게는 꾸중을 들어야 합니다.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예수님의 사인을 기다려야 하고 사인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 삶이 1루나 3루에 있는 삶이든, 타석에 들어선 삶이든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예수님의 지시를 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영혼의 감독”이라는 말은 우리 영혼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뜻이고, 그러기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주시고 지도해 주실 분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말 가운데 하나가 “내 마음은 내가 잘 알아. 나는 내가 가장 잘 알아”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사람인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고 잘못 선택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도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내 문제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정말 고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선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감독이 더 잘 알 때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살피고 분석하는 감독이나 코칭스태프가 훨씬 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지시하시는 것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따라야 합니다. 내 삶의 길을 내가 더 잘 안다고 고집 피워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우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묵묵히 주님의 사인과 지시를 기다려 주님께서 사인을 주신대로, 주님께서 명령하시고 지시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고,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감독’이라는 말은 관리자, 보호자, 안내자를 말합니다. 이 감독이라는 말이 초대교회에서는 목회자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보호하고 돌보아주는 목사가 감독입니다. 그런데 인간인 목사는 때때로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살피고 필요한 말씀의 꼴을 먹여야 하는데, 성도들의 상태를 완전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양식을 제 때 먹이지 못할 수도 있고, 잘못 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때를 때라 적절한 것들로 채워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양은 감독에게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잘난 체 하다가는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양이 길을 잃어버린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목자를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따라가다가 때론 험난한 길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노래한 것처럼 목자의 뒤를 따라가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은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목자의 뒤만을 묵묵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 도착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 삶의 길이 너무 험난하다고, 때로 고통의 골짜기가 너무 깊다고, 때로 세상의 유익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메마른 사막을 가야 한다고 내 마음대로 가다가는 백발백중 길을 잃고 맙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커다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든지,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사막을 헤매다가 갈증에 시달려 죽든지, 먹을 것을 얻지 못해서 굶어 죽든지 잃어버린 길에서 고통에 울부짖다가 죽고 맙니다. 

우리가 때로 그렇지 않습니까? 내 삶의 길을 내가 가장 잘 안다고 고집을 피우며 내 마음대로 갑니다. 때로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다가도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내 스스로 판단하고서 딴 길로 갑니다. 그러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맵니다. 때로는 세상의 가시에 찔려 고통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목자요 감독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십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자기 스스로 목자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집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길을 잃은 양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목자가 찾아와 데려가 주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님,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예수님께서 길을 잃고 헤매던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부르시고는, 우리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아들고서 기쁨의 찬송을 부르며 가십니다.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고,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나라를 향한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동경기에서 왜 감독이 필요합니까? 감독은 단순히 팀워크만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단체경기에도 감독이 있지만, 개인 경기에도 감독이 있습니다. 혼자서 훈련하고 혼자서 경기해야 하는 종목에도 감독이 필요합니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고 말하는 마라톤에도 감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라토너인 황영조 선수나 이봉주 선수에게는 정봉수라는 유명한 감독이 있었습니다. 정봉수 감독이 없었다면 황영조나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의 영예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개인 경기인데도 왜 감독이 있어야 합니까? 혼자 하는 경기라면 혼자서 열심히 훈련해서 자신의 기량을 높이면 되는데, 왜 굳이 감독이 필요합니까? 혼자서 하는 경기라 하더라도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감독이 있어야 합니다. 또 혼자서 하는 경기라 하더라도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지도 받기 위해서는 감독이 있어야 합니다. 스포츠 경기에만 감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감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나 홀로 살아가는 경기가 아닙니다. 우리 앞에 당한 인생의 경주는 나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혹 혼자서 하는 경기 같아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반드시 감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감독, 우리 영혼의 감독 말입니다. 그 감독의 지시를 받아야 제대로 훈련할 수 있고, 그 감독의 지를 받아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인생의 감독의 지시를 받는다면 우리는 세상 어디를 가든지 두렵지 않습니다. 찬송가 440장 2절에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세상 친구 모두 나를 떠나도 주와 동행하면 외롬 없겠네. 가는 길이 위태하고 험해도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면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 길이 험해 보이고 위태하게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이라면 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우리 영혼의 감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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