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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칭찬, 위로, 약속이 있는 교회 (계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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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위로, 약속이 있는 교회 (계 2:8-11)  

요한계시록에는 7개의 교회가 나온다. 7개의 교회의 형편은 모두 다 다르지만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오직 칭찬만 받았다. 서머나는 현재로 말하면 터키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이르말이란 곳인데 신약 시대는 로마 식민지 중의 하나였다. 이 도시는 환경적으로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서머나는 황제 숭배 중심의 도시였고 곳곳에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갔는지,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에베소에 체류하는 바울의 전도를 통해 서머나 인들이 듣고 교회가 세워진 것 같다. 

이 서머나 교회가 겪는 문제는 삶의 어려움이었다. 도시는 부요하고 잘 사는데 교회는 가난하였다. 서머나 교인들이 겪는 고통의 문제는 세 가지였다. 환난, 궁핍, 비방이었다.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라고 하였고 또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라고 하였다. 환난이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직업도, 재산도, 사회적 명예도, 생명까지도 빼앗기는 것을 말한다. 궁핍이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먹는 문제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직장을 잃고 장사를 못하게 되고 경제 활동과 사회 활동에 차별 대우를 받아 수입원이 없어지는 것이다. 비방이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손가락질을 당하고 근거없이 명예를 떨어뜨리고 악의적으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다. 즉, 신앙 생활을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 비방이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비참하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렇게 저렇게 우겨쌈을 당하고 고통을 겪는 초라한 모습이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세 가지 말씀을 듣는다.   

첫째, 두 가지 칭찬의 말을 듣는다. 두 가지 칭찬은 부요한 교회, 부요한 성도이다. 

계2:9을 보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주님은 환난, 궁핍, 비방을 받고 있는 서머나 교회를 부요한 교회로 보셨다. 이 땅에 많은 괴로움을 겪는 서머나 성도들을 어찌 부요한 성도로 보셨을까? 주님의 안목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망했으면 망한 줄 안다. 우리 사람들은 실패했으면 실패한 줄 안다. 허나 주님은 세상적 성공을 꼭 성공으로 보지 않으신다. 서머나 교회를 부요하다고 했으니 무엇 때문인가? 환난에도, 궁핍에도, 비방 받는 일 앞에서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 때문이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더 귀한 것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참된 크리스챤은 이 보이지 않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가 칭찬을 받는 것은 믿음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보실 때 잘 살고 못 살고를 보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는가를 보신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을 얻게 되는 일이면 더욱 달음질친다. 믿음을 귀중히 여긴다. 그러나 재물이 많아도 믿음을 업신여기면 믿음의 부자가 아니다. 곳간에 양식이 가득하고 장롱 안에 온갖 보화가 가득해도 가난뱅이다. 믿음을 얻을 수 있다면 모든 시간을 드려 헌신하고 무엇을 하든지 믿음을 우선하는 성도가 되자.  

둘째, 위로의 말씀을 듣는다. 즉,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가 되라.

계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서머나 교회는 고난이 멈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앞으로 다가오겠다고 한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① 그 고난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는 대적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두려워하면 마귀의 종이 된다. 싸워 이기기 어렵다. 승리하기 위해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② 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고난이 언제인가 끝나기 때문이다. 환난이 아무리 심해도 환난의 날수는 10일이다. 옥에다가 사람을 집어넣는 이 시험도 10일이면 끝장이 난다. 끝이 없는 환난이 아니다. 끝이 있다. 더 이상 마귀가 손대지 못하는 끝날이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자. 10일이 지나면 마귀의 시험이 종을 치고 마는 환난 없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참고 나아가자. 

③ 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부활의 주님이 권면하기 때문이다. 그 주님은 어떤 주님인가? 계2:8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시다. 처음이란 주님이 모든 것의 시작, 만물의 창조자란 뜻이다. 나중이란 주님이 모든 것의 종결자, 만물의 심판자란 뜻이다. 역사의 알파가 되시고 오메가가 되시는 주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다. 주님이 죽으신 것은 십자가 고난이었다. 

당신 자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온갖 시험을 다 받으셨다. 죄는 없으시면서도 가장 큰 죄인처럼 취급 받으시고 모욕의 침 뱉음과 옷 벗김을 당하셨다. 그 고난과 죽음도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능력 앞에 끝장이 났다. 사망의 두려움을 이겨내신 주님이 권면한다. 고통을 이기신 주님이 권면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환난을 아시는 주님이시다. 나의 궁핍을 아시는 주님이시다. 비방 받는 아픔을 아시는 주님이 권면하신다. 상처 받은 이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은 말할 자격이 있으시다. 주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치유가 되고 고난과 싸우는 에너지가 된다. 주님은 고난 받은 치유자이시다. 상처 입은 치유자이시다. 그러기에 위로가 되고 그 권면대로 우리는 순종하게 된다. 견디기 힘든 고난을 참고 견딘다. 두려워하지 않고 이기는 힘을 얻는다. 
  

셋째, 약속을 받는다. 즉,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성도는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 어떤 직분을 맡았느냐’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은 신앙 이력에 관심이 없다. 주인을 시원케 할 충성된 자를 찾고 계신다. 고전4: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하였다. 

충성이란 것은 신실하다. 피스토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명을 맡은 자로서, 기도와 전도와 사역을 맡은 자로서 신실해야 한다. 환난, 궁핍, 비방이 있더라도 요동하지 않는 모습으로 지금 충성해야 한다. ‘죽도록’이라 하였으니 끝마칠 때까지 섬기고 나아가야 한다. 

교회에서 일하는 태도는 일관성이다. 주님의 사랑에 잡힌 신부답게 주님에게 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구경하고 눈치 보고 계산하고 따질 필요가 없다. 신랑되신 주님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영원한 생명되신 주님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충성을 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있다.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이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하는 여건이 어려워도 주님 곁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간이 없고 사는 형편이 나를 얽어매어도 신앙 생활에 거꾸러지지 말고 일어서고 이기는 자로 나아가야 한다. 절대 신앙 생활을 폐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계2:11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영생에 이르는 삶, 면류관을 받게 되는 삶, 하늘의 거룩하고 온전한 기업을 기대하는 삶이 주어진다. 어찌 환난에 무릎 꿇고 궁핍에 무릎 꿇고 비방 앞에 무릎을 꿇겠는가? 어떤 시험이 다가와도 이겨라.   

오늘날의 신앙 생활에서의 시험은 환난, 궁핍, 비방이 아니라 자유, 부요, 넉넉함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오락물 등이 넘쳐나서 믿음을 빼앗으려는 많은 도전 앞에 서 있다. 이기는 자로 서야 한다. 서머나 교회가 받은 칭찬과 위로, 그리고 약속을 누리는 오목천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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