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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사 51:9-11, 요 1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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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사 51:9-11, 요 12:36-38)

어느 사이트에서는 ‘행복한 우리 집 만들기’ 캠페인에 아빠들이 팔을 걷었다고 합니다. 회사의 신 경영 개발에 전 사원이 팔을 걷어붙였다고 합니다. 팔을 왜 걷습니까? 전적으로 그 일에 나섰다는 의미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모두가 힘을 모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팔을 자주 걷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은 팔을 걷어붙이시고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들 앞에 가로놓여 있던 홍해를 가르고 마르게 하십니다. 뒤따라 들어가던 애굽의 마차와 군인들을 물에 수장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을 이사야 63:12에는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은 팔을 걷어붙이십니다. 

신명기 1:31에는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팔을 걷으시고 백성들을 안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아말렉과 처음 전투를 할 때에 하나님은 모세의 팔을 이용하십니다. 

출애굽기 17:11에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라고 합니다. 그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여 살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팔을 걷으십니다. 사사시대에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나라들, 적군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울 때마다 하나님은 팔을 걷으시고 적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사야 43:6에는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십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 성, 소수민족이 되지 않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하나님은 그 때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해방을 주셨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서 극적으로 유엔이 참전하게 되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정전이 되었습니다. 좌우익의 끊임없는 갈등에도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나라로 지켜주셨습니다. 

근대사에서도 중국과 일본이 야욕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국토를 넘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든든합니다. 지난 IMF 때로 온 국민이 슬기로 금모으기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금융위기 가운데서 경제는 발전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경제가 발전할 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어 세계 12위권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전에 신문에 보니 삼성전자의 임직원이 10만 명을 넘었습니다. 전북 김제시 인구보다 많은 인원입니다. 여호와의 강하신 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 번쯤은 아빠의 팔에 매달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팔에 매달려 보면서 아빠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때 아이들은 "야, 알통이다!" 하며 아빠 팔의 알통에 감격합니다. 장성한 사람들이 볼 때는 알통이랄 것도 없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빠의 팔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팔은 자녀에게 든든한 힘이며 위로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이방의 침입에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포로에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남북이 분열된 데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멸망에서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성경에서 팔은 권위와 힘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의 적을 격멸해 주기를 바라는 기도문입니다. 
  
시편 44:23에는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라고 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난 안 잤는데?”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주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이 기도문은 구약의 ‘공동체적 애가’(corporative lamentation)입니다. 나라의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애가입니다. 하나님의 팔이 깨어 일어나셔서 우리의 영적침체와 수렁에 빠진 한국교회를 건져주시기를 간정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첫째,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깨셔야 합니다. 

이사야 51:9에는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라고 합니다. 기자는 지금 하나님의 영원하심, 하나님의 동일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옛날 옛 시대에 깨셔서 그들의 도움이 되신 것 같이 지금도 깨셔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 달라고 하는 애원입니다. 
  
하나님은 옛날에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셨습니다. 깨어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주무시거나 조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21:4에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합니다. 잠시도 눈을 깜빡이시거나 감으신 적도 없으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불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무쇠팔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구약의 메시야는 여호와의 팔로 계시된 분이십니다. 이사야 53:1에는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팔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힘 있던 여호와의 팔입니다. “일어나라”고 명령하면 모든 것이 일어났습니다. 손을 대면 낫고, 손을 대면 살아나고, 손을 대면 죽은 자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힘 있는 팔이셨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는 팔이 있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아도 되는 팔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흔드는 팔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도로 공사장에서 보면 노란 옷을 입혀 놓은 사람 모형의 인형이 조심하고 돌아가라고 팔을 흔들고 있습니다. 똑같은 동작을 쉬지 않고 합니다. 지치지 않는 팔입니다. 과연 이 팔이 강한 팔입니까? 사람이 넘어뜨리면 넘어집니다. 전기만 끊어지면 그 팔은 쉽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알고 보면 그 팔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팔은 전기가 끊어지지 않는 힘의 근원입니다. 
  
우리나라에 의수화백이 있습니다. 석창우화백입니다. 이 분은 원래 전기기사였는데 29,000볼트 전기에 감전되어 두 팔과 두 발가락을 잃었습니다. 오래 전 어린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여 그림을 그려주느라 의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는 발바닥으로 낙관을 찍습니다.  이분은 두 팔이 없이도 늘 기쁘게 그림을 그립니다. 

한 번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얘기하는데 아버지가 의수를 하면 낚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낚시를 할 수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낚시 안 해도 되겠네”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이제부터 낚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자가 “어떻게 그렇게 평온하고, 마음을 잘 안정되게 정리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까 그는 “하나님의 섭리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인간의 팔이 없어도 하나님은 필요한 자의 팔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팔은 팔이 없는 자에게 깨어 팔이 되십니다. 레나 마리아라는 스웨덴의 가스펠 가수를 아시지요? “노래하는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참 예쁜 여인입니다. 1968년에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없는 중증 장애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녀가 태어나자 부모님께 레나를 보호시설에 맡길 것을 권유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은 “이 아이도 하나님이 주신 아이입니다. 이 아이에겐 가족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면서 레나를 시설에 맡기지 않고 키웠습니다. 

그녀는 하나 뿐인 왼발을 쓰고, 오르간을 연주하고, 뜨개질을 하고, 운전도 하고, 젓가락질까지 합니다. 그녀는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얘기할 때마다 자기는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좋은 신앙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합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의 팔이 그녀의 팔이 되시기 때문에 그 힘이 나옵니다.  

시편 89:21에는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팔은 나의 팔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눈이 나의 눈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발이 나의 발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기에 나는 항상 든든합니다. 하나님은 팔이 없는 자에게 팔이 되시기에 팔이 없이도 행복하고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 맥케이는 “사람의 도움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될지라도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전능하신 팔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팔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팔이 차단될 때에 하나님의 팔은 나를 도우십니다. 사람의 도움이 끊어진다고 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능하신 팔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나를 도우십니다. 
  
예레미야 애가 5:21에는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돌이키셔서 옛날 같은 날을 달라고 애원합니다. 여호와의 팔이 함께하시면 옛적 같게 하실 것입니다. 옛날에 함께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변치 않으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구속받은 자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얻도록 깨셔야 합니다. 
  
이사야 51:11에는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팔이 깨셔야 우리에게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할 때는 여호와의 팔이 깨어 있고 우리가 구속받았을 때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깨셔야 우리가 구속함을 받습니다. 여호와는 그 팔로 홍해를 가르고 마르게 하시어 길을 여셨습니다. 애굽의 모든 마차와 군인들을 홍해에 빠트리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은 그들이 찬양할 때마다 자기 조상들을 홍해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마그니피카트’라는 마리아의 찬양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세상을 공평하게 지배하시며 높은 자를 낮추신다고 합니다. 특히 누가복음 1:51-52에는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왜 교만한 자를 흩으십니까? 하나님이 왜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습니까?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힘이 있고 자상하기도 합니다. 시편 40:2에는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팔은 구속의 팔입니다. 구속의 상징입니다. 구속함을 받으면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참 기쁨과 참 평안은 구속의 결과입니다. 여호와의 팔은 즐거움이며 기쁨입니다. 즐거움과 기쁨 때문에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라고 합니다. 로마서 5:1에는 구속함을 얻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이 찬송처럼 주의 팔에 안겨 있으면 기쁘고 복이 됩니다. 여호와의 팔이 즐거움이고 기쁨이고 복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주님의 팔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팔에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영원하신 팔에 안기시를 바랍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5천만 명 내지 6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폴란드는 인구의 20%가 죽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은 10%가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도 많지만 총이나 포탄보다 정신적인 불안으로 죽은 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영국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영국의 한 할머니는 많은 국민들이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데도 계속되는 폭격 속에서 놀랍도록 평안하게 잘 견디어 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할머니에게 평온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매일 밤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하나님과 나 둘이 다 깨어 있을 필요는 없지요!”. 하나님의 팔이 깨어 있으면 내가 잠들어도 평안합니다. 내가 깨어 있어 지키려고 버둥거리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실 것입니다. 
  
지난 3월 일본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났을 때에 이와테현의 어느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뛰다 놓쳐 딸이 실종 당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딸이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어머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지 아시지요? 딸을 잃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초인적 팔 힘도 쓰나미 앞에서 무색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팔의 힘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간의 팔 힘은 자연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국이나 아이티의 대지진이나 미국의 토네이도 앞에서 인간의 팔은 의지할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팔이 깨어 있어야 즐겁고 기쁩니다. 
  
이사야 33:2에는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즐겁고 기쁨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의 팔이 우리 팔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팔이 우리의 팔이 되면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즐겁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즐거움과 기쁨이 영원할 것입니다. 
  
로랜스형제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서 “성경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팔은 결코 짧아지지 않는 다는 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언제나 깨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우리 모두를 껴안을 만큼 큽니다. 여호와의 팔은 항상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결론 

경기도 화성의 제암마을은 3.1운동 때에 마을 전체가 항일 운동을 하다가 불이 나고 죽었습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교회 안에 23명을 가둬놓고 나오지 못하게 밖에서 문에 못질을 하고 교인 전부를 다 태워 죽였습니다. 요즘 제암마을의 기념관에 가면 그 때의 일을 자세히 기록해 놓고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May be forgiven but never forgotten).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한국전쟁기념일이 있는 달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원인과 원흉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없이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상은 정치, 안보, 경제, 사회, 교육, 윤리, 어느 하나 편한 게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여호와의 팔이 깨셔야 합니다. 여호와의 팔이 우리를 붙잡아주셔야 하고 우리를 승리케 하셔야 합니다. 
  
팔짱을 끼고 상대의 얘기를 듣는 상태는 상대를 거부하는 포즈라고 합니다. 팔짱을 끼는 것은 본심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라고 합니다. 팔짱을 끼면 손바닥을 숨기게 되고, 팔을 양쪽으로 가림으로써 앞에 있는 상대에게 큰 벽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팔짱을 끼고 자신을 숨기고 우리를 방관하듯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뒷짐을 지고 우리 뒤를 따라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가셔서 장막 칠 곳을 예비하시고 앞서 가시며 불과 구름 기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벌리신 그리스도의 팔은 힘 있는 팔입니다. 예수님의 두 팔은 온 세계를 다 껴안는 팔입니다. 그 팔에 안기면 구속함을 받고, 그 팔에 안기면 즐겁고 기쁘고 평안합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깬 여호와의 팔 안에서 즐거움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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