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소원을 이룬 사람 (막 10:46-52)

첨부 1


소원을 이룬 사람 (막 10:46-52)


어느 눈먼 장님이 일반인들과 더불어 미국서부지역을 관광하는 가운데 그랜드캐넌을 갔습니다. 그 웅장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모두가 기뻐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 감탄의 함성을 들은 장님이“하나님, 내게 5분만 눈을 뜨게 하셔서 나도 한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볼 수 있게 하신다면 한이 없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대자연을 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음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봉독한 성경 말씀은“바디매오”라는 눈먼 청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눈이 어두울 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거지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거지 소경이 구걸하고 있는 길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 가운데, 나사렛 동네에서 온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지나가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이 소경 거지는 큰 소리로“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7) 하고 외쳤습니다. 

소경의 시끄러운 고함소리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경은 더욱 큰소리로“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8)하고 외쳤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소경 거지가 고함치며 주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고 발길을 멈추시며, 제자들에게“저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신다는 말을 듣자 이 소경 거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라 겉옷까지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경에게“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소경은 대답하기를“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했습니다. 이 소경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시자, 그 시로 소경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소경이요 거지인 이 사람은 예수님에 의해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흑암의 굴레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행의 늪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소경이며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눈을 뜬 과정을 살펴보므로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一. 예수님께서 소경 곁에 오셨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자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 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한 소경 곁에 오시지 않았다면 이 소경은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갈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소경이라 할지라도 혹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품을 주고 사람을 사서라도 그 사람의 안내를 받아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찾아갈 수 있었겠지만 이 사람은 가진 것이 전혀 없는 거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예수님 곁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불쌍한 소경 거지 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고자“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8)라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소경의 고함소리에 주위 사람들은 잠잠하라고 야단치며 핀잔을 주었지만 그래도 이 소경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애원하듯 소리쳤습니다. 이러한 소경의 고함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소경에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눈을 뜬 소경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후로 얼마나 자유로웠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우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소경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밝아 만물을 밝히 보며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다녔습니다. 하지만 영의 눈은 어두운 소경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도 몰랐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하늘나라도 몰랐습니다. 불못 지옥이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곳이 장차 내가 갈 지옥이라는 안타까운 사실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이러한 영적 소경이 저와 여러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영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응답을 받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한복음 6:44) 라고 하셨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내 의지적 선택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소경 거지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까이 오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본문 46절~47절에“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소경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이 이곳을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소경에게 계획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능력 있는 말씀을 증거하시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으므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이야기를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가 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은 거지 소경과 같이 절망과 불행에 처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 한마디가 불행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1904년 데이트 선교사의 전도로 김제 금산의 조덕삼이라는 한 부호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조덕삼은 자기 땅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배당을 세우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집에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처럼 자라서 머슴살이를 하는 이자익라는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조덕삼은 그 머슴을 전도하여 같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훗날 이 청년이 땅을 드리고 예배당을 세운 주인 조덕삼보다 먼저 금산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다음해 머슴보다 늦게 장로가 된 조덕삼은 이자익 머슴을 평양신학교에 보내 신학을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가된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모셔왔습니다. 조덕삼 장로의 손자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치인 조세형 장로입니다. 국회의원과 일본 대사를 역임했던 사람입니다.
이자익 목사는 훗날, 장로교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습니다. 또한 이자익 목사는 지금의 대전신학대학을 설립하여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볼품없는 고아 머슴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한국교회 기둥으로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쉼 없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三. 바디매오는 문제 해결의 길이 예수님께 있음을 믿었습니다.

소경이요 거지였던 바디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은,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매오의 불행을 몰아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가시며, 성난 파도를 말씀 한마디로 잔잔케 하신 대자연의 주관자이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불치의 환자를 고치신 만병의 의사이십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며 불행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사탄을 정복하신 분이십니다. 어린아이 도시락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게 하신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전능자 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문제의 해결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거지요 소경인 바디매오를 만나주셨고, 그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멸시하고 천대하던 거지 소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따듯하게 만나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가까이 갈 수 있고, 누구나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수없이 반복하여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소망을 잃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문제를 안고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를“걱정 없는 사람은 공동묘지에 있는 죽은 사람들뿐입니다. 만일 참다운 삶을 살고 싶다면 당신은 주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살 각오를 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은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주검들뿐입니다. 

삶의 성공과 실패는 어떤 큰 장애물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문제요, 소망이 문제요, 용기가 문제입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는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환난 많은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인도자가 되시며, 보호자가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四. 바디매오는 좌절하지 않고 주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이 불쌍한 소경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7)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때에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조용히 하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쳤습니다. 이러한 바디매오의 소리를 들으신 주님은 그의 간구하는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쉬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인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 홍수가 일어나기 전 노아는 10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린 후 백세에 기적의 아들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기 전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인내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1909. 8. 31 유태계 세균학자인 폴 애를리히는 매독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약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나는 과학적인 성취를 위해 7년 동안 605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연구하고 실험하여 606번째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이 치료약의 이름을 606호라 지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소망이 성취되는 데에는 매사에 인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7절-8절에 말씀하시기를“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환난의 날, 앞이 캄캄한 어두움의 날,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의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날이라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하고 한숨만 쉬지 말고 주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주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해결 못할 일이 없습니다. 눈먼 소경의 눈을 말씀한마디로 고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환경도 탓하지 말기 바랍니다. 환경을 탓하는 것은 나약한 자의 궁색한 변명입니다. 어느 용감한 스파르타 장군의 아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칼이 너무 짧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때 장군은 아들에게“칼이 짧으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염려와 근심을 안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습니까? 소경 바디매오에게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인내하며 더 크게 소리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바립니다. 잠언 8장 17절에“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십니다. 

시편 42편 11절에 말씀하시기를“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문제,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헤치시고 살아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를 찾아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광명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넓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