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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코 잊지 맙시다 (삼하 2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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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잊지 맙시다 (삼하 23:13-17) 

  
6월 6일이 현충일이요, 6.25일은 6.25사변이 발생한 날이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침략 당한 나라와, 잃었던 나라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순국열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제정된 날"이 현충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추모하는 기념일이 되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부상당하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추모하고, 위로하고, 감사하는 기념일을 갖고 있다. 만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떤 나라든지, 어떤 공동체든지, 감사를 모르는 삭막한 세상이 된다. 

미국은 우리 식으로 현충일, Memorial Day, Remembrance Day가 있다. 1865년 5월 30일 남북전쟁(1861-1865)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추도식이 거행된 데서 연유하여, 마지막 월요일로 이후 연례행사가 되었다. 5월 말이면, 가정마다 성조기를 게양하고, 곳곳에 포스터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결같이 "We'll never forget you."(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와,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너무나 잘 잊고 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높이 받드는 정신과, 그의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전통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본문에는 다윗 왕이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다윗과 함께 충성을 다했던 장군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1. 공을 세웠던 자들의 이름을 잊지 말라(8上).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하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영웅들의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다. 

성경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유는, 후손들에게 그들의 희생과 충정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자주 "기억하라"고 한다. 이는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뜻이다. 호국선열들은 모두, 자신의 생명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놓은 분들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수많은 호국선열들이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가 있었다. 나라와 민족, 가정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분들의 공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호국정신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안타깝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면은, 바로 이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이다. 따라서 사람으로서, 후손으로서, 결코 그들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잊지 않는 마음에서 '역사의식'이 생겨난다. 6월이 오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하면서 6.25의 노래를 불렀던 생각이 난다.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잊어진 노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남북은 대치상황으로, 전쟁의 위험마저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6.6%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중고생의 절반 이상, 북한이 남침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육군사관학교 신입생도의 34%가, 우리의 주적이 미국이라고 답을 한 적이 있다. 6.25전쟁이 남긴, 가장 큰 민족사적 교훈이 있다면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라,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교훈을 전파하고 있는 곳은, 전쟁이 일어났던 한반도가 아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국전쟁 기념공원이다. 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는, 해마다 평균 320만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 공원을 방문하는, 세계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곳에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끄는, 한 문구가 있다. "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달려갔던, 자랑스러운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아래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불멸의 메시지가 있다. 

한국 전쟁에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아들을 잃었고, 벤프리트 장군도 아들을 잃었고, 클라크 유엔 사령관도 아들을 잃었고, 워커 중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전사했고, 24사단장 딘 소장은 전쟁포로가 되었다. 

이러한 피 흘림의 희생 위에서, 오늘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은혜를 잊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을 기록해 놓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 것을 기념하도록 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몇 가지 들어보겠다. 

(1) 에벤에셀 기념비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성회를 열었다. 블레셋이 그 소식을 듣고 쳐들어왔다. 속수무책인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블레셋에게,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혀서, 혼비백산케 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패하게 만들었다.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까지 쳐들어갔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에서 기념비를 세웠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후손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다. 

(2)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넜을 때다. 
범람하던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고,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요단강 바닥의 돌 열두 개를 취하여, 요단강 바닥과 길갈에 비석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수4: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기념 돌을 세우게 하신 이유는,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3) 애굽에서의 해방(출12:13-14)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유대인들은 3천 5백년 전에 행해졌던 유월절을, 오늘날에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쓴 나물을 먹으며, 출애굽 때 조상들의 고난을, 지금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2. 충성과 헌신을 잊지 말자(13-17). 

시골 목동출신 다윗을 도와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용사들이 본문에 등장한다. 30명의 용사들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든, 야전 지휘관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3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 3명은 다윗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충신들이었다. 다윗이 산성에 있을 때에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3명의 용사들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숨을 걸고 달려나갔다. 

그러나 베들레헴 성문은, 블레셋의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다. 세 사람이 아무리 용사라도, 수비대 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 자기목숨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제 정신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세 사람은 달려갔다. 수비대는 이들을 발견하고, 방어망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그러나 세 사람은, 전혀 개의하지 않았다. 죽으면 죽으리라, 아예 목숨을 내걸고 전진한다. 수많은 수비대들을 뚫고 지나가면서, 길을 만들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뚫고 가니, 수비대는 깜짝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선다. 너무나 용감무쌍해서, 수비대들이 멍청하게 서 있다. 

순식간에 베들레헴 성문 곁으로 달려간다. 한 사람이 우물물을 길어, 가죽부대에 담고, 두 사람은 옆에서 호위한다. 다시 뻥 뚫린 길로 되돌아온다. 무릎을 꿇고, 그들의 주군 다윗에게, 물이 든 가죽부대를 갖다 바친다. 다윗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16-17)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나를 위해,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는 이 충신들을 보라. 이들 세 사람만 있으면, 천하인들 어찌 못 얻겠는가! 

오, 하나님! 제가 어찌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나이까? 이 물은 물이 아니라, 저들의 생명과도 같은 피입니다. 오, 하나님! 이 피를 받으시옵소서." 3명의 충신들은 피 같은 물을 길어, 주군인 다윗에게 갖다 바치자, 다윗은 자신의 주군 하나님께, 이 물을 부어드렸다. 

세 사람은 그들의 주군 다윗을 감동시켰고, 다윗은 그 자신의 주군,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세 사람은 그들의 주군, 다윗 군대의 사기를, 한껏 진작시켰다. 뿐만 아니라 블레셋 적군의 간담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윗에게 저런 충신들이 있다니, 앞으로 우리가 다윗 군대를 이기기 어렵겠구나." 적군 블레셋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뜨렸다. 세 용사는, 수많은 적군들과 싸워가며, 물을 길어 왔으니, 얼마나 많이 피를 흘렸겠는가? 다윗의 뒤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있었다. 

그들이 나라와 민족과 왕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았는데, 자신이 그 물을 마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물은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길어온, 피와 다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의 제단에 부어드렸다. 물을 길어온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왕을 지켰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병사들 모두가 목숨을 내놓고, 전투에 임했고, 왕을 위해 충성했는데, 왕이라고 이러한 특권을 누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다윗의 이런 위대한 리더십이, 가나안을 통일하여, 통일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주군이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말 피 같은 물을, 갖다 바칠 수 있는가? 가장 귀한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가?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 교회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지옥의 성문은 뒤흔들리고, 지옥의 수비대는 벌벌 떨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자기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충신들이 있었기에, 위대한 다윗 왕이 될 수 있었다. 승리가 그냥 오지 않는다. 목숨까지 다 바쳐, 충성하고 헌신하는 자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까지 다 바쳐 싸우는 사람들이 있을 때, 통일과 일류 국가는 가능하다.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다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속히 임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도 다 바치는, 그런 충신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충성한 사람들을, 다윗 왕은 잊지 않고, 30용사로 삼았다. 

3.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 

베들레헴이 블레셋에 점령되었을 때, 다윗은 자기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마실 수 없었다. 이처럼 힘이 없어서, 자기 땅을 빼앗긴다면, 물을 마시기에도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힘을 길러서,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야만 한다. 우리 민족이 왜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는가? 우리에게 이 나라와 민족을 지킬,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왜 침략을 당하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그대로 이만큼이라도,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살게 된 이유는, 그 동안에 힘을 길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힘을 잃으면, 나라를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힘을 기르자. 유대인들이 강한 이유는, 그들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 힘이 없으면 망한다. 

힘에는 보이는 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도 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세계열강들의 틈에 있어서, 국방이나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외세의 영향에 매우 취약하다. 우리 인간의 힘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힘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힘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힘이다. 무한한 하나님의 힘이, 나와 함께 할 때,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진정한 힘이 된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된다면,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에게 힘이 되신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신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신다.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 위기가 왔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붙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기억의 산'위에, 600만 나치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기념관을 야드 바쉠(      , 손과 이름)이라고 부른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드 바쉠에는 홀로코스트 학살을 기억하면서, "용서했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는 글귀가 있다. 

야드바쉠 출구에 '욥'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망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포로가 되게 하고, 기억은 우리를 자유인이 되게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에는 전쟁을 반드시, 신앙의 교훈으로 삼았다. 

인류역사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데는, 3가지 요인이 있다고 한다. (1)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 (2) 끊임없는 전쟁. (3) 계속되는 천재지변이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패배한 원인은, 언제나 종교와 신앙의 타락이요, 도덕의 타락이요, 인격의 타락 때문이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왜 전쟁을 치러야 했고, 왜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해야 했느냐를, 깊이 깨달아 신앙의 교훈으로 삼았다. 19세기의 러시아에는, 약9천만의 크리스천이 있었다. 신부들만 6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4만 5천명 밖에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 까닭은 종교가 형식만 남아, 신앙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했을 때, 존 웨슬리가, 신앙과 교회의 갱신운동을 통하여 영국을 구출해냈다. 영적인 힘을 길렀기 때문에, 무혈혁명으로 영국을 구해낼 수 있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수백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오직 자유를 찾아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굶어 죽을지언정, 사람대접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며 살기를 원하여, 목숨걸고 내려왔다. 우리는 월남한 사람들의, 신앙의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공자는 "민족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 (1) 그 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야 하고, (2) 군사력에 부응하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3) 통치자와 국민간의 신뢰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 국방력, 경제력, 민족의 단결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도 확보하고, 경제적인 기적도 일으켰다. 문제는 서로의 신뢰성을 잃어버렸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 경기 때와 같이, IMF때에 금모으기에 동참했을 때와 같이, 단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지금의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그들은 단결된 신앙의 힘으로, 성 주위를 돌기만 했다.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 되었을 때, 그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존 F 케네디는 "조국이 무엇을 해주기 보다,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까 먼저 생각하라."고 했다. 

결론이다. 어느 나라이든, 어느 가정이든,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다. 지구상의 수많은 종족들이 있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사라진 종족들이 매우 많다. 

우리나라 주변에도, 많은 종족들이 있었지만, 사라졌다. 나라들도 생겼다가 없어진 나라도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극동아시아의 작은 반도 안에서,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왔음은 놀라운 기적이다. 주변에는 강대국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비록 천 번이나 되는, 외세의 침략이 있었지만, 잘 버티며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여 온 것은,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쳤던, 위대한 용사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일제 36년 동안, 민족이 수치를 당할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독립투사들이 있었기에 나라를 되찾았다. 지난 6.25전쟁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만 명의 전몰장병이 있었기에, 이 땅의 자유를 지킬 수 있었다. 우리는 그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피를 바친, 호국선열들을 잊지 말자.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 또한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순교하신 믿음의 선조들을 잊지 말자. 

우리를 낳아서 기르느니라, 모든 삶을 다 바쳐 희생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 잊지 말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잊지 말자. 그분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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