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결혼을 무효화 할 수는 없잖아요 (창 26:7-11)

첨부 1


결혼을 무효화 할 수는 없잖아요 (창 26:7-11)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시되 특별히 가정에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족 모두가 영적으로 깨어있고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되어서 여러분의 말년은 자녀 덕을 보며, 자녀가 자랑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가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부가 평생을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까지 배우자를 잘 만났다고 고백할 수 있는 가정생활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6·25를 주제로 표어를 하나씩 작성해오라고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식상한 표어를 써서 제출하였습니다. “무찌르자. 공산당”, “간첩신고는 113” 등 기발한 표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한 아이가 써온 표어를 보고 뒤로 넘어갈 뻔 하였습니다. “6·25는 무효다. 다시 한 번 붙어보자.”
   
여러분! 혹시 결혼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무효로 돌리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본문에서 리브가는 이삭의 한심스러운 모습을 보고 아마 결혼을 무효로 하고 싶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리브가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주에는 이삭이 흉년을 만나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던 중에 그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랄에 머물렀었다는 말씀을 들렸습니다. 오늘은 이삭이 그랄에 머물면서 실수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의 조상들이나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약 5장에서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아브라함도 이삭도 우리들과 별 다르지 않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이 실수를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이삭 역시 실수를 하면서 세상을 살아갔었습니다.
   
이삭의 실수는 아내를 아내라고 말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였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오래 머물면서 어느 날 아내를 껴안았습니다. 그 모습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불러서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임을 확인하고 백성들에게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건드리지 못하게 명령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간단한 요약입니다. 
 
리브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출신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는 화장술과 장신구가 발달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자신의 외모를 예쁘게 꾸밀 줄 알았습니다. 리브가는 화장술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옷과 악세사리로 멋진 코디를 해서 그랄의 어떤 여자도 따라올 수 없는 패션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녀가 입으면 유행이 된다”는 광고 카피처럼 리브가는 패션을 리드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그랄의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여자였습니다.
   
이삭에게 아내 리브가의 아름다움은 큰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강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의 아내를 빼앗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빼앗기 위해서 자기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결국 이삭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두려워도 어떻게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이삭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내를 아내라고 진실하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떳떳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비겁하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단순히 거짓말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한 가지 거짓말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삭은 아비멜렉이 자기 아내를 빼앗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했으니 아비멜렉이 아내를 빼앗아가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자신과 아내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상에 어떤 아내가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남편을 신뢰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리브가의 입장이라면 이삭을 상종하고 싶겠습니까? 제가 리브가의 입장이라면 다시는 이삭을 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아비멜렉 앞에 나아가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기 전에 12개월을 준비했습니다. 

리브가는 12개월은 아닐지라도 왕 앞에 서기 위해서 일정기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제가 추론하기로는 리브가는 그 기간 동안 이를 갈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런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저 하나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았는데, 지가 나를 버려... 그래 어디 보자. 내가 왕 앞에 서는 준비기간이 끝나고 왕 앞에 서면 그 때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리브가는 배신감에 복수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자식들에게도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를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자식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것입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이삭을 따르는 부족원들에게도 부끄러운 행동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지도자가 지혜롭고 당당하기를 원하지 상황에 따라서 거짓말이나 하는 카멜레온 같은 지도자를 원치 않습니다. 부족원들은 아비멜렉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는 이삭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이삭의 리더십을 약화 시키고 말았습니다.
이삭의 거짓말은 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삭이 일개 부족원에 불과했다면 모르지만 이삭은 족장이었습니다. 족장인 이삭의 거짓말은 부족의 명예에 똥칠을 하는 아주 부끄러운 짓이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거짓말을 했다가 리브가를 빼앗기고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이삭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아내를 누이라고 할 때 자기를 바라보던 리브가의 실망스러운 눈빛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데리고 간 후에도 자기를 바라보던 리브가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아서 괴로웠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이삭은 아비멜렉이 리브가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무도 자기에게 ‘당신, 왜, 아내를 팔아먹었어?’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그들이 속으로 ‘저, 아내를 팔아먹은 비겁한 놈’ 이라고 욕하는 것만 같아서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아마 이삭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지나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긴 후 ‘지금 아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밤이면 잠을 설쳐야 했고,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가정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자식들을 보겠습니까? 어떻게 자식들을 교육 시키겠습니까? 어떻게 자식들과 한 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삭은 영적인 지도자의 역할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족장이면서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잘 믿게 해야 하는데 부끄러운 자기 모습 때문에 그것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실 이삭을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상처를 준 것이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비겁함 때문에 상처 받고 아파할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가볍게 한 거짓말에 비해서 이삭의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다.
이삭은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왕에게 가서 리브가가 내 아내라고 진실을 고백하자. 그리고 죽게 되면 죽는 것이 더 낫겠다. 내가 죽더라도 아내의 상처는 치료해주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약한 중에 도움을 구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기로 결심합니다. 리브가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아비멜렉을 찾아가서 ‘리브가가 제 누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리브가는 제 아내입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삭은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이삭은 먼저 리브가를 찾아갑니다. 리브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리브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리브가를 껴안습니다.
   
지금 이삭은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리브가가 아비멜렉과 잠자리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리브가는 왕의 소유입니다. 이 장면을 아비멜렉의 신하가 보았다면 그 신하가 이삭을 죽여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행위는 이삭뿐 아니라 리브가도 죽을 수 있는 일입니다. 왕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또한 이런 행동은 부족 전체가 몰살될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이삭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리브가를 찾아갔고 용기 있게 공개적으로 리브가가 자기 아내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삭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실하게 믿음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은 이삭에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이삭은 용기를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리브가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잘못을 깨닫고 리브가를 찾아와서 용서를 구할 때 리브가가 이삭을 받아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가 껴안게 된 것입니다. 만약 리브가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껴안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문제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아비멜렉도 사용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껴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이 보게 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이 창 밖에서 두 사람이 껴안는 것을 보았는데, 이 말은 아주 가까이에서 두 사람이 껴안았다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궁궐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아비멜렉만이 본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만약 이 광경을 아비멜렉이 자기 눈으로 보지 않고 다른 신하들이 먼저 보고서 아비멜렉에게 보고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두 말할 것 없이 이삭은 현장에서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껴안은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이삭이 왕의 여자를 껴안은 것이니 현장에서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닌 아비멜렉의 눈으로 두 사람이 껴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비멜렉에게 침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삭을 대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 이삭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말을 들은 아비멜렉이 이삭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시고, 백성들에게 이삭을 보호하는 명령을 내리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이삭을 철저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이삭이 거짓말을 한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믿음으로 행동하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부족원들의 생명이 보존되게 해주셨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의 보호자가 되게 하심으로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삭이 믿음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나아가니 오히려 살길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삭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공개적으로 리브가가 아내임을 고백함으로 인하여 가정이 회복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을 용서하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가정으로 돌아옴으로 우울했던 자녀들은 웃음을 회복했을 것이고 또 용기 있는 아버지의 행동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의 리더십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부족원들은 이삭이 비록 실수를 했지만 용기 있게 믿음으로 돌이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일로 부족원들은 이삭이 자신들의 참된 지도자라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삭이 족장으로서 부족원들의 영적인 면을 터치하는데도 막힘이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을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이삭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삭을 비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이 모든 죄책감과 내적인 갈등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행동한 이삭의 마음에 넘치는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삭처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볼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작은 유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한 거짓말이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작은 거짓말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삭이 한 작은 거짓말이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의 거짓말이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삭이 믿음으로 거짓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우리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붙잡고 있던 거짓을 놓고 진실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삭처럼 믿음으로 거짓을 포기하고 진실하게 행동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도우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기가 막히게 도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놀랍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도우셔서 이삭이 죽거나 손해를 보지 않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손해 보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을 말하기를 원치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1960년, 2차 대전이 끝난 후 15년이 지났습니다. 독일의 한 남자가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성당의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소?” “전쟁 통에 유대인 한 사람을 다락방에 숨겨주었습니다.” “그건 죄가 아니오.” “그런데 제가 매달 하숙비를 받았습니다.” “그건 잘한 일은 아니지만 죄 될 것까지는 없소.” “아이고, 다행이네요.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신부님,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 알려야 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거짓말은 우리의 영성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진실한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반대로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 사람에게 역사합니다. 우리가 하는 거짓말은 마귀로 하여금 역사할 틈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오물이 있는 곳에 파리가 모이는 것처럼 거짓말을 통로로 해서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말이 엄청나게 큰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면 제9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21:8에 보면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 21:27에서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계 22:15에서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깊은 영성을 원한다면 거짓을 해결해야 합니다. 진리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원하고, 이 세상을 거룩하게 살아가려면 거짓말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거짓을 해결해야 합니다. 파이프가 깨끗해야 깨끗한 물이 전달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거짓을 해결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거짓을 해결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복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짓을 해결하고 진실을 회복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먼저 회복될 것이고, 자신과의 관계도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될 것입니다. 
 
거짓을 해결하는 방법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가 행한 거짓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기만 해도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는 내가 거짓말을 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주의 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대가 받아드릴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상대가 받아드릴 수 없다면 좀 기다리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용서를 구했다가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느 여자 분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집회에 참석했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기가 바람피운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남편에게 자기가 바람피운 사실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편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남편이 아내의 이야기를 듣더니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준비 되지 않았다면 준비가 될 때가지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아마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 가운데는 하얀 거짓말에 대해서 갈등이 생기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탈무드에도 보면 하얀 거짓말은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총각이 장가들었으면 부인이 못생겼어도 미인이라고 말해주어야 한답니다. 물건을 사기 전에는 좋지 않으면 사실대로 말해 주어야 하겠지만, 사고 난 후에는 잘 샀다고 해야 된답니다.
   
수 2장에 보면 두 명의 정탐꾼이 여리고 정탐을 하러 갔다가 라합의 집에 들어가서 유숙하게 됩니다. 그 사실은 알게 된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점탐꾼들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 때 라합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사실대로 말했다면 정탐꾼들은 잡혀 죽었을 것이고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얀 거짓말을 했습니다. 라합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 라합은 하얀 거짓말로 정탐꾼들을 살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이 아닌 거짓은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거짓을 해결하고 진실하게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여러분이 계속해서 거짓을 품고 산다면 이삭이 여러 가지 고통을 당했던 것처럼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결단하고 거짓을 자복하고, 진실하게 살아간다면 이삭을 도우셨던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거짓을 해결하고 진실하게 사는 여러분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이 화목하고 인간관계가 열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 받는 존재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