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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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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야기 (요 21:1-14)


소설가 박완서씨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 1월이었습니다. 암으로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제가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과연  그분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바라본 광경이나 사람은 누구였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썼던 ‘미망’이라는 작품가운데서 아주 인상 깊은 대목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태임이라고 하는... 몰락해가는 개성의 양반 집에서 태어난 여성이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그녀는 자기 집안의 머슴노릇을 하던 종상이와 결혼을 합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자면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일이지요. 그런데 태임이가 늙어서 임종을 하는 장면을 보면... 이제 점점 더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것... 그것은 젊은 종상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주 씩씩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걸어 들어오던 젊은 날의 종상이... 그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나가고...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소설을 읽은 후부터 그런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과연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무엇을 볼까? 아마도 그것은 내가 그런 광경이나 사람을 끝가지 기억해야하겠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 나에게 의식이 있을 때가 가능하겠지만, 내가 나를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아마도 살아오는 동안에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의식 밑에서부터 올라와서, 나에게 보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지 이렇게 내가 마지막으로 직면하게 될 일이 아니더라도 오늘을 살아오는 동안에... 정말 나에게 소중하고 인상 깊은... 만일 나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에라도 그 광경을 떠올린다면 위로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해주는 그런 순간이 우리들에게는 어떤 순간이었는지요? 이 시간에 한 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을 읽을 때에 여러분이 가졌던 느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본문의 맨 마지막 대목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일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신 이야기라는 설명이 설혹 없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오늘의 이야기 속에서 부활절의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벌써 부활절이 지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부활절 이야기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부활절을 지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로만 느껴질 뿐입니다. 우리가 금년의 부활절을 언제 지켰는지... 아마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그 날짜도 잘 기억을 할 수 없겠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아마도 부활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활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부활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절대로 이렇게 끝날 수는 없는 이야기라고...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거듭해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라고... 이렇게 성서의 기자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가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이야기는 이전에 예수님이 두 번 제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과는 차이가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 나타나신 것은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활절 저녁에...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두려워하는 제자들이 한 다락방에 숨어서 문들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팔일 후에 예수는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도마를 위하여... 부활절 저녁에 그 자리에 없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도록... 예수는 다시 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는 다시 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라는 것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첫 번이나 두 번째와는 다릅니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신 장소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두 번의 만남은 예루살렘의 다락방... 아마 그곳은 제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함께 하셨던... 아마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 것이고, 마지막 유언을 제자들에게 남기신 곳도 그 곳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부활하신 후에 예수가 그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인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예수는 전혀 다른 곳을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가 세 번째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야기의 첫 머리에 장소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v.1) 성경은 이렇게 장소를 먼저 말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지요. 예수가 세 번째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곳은 예루살렘의 다락방이아니라 제자들이 고기를 잡고 있던 갈릴리지방의 디베랴 바닷가였다... 
   
게다가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시간도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v.4) 성경은 예수가 그들을 찾아간 때가 적어도 동이 트기 이전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 바닷가에 와 계셨는지...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이 트는 무렵에... 그래서 모든 것이 어둠 가운데서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하게 되었을 때에... 그 때에는 이미 예수가 제자들이 고기를 잡고 있던 바닷가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부활절이 지나고 며칠이나 지난 후인지... 그것을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예수가 세 번째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일은 앞의 두 번과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과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그 장소와 시간을 통해서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가 여기까지 오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곳... 그곳에 예수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3절을 보면 그들은 미리 어떤 계획에 의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 베드로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나선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그들은 생각이 맞아서 디베랴바다를 찾았던 것인데... 아마 그래서 일곱 명이 그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을 텐데... 바로 그곳에 주님이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찾은 시간도 뜻밖입니다. 이제 막 어둠이 걷히고 동이 트는 시간인데...  주님은 이미 그 시간에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시편139:9에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개역) 이른 새벽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저 바다 끝에 내가 서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그곳까지 나를 찾아와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소중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두 번 제자들을 찾아 오셨던 예루살렘의 다락방... 아마 그곳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함께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 또는 우리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곳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이 다시 그들을 찾으신 디베랴바닷가! 그곳은 어쩌면 우리가 일하는 삶의 터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그곳이 우리가 일하는 일터이든지, 아니면 어디론가를 향하여 가고 있는 도중이라든지... 이렇게 예수님이 계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곳으로...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시라는 것...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가 제자들을 찾아오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예수가 그들에게 오심을 통해서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이것을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제자들은 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단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고기가 없어도 송사리 몇 마리쯤은 잡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들은 어쨌든 그날 밤이 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가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하셨던 일은 더욱 놀라움과 감동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그물에는 그물이 짖어질 정도로... 너무 많아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후에 고기를 육지로 올려놓고 보니까... 그 고기들은 하나같이 큰 고기였고... 그 수를 세어 보니까 일백 쉰 세 마리나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하여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풍성함입니다. 예수는 우리들에게 풍성한 삶을 허락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가 없었을 때에는 한 마리의 고기도 없었는데... 예수가 함께 하시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였더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는 우리에게 오셔서 삶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단 오늘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다 떨어져가게 되자...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그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더 좋은 포도주를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예수가 광야에서 행하신 일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만을 가지고 자기를 찾아왔던 모든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그 때에 그곳에 있던 사람은 남자만 오천 명이었고, 그들이 먹다가 남긴 떡들을 다시 모아보니까 열두 광주리를 가득하게 채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이렇게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이 곳... 디베랴의 바닷가... 이곳은 오병 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장소에서 멀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이렇게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풍족하고 넉넉하게 살기를 희망하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애써 준비한 포도주였지만, 안타깝게도 모자라서 애를 태웁니다. 광야와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양식이 부족해서 굶주리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제자들처럼 열심히 그물을 던지기는 하지만, 때로는 빈 그물만을 거두어들이는 날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한10:10)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풍성함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빈 그물만을 거두면서 살아 왔다면... 주님의 은혜와 손길을 통해서 그물이 가득 차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통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삶 가운데서 일어나며,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풍성함 가운데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에 단지 이런 풍성함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참 재밌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고기를 잡는 일에만 몰두하느라고... 지금 자기들의 곁에는 누가 서 있는지... 자기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  오시는 분이 누군지... 전혀 관심을 가질만한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분을 보게 된 것이지요... 저분은 누구일까? 도대체 누구이길래 그가 말하는 대로 하니까 이렇게 고기를 많이 잡게 된 것인가?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비로소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분은 주님이시다...’(v.7)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즉각 반응을 합니다. 일을 하느라고 옷을 벗고 있다가 겉옷을 걸치고서는 바다로 뛰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베드로다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엉뚱하기도 하고, 성질도 좀 급한 것 같고...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독특하게 반응을 합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거리가 약 100자 남짓하다고 성경은 자세하게 그 거리까지 우리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좀 기다렸다가 배가 도착하면 만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물에 잡힌 고기를 끌고 오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만 이렇게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만일 우리들이 그 날 아침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우리들 중에 누가 베드로처럼 그렇게 너무 성급해서...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잡힌 고기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바다로 뛰어들 사람이 누군가요? 
   
바로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감동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이 나를 찾아 오셨는데... 주님이 지금 이렇게 내 곁에 서 계신데... 그물에 있는 고기를 챙기는 일은 주님을 만나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입니다. 배가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을 통해서 예수가 얼마나 반가운 사람인지... 예수가 그에게 주는 감동과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감동과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동이란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습니다. 감동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동을 다시 찾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좋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 또는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감동들 중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시는 분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문득 자기들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지만(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막16:8)... 그것은 곧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놀라운 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을 뜨겁게 하였고,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기쁨과 생명력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예수가 주시는 삶의 감동과 기쁨... 우리의 마음에 충만 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들이 배를 바닷가에 대고 육지에 올라와 보니... 예수님은 이미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그 위에는 생선과 빵이 놓여있었습니다. 예수는 지금 그들이 잡아온 물고기도 불에 올려놓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빵을 집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생선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느라고 제자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요? 그들은 또 얼마나 추웠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형편을 아시고는 그들을 위하여 불을 피우시고 식탁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불에 구운 빵과 물고기를 먹는 동안에 어느덧 허기도 사라지고 몸도 따스해졌겠지만... 더욱이 이 자리가 바로 주님이 준비하신 자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마 이 자리에서 그들이 먹은 빵과 고기는 그들이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허기지거나 배고프지 않는 신비한 양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6)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따스함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춥고 고달픈 삶의 자리에서도 주님이 친히 피워주셨던 숯불을 생각하노라면... 어느덧 그들의 몸과 마음은 따스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주님이 피워놓으신 숯불로 몸을 녹이고... 주님이 준비하신 빵과 생선으로 허기를 채우면서 느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사실 그들은 주님이 그들을 책망하신다고 하여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실 때... 이들은 대부분 도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가 찾아 오셔서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지만...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기대를 져 버리고 이렇게 처음 그들이 예수께 부르심을 받았던 그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는 그들에게 단지 사랑만을 보여주실 뿐입니다. 그 사랑은 참으로 깊은 것이어서... 그들이 예수를 버렸어도... 예수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어도 조금도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다시 일어서기가 힘이 듭니다. 다시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것을 하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와 주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때... 우리는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일어 설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이러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허물을 감싸 주시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 그 신비한 사랑을 힘입어서 다시금 일어서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부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해야 할 말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후에 누기복음의 부활이야기를 매일 새벽마다 읽으면서 부활은 참 신비로운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런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어떻게 제자들은 예수가 자기들 곁에 서 있는데... 그것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제발 제자들이 자기를 알아보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도 모를 수가 있을까요?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가 아주 친근하게 말을 건넸어도... 그래도 그들은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기를 많이 잡게 되니까... 비로소 그 분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부활은 그 자체가 신비 속에 감추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열리는... 믿음의 눈을 통해서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세계...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이 가진 신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그들이 예수를 알아볼 수 없었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장소에...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지요... 너무 삶에 열중하다보니... 우리는 주님이 내 곁에 서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시는 데도... 그분이 예수님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간이 있지 않았는지요? 혹시... 그렇게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신 분! 나의 삶에 그런 놀라운 일을 일으키신 분은 주님이신데... 여전히 주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은 아닌지요? 
   
우리는 오로지 주님을 통해서만 풍성해 질 수가 있습니다. 이제껏 텅 비었던 그물이 물고기로 꽉 채워지듯... 그런 풍성함은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주님을 통해서만 삶의 기쁨과 감동을 다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바다에라도 담대하게 뛰어 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치유 하시고, 회복하게 하시고... 다시금 일어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오늘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들 곁에 머물러 계십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함께 하시는 주님과 더불어 만들어 가는 새롭고 신비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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