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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교할 수 없는 영광 (롬 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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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수 없는 영광 (롬 8:18-2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푸쉬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읽어 보셨을 겁니다. 참고 견디면 누구에게나 즐거운 날이 정말 올까요? 그러길 원하지만 보장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고생 끝에 낙이 올까요? 그렇게 되길 원하지만 역시 보장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더라도 고생 안 하려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안 하려고 해도 고생을 합니다. 사람은 사는 동안 누구든지 고난을 당합니다. 
욥5:7절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고난을 안 당하게 될까요?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영광과 고난을 함께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영광보다 고난을 먼저 주십니다. 
‘고진감래’는 보장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 영광은 보장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1. 고난과 영광을 비교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몸이 아픕니다. 너무 아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몸은 점점 약해지는데 이제는 약도 잘 듣지 않습니다. 병원에서도 별 치료책이 없습니다. 두려워집니다. 몸의 고난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자식을 먼저 보냈습니다. 형제를 먼저 보냈습니다. 너무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견뎌낼 지도 두렵습니다. 마음의 고난입니다. 

사람 관계가 힘듭니다.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것도 고난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겪고 있는 고난들입니다. 답이 안 나오는 고난도 많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겪는 고난들입니다. 시90: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욕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손해를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전도하느라고 고생을 합니다. 섬기느라고 고생합니다. 돈도 많이 써야 합니다. 시간도 많이 써야 합니다. 귀한 일인데 고생은 고생입니다. 
때로는 지치기도 합니다. 피하고 싶기도 합니다. 나만 이 고생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면 더 지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해결 방법입니다. 
고생할 때 생각하는 겁니다.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고생을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잘 안 나옵니다. 해결책이 잘 보이질 않게 됩니다. 
고생이 점점 더 크게 보입니다. 더 무거워집니다. 점점 더 불행하다고 생각됩니다.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도피처를 찾고 싶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교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을 장차의 영광과 비교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비교하여 계산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고후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현재의 고난은 잠시 동안 받는 것입니다. 힘들어 죽겠지만 그래도 지나갑니다. 지나고 보면 금방 지나간 겁니다. 60-70년이 금방 지나가셨지요? 저도 어느새 50년이 지났습니다. 
고난 후에 하나님이 주실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10년 20년이 아닙니다. 천년만년도 아닙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비교하여 계산해 보면 그런 답이 나옵니다. 
현재의 고난은 가벼운 것입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비교해보면 그렇게 답이 나옵니다. 
장차에 하나님이 주실 영광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영광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누리는 영광입니다. 천사들도 부러워할 영광입니다. 
지금 실감이 다 나지는 않지만 비교하여 생각해 보면 그런 계산이 나오는 겁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의 영광에 비교거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현재의 고난에다 집중하지 마십시오. 생각을 미래의 영광에다 집중하세요. 
생각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생깁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 그런 생각 안 하게 될 겁니다. 진짜 불행은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난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오히려 기대감을 갖게 될 겁니다. 

2. 피조물도 영광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만 고난을 당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피조물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피조물도 영광의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19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1절을 보면,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창1 장에 5번이나 나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모든 피조물을 보시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람이 살아갈 환경도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창3:17-18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인즉.” 피조물의 잘못이 아닙니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함께 저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허무하게 굴복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인간이 자기 욕심으로 피조물을 사용합니다. 창1:28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명이 아니라 피조물을 종처럼 욕심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피조물도 고난을 당하고 인간도 고난을 당합니다. 22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피조물의 탄식 소리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환경문제 들인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입니다. 생태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기오염, 환경오염으로 온갖 질병이 발생합니다. 피조물도 탄식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도 탄식합니다. 
지금도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개발과 환경문제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피조물에 대해 청지기입니다.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해야 합니다. 
*어느 공익광고 문구입니다. <걸지 말고 걸으세요! 밟지 말고 밟으세요! 올리지 말고 올리세요! 잡지 말고 잡으세요! 담지 말고 담으세요. 나만 말고 우리를 위해” 

피조물도 고난에서 해방될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21: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5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그 날이 언제일까요? 계22:20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는 피조물과 함께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3. 설레는 마음으로 영광의 날을 기다리자.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 속에서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체념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생스럽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영광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23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성령님이 이미 영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미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인 확신을 가지고 살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자녀의 영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소망으로 자녀의 영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현실의 삶에서도 자녀의 권세를 맛보며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영광의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완전한 구원의 영광의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기다립니다. 탄식하며 그날을 소망합니다.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아직은 그 영광이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그날을 소망합니다. 그 날을 기다립니다.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떨리는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겁니다. 

*무기수로 교도소에 갇혀 있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10년을 매일 같이 그 남자에게 면회가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모범수가 되어 징역 20년으로 감형을 받았습니다. 둘은 결혼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교도소측의 배려로 마침내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 남자는 남편이 되었고, 여자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4박 5일간 신혼여행을 다녀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다시 교도소로 들어갑니다. 아내에게 고백합니다. 형기를 다 마치고 나오면 목숨 바쳐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아내는 기다립니다. 그 날을 기다립니다.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맺는 말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글입니다.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 할거야> 행복한 기다림입니다. 가슴 설레는 기다림입니다. 

우리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 현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의 날이 옵니다. 
지금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날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만 바라보며 탄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탄식하지만 기다릴 수 있습니다. 
탄식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롬5:2-4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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