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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7) (욘 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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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자(7) (욘 3:5-10)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있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즘, 남북 간의 중요 뉴스는 비밀접촉 폭로입니다. 지난 1일 북한은 남한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장관급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하면서 남측이 “천안함 사과를 애걸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북한 국방위 대변인은 “이들(=남측)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지혜롭게 넘어야 할 산’이라며 우리(=북측)의 사과를 받아내려고 요술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내놓자고 하면서 ‘제발 좀 양보해 달라’고 애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일로 그간 남북정상회담을 투명하고 원칙 있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해온 정부가 체면을 구겼습니다. 하지만 대화가 있었다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더욱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하여 피차 지혜롭게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성경이 말하는 회개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이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은혜로 구원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새로운 관계로 나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남북한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또 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불순종과 잘못을 접어주셨습니다. 요나는 다시 임하신 말씀에 드디어, 모르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나가 기대하지 않았던, 아니 요나가 가장 우려하였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I. 회개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신약성경[메타노에오]에서 ‘무엇과 함께’ 또는 ‘중심’이라는 ‘메타’라는 말과 ‘마음’이라는 ‘누스’가 합쳐진 말로 ‘마음의 중심을 잡다’는 뜻입니다. 이리 저리 흔들리던 마음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정신 차렸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회개[슈브]는 ‘돌아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회개는 잘못된 것에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누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습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가 두 번째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에 들어가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흘 동안 걸어야 할 큰 도시에서 겨우 하루 동안 외쳤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니느웨 모든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후에 왕을 비롯하여 그 대신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왕의 명령에 의하여 나머지 백성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한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먼저 깨달고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먼저 깨달은 사람을 선각자라고 합니다.

1. 선각자가 회개하였습니다.

어느 사회나 조직이 변화되려면 먼저 깨닫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위하여 먼저 변화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는 먼저 깨닫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먼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뒤를 따라서 누가 회개하였습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충격적인 소식이 왕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나라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왕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은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 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았습니다. 당시의 사회적인 형편이 어떠하였기에 갑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 그 여파로 왕까지 회개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백성이 회개하자 최고 지도자가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2. 지도자가 회개하였습니다.

니느웨의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변화였습니다. 왕은 백성의 회개에 아주 놀랍고 풍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주 비평적인 신학자들 중에는 요나서의 역사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올 수 있겠느냐는 문제 때문입니다. 또 하나, 어떻게 요나 한 사람이 설교했다고 해서 니느웨 왕까지 나서서 회개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종교적으로 보나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쩍, 쩍 하여도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요나서가 믿는 사람들을 꾸짖어 부끄럽게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는 너희는 요나처럼 겨우 순종하거나 아예 불순종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들은 니느웨 백성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왕은 너희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순종하고 있지 않느냐! 나를 믿는다고 하는 너희야말로 넘치도록 순종하여야 할 자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들은 종교적 특권의식에 빠져서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있지 않느냐”는 준엄한 책망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힘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변화가 힘 있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의 변화를 통하여 또 다른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길러낼 뿐만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일부러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부류에게도 담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백성들의 회개에 왕이 회개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왕은 그 나라에 무엇을 선포하였습니까? 

  
II. 선포
  
백성들은 백성으로써 왕에게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러자 왕은 왕으로써 나라 전체에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왕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그의 신하들과 급히 회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시 차원에서 금식하기로 결정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도 입에 대지 말라는 단식명령이었습니다. 물도 입에 대지 않는 단식은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1. 도시에 단식이 선포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최고의 절제입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기 위하여 얼마 동안 가장 즐겨하던 끊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시적이지만 단식이나 금식을 통하여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도시에 단식이나 금식을 강제로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를 위하여 우리가 금식할 수는 있습니다. 믿지 않는 영혼을 예비신자로 품고 금식하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한 도시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도시를 품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를 위하여 기도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교회들이 연합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이 지역을 위하여 기도하여 할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도시를 품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니느웨 왕에 의하여 그 도시에 선포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단식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하여야 할 행동도 명령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또 무엇이 선포되었습니까?

8절 말씀입니다.
: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왕에 의하여 그 도시의 모든 것이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쳐야 할 것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야 할 것이 선포되었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켜야 할 것이 선포되었습니다.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에서 떠나야 할 것이 선포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떠나다[bWv/슈브]’는 말이 구약성경에서 회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이 말의 기본적인 뜻은 ‘돌아가다’입니다.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 하던 일을 접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행동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 도시에 회개가 선포되었습니다.

‘고집’은 잘못된 길인 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후회’는 잘못된 길이라 알고 그 길에 주저앉아 낙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바른 길로 돌아서는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광주에 가려고 기차를 타고 출발하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분 좋게 기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서 천안을 지났습니다. 그런데 깜빡 졸다보니 기차가 대전역에 서 있는 것입니다. 광주에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알고 보니 부산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못 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앉아있는 사람은 고집부리는 사람입니다.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안절부절 하며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사람은 후회하는 사람입니다. 고집부리는 것이나 후회하는 것이나 목적지에 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빨리 기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대전역에서 서대전역으로 와서 기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지갑 속에 든 돈을 모두 꺼내서 구제한다고 잘못된 방향이 바로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놀러 가는 사람이라면 기왕 기차를 잘못 탄 김에 다른 곳에 가서 놀고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인생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면 빨리 바꾸어야 합니다. 인생의 기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이왕 버린 몸’하는 것은 어리석은 고집입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 것은 부질없는 후회입니다. 바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이 바로 진실한 회개입니다.

그런데 돌아서는 행동도 중요하지만 돌아서는 방향도 중요합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인생이 돌아서야 할 바른 방향은 하나님이십니다. 요나가 의지하였던 것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믿었던 것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니느웨 왕이 힘써 부르짖게 하였던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돌아서야 할 방향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섬이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와 지역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도무지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들이 점령하여야 할 영적 고지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와 지역을 위하여 겨자씨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자라나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외치자 니느웨의 몇몇 백성들이 먼저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고 지도자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사람 요나의 외침이 니느웨 백성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마침내 왕의 마음을 흔들어 온 백성에게 파급되었습니다. 억지로 순종한 요나를 통하여 백성들이 회개하였습니다. 백성들의 회개에 왕이 회개하였습니다. 왕의 회개에 온 니느웨가 회개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폭발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이 시대와 지역에 영적 대폭발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마침내 이 세상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역사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요나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시대와 지역에 놀랍게 일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이 도시를 품고 기도하여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대하고 바라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니느웨는 왕까지 나서서 회개함으로 무엇을 바랐습니까?

  
III. 긍휼
  
왕은 무엇을 기대하고 백성에게 단식하며 회개하게 하였습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왕이 백성에게 단식을 명령하고 회개를 명령하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였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의 입을 빌려서 선포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돌아서면 하나님도 돌아서리라’는 구약 성경의 외침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려는 심판을 하나님께서 돌이키시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진노를 거두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아주 엄살이 심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엄살이 심한지 선생님이 매를 들기만 하여도 울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종아리 한 대 맞고 교실을 대굴대굴 굴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는 매를 적게 맞았습니다. 곰처럼 무던히 맞는 녀석은 많이 맞았습니다. 엄살이 심한 녀석은 자기를 불쌍히 보아달라는 표현을 강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는 엄살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음을 헤아리시는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심을 받기 위하여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긍휼을 베푸시는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형원이 작사 작곡한 ‘우리 함께 기도해’라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이 복음송은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호 10:12)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진정 위로부터 오는 긍휼을 기다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돌이키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2.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시기에 용서하고 싶으셔서 제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돌아온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다가 돌아오자마자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이 시대와 지역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긍휼 베푸시기를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회개는 행동(action)입니다. 그것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오늘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방향을 바꾸고, 절제하고, 죄악을 버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 나라와 민족에, 이 시대와 지역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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