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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족을 위한 가슴앓이 (롬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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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한 가슴앓이 (롬 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I. 본문해설 

로마서 8장에서 사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희를 구원하였도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삶을 이야기 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다”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9장에 오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조가 바뀌면서 자기 안에 있는 큰 근심과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포, 친척, 가족을 향한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그치지 않는 큰 근심이 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근심은 예전에는 없었던 근심이었습니다. 그도 한때는 나사렛에서 목수의 집안 아들이 인류의 구원자일수 없다고 굳게 믿었고 오히려 하나님에 관한 허망한 풍설을 퍼뜨리는 이단의 괴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확신에 차서 대제사장의 공문을 취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바울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충된 논리였지만 성령의 강력한 빛이 비취게 되었을 때 복음의 신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신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저주를 받으셨고 그래서 예수님은 저주를 받았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것을 전파하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II. 가족을 향한 고통 

A. 그치지 않는 큰 근심 

이런 커다란 하나님의 복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 사람에게 감격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끔찍한 근심과 처절한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육지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전에 자신처럼 허무한 일에 굴복하며 거짓된 유대교의 가르침 속에 살아가는 동포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인생 전부를 뿌리 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직도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골육지친들을 생각할 때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B. 저주를 받을지라도 

더욱이 사도는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가 원하는 바로다.” 즉 골육지친 중 몇이라도 구원을 얻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가 원하는 바라고 노래를 하였습니다. 저주를 받다 라는 말은 희랍어 성경에 ‘아나데마’(ἀνάθεμα)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도 저주를 받는 것을 싫어하는데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핵심은 ‘저주를 받을지라도’가 핵심이 아니라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어가시면서까지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광경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저주를 받을지라도 골육지친 중 몇이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로라고 담대하게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C. 예수님의 모본 

이것은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모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생애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눈물로 가득 찬 생애였습니다. 그 중 한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기도의 소원을 올린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이 잠시 후에 형벌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이렇게 못 박는 사람들이 이후에 당하게 될 끔찍한 형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본이었습니다. 

믿지 않고 아직까지도 불신 가운데 머물러 있는 여러분들의 가족들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잠시 후 이 세상을 떠날 우리 엄마가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그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키드민스터의 청교도 리처드 벡스터는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 대신 울어 주어야 할 불쌍한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어두움에 가득 찬 우리 가족들의 영혼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믿어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됩니다. 정말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셔서 우리 어머니의 맘을 녹이셔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돌 같은 마음을 깨뜨리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 홀로 우리 가족을 구원하지 않으시고 먼저 예수를 믿은 나를 사용하셔서 가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III. 가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하실 때 주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가족들에게 놀랍고 은혜로운 역사의 일들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A. 사랑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해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자신 있게 ‘어머니 예수 믿으세요, 아버지 구원 받으십시오’ 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도 만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족들과 마음으로 화해를 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나를 때리고 폭언으로 나를 짓밟은 아버지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으며, 젊어서 나를 버리고 바람난 엄마를 어떻게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때문에 어머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받은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면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영혼을 보면서 울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가장 순수해지는 때가 두 번 있는데,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와 하나님 모르는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릴 때 인간의 영혼이 가장 순수해지는 때입니다. 

B. 기도하라 

두 번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른 새벽 미명부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 깊은 밤도 기도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다가왔을 때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올렸고 남겨두고 가야하는 우리를 위해 땀이 피가 되어 흐르도록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공으로 되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혹시 우리가 살아있을 때 가족이 구원받지 못해도 우리가 죽어도 기도는 살아남아서 우리가 기도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것은 운명론자입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 복음을 전할 사람이 없다고 믿고 소명에 불타 영혼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C. 희생하라 

마지막 세 번째는 희생해야 합니다. 가족들은 원래 다른 가족들에게 인정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의 결점과 약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가 무엇입니까? 영생의 확신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가족들은 가소롭게 여깁니다. 가소롭게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는 영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것 중 하나가 이 복음이 참된 것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희생입니다. 

어버이날이 되었는데도 애들하고 놀러가느라고 전화 한 통 걸어서 ‘어머니 아버지 어버이날 축하해요.’ 그 말 한마디로 전화 끊는 자녀들이 담대하게 ‘엄마 아빠 사랑해요.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유산을 가지고 소송 중인 동생이 형한테 ‘형님 우리의 소망은 복음 밖에 없어.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아예 낯모르는 사람하고는 신앙 이야기를 재미있게 주고받아도 가족들이 모이면 신앙에 관해서는 입을 딱 닫습니다. 이것은 위선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도 집안에서 인정을 받지 않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봉사자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진실하게 변화된 혜택을 가족들이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희생입니다. 


IV. 결론 

희생해야 합니다. 그 잃어버린 영혼이 예수를 믿고 우리와 함께 복음의 빛 가운데 살면서 하늘 가족이 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하나님께로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나는 관계없습니다. 어느 날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고 우리 모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 가겠죠. 그때 주님이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네 가족들은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한번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모두 지옥에 있습니다. 저기 울부짖는 소리가 우리 가족들의 소리입니다.” 라고 말해야 할 때 거기가 어떻게 우리에게 천국일 수가 있습니까? 먼저 불쌍한 것은 하나님을 믿은 우리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버려졌던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의 불쌍한 영혼이 아닐까요? 

그럼 그 보다 더 불쌍한 것은 그렇게 불쌍한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줄도 모르고, 눈물 흘려줄지도 모르고 희생할 줄 몰랐던 더러운 우리의 영혼이 아니고 누가 불쌍한 영혼이겠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깊이 회개하고 여러분들의 가족을 가슴에 깊이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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