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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삶의 찬가 (시 92:1-15)

첨부 1


삶의 찬가 (시 92:1-15)
  
언젠가 ‘17세기 늙은 수녀의 기도’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읽을 때에는 ‘우리 지방에서 은퇴하시는 장로님들에게 권면의 말씀으로 들려주기에 적합하겠다...’ 해서 컴퓨터에 저장해놓았는데... 어느덧... 이게 내가 드려야할 기도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 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에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에는 친구가 몇 명 남아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제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 가고 있고 그것들에 대하여 위로 받고 싶은 마음들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저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어버이날이자 어버이주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십계명에서 우리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고 명하셨고, 이 말씀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성경의 구석구석에서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들이 부모님께 해야 할 도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엡6:1) 이렇게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은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가중 중요한 일이며,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는 일이 잘 되고 오래 사는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엡6:3)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마음으로부터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정성으로 부모님을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이 땅에서 여러분 모두가 잘 되고 오래 사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면서 평소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준비하여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누구나 어버이들입니다. 우리가 낳아서 기르는 자녀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오늘 어버이를 말할 때... 여기에 해당되는 분들은 나이가 많으시고,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늙어 가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나이가 많으신 분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 모두는 시간의 차이 뿐이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같은 날 자녀들로부터 얻는 기쁨은 참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혹은 예전만 못하게 몸과 마음이 늙어간다는 것... 이러한 피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하여 좀 더 건강한 태도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나이가 들수록 더 행복하고, 자녀들에게도 건강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는 ‘안식일에 부르는 찬송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아마도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낭송했던 시였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동체적인 찬송시가 되기 이전에는 아마도 어떤 한 개인이 고백한 찬양과 감사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이가 적지 않은 사람인 것이지요.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아.. 이 사람의 나이가 적지 않구나... 그는 꽤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경험이 참 많아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단순하게만 바라보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이 불공평하게 돌아가고 있고, 악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런 세상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14절에서는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늙음’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이 어떻게 늙어 갈 수 있는가? 또는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늙었을 때에 그는 어떤 느낌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이런 면에서 말씀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가 세상을 살면서 가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 세 가지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좋습니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기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새롭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참 좋은 말이 아닌가요? ‘좋습니다.’ ‘기쁩니다.’ ‘새롭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서 살 수 있다면... 삶이란 나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할까요? 그리고 이런 말들이 자주 오고가는 가정이란 얼마나 건강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늘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함께 말씀 가운데서 발견한 이 세 마디의 말들... ‘좋습니다.’ ‘기쁩니다.’ ‘새롭습니다.’를 아주 자주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말은 ‘좋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좋습니다.’라는 말은 오늘 말씀의 앞부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1절에도 좋습니다... 라는 말로 맺고 있고, 2절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3절 역시 좋습니다... 라는 말로 맺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생각해보면 ‘좋습니다.’라는 말은 우리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보면 ‘좋습니다.’ 또는 ‘좋다’는 말이 빈번하게 나온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장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다‘ 는 말이 마치 후렴구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욱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지으신 후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1:3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이 ‘좋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바로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면서 좋아하시던 그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던 그 마음을 담아서 '좋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좋아서 그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내면 깊은 것으로부터 우리나오는 좋은 마음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좋은 척 하는 그런 마음하고는 거리가 정말 먼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만드시고서 좋아하시는 그 마음... 그것은 정말 흡족하고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항상 그렇게 좋은 마음... 그것이 우리들이 가진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아주 흡족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게 하였을까요? 

v.1 ‘가장 높으신 하나님,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물론 여기에 노래와 감사라는 말이 나오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마음이라는 것은 지극히 천한 인간으로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삶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느끼게 될 때, 그 마음에는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좋은 마음... 진정한 만족함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지요. 
   
v.2 ‘아침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며, 밤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일이 좋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과 성실하심... 우리들 사람들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 한 말들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언제 어디서든지 변함이 없습니다. 한결 같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사랑과 성실이라는 말을 통해서 표현된 것이지요. 바로 이 분이 그가 경험한 하나님이시고... 그런 하나님을 아침과 저녁으로 사랑하는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v.3 ‘열 줄 현악기와 거문고를 타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이렇게도 자신의 좋은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가지게 되는 좋은 마음이라는 것이 단지 생각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거문고아 수금을 타면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노래하지 않고서는 그 좋은 마음이 표현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가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이유는 사랑과 성실로 자기를 대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지는 마음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그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이기에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는 참 만족스럽고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는 정말 좋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기쁩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v.4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손수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면서, 환성을 올립니다.’ 그는 참 기쁩니다. 얼마나 기쁜지 환성을 지를 정도로... 그렇게 기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환성을 지르면서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는지요? 그런 기쁨이 우리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그는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게 된 것...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치고 나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서... 아마 이것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잘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었습니다. v. 7에서 그가 고백하는 것처럼 한동안 그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악인들이 풀처럼 돋아나고, 사악한 자들이 꽃처럼 피어나더라도...’ 이것이 그가 사는 세상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틀림없이 악한 사람인데... 사악한 일만을 꾸미며 사는 사람인데... 아주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비가 온 후에 풀이 자라는 것과 같았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좀 아신다면...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더 잘되고 큰소리를 치면서 살 수 있을까? 답답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런 그가 가진 답답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풀이나 꽃이 쉽게 지고 시들어 버리듯... 그렇게 그들이 망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히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v.7-8)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사람의 마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죄도 없으신 분이 사악한 사람들의 흉계와 폭력에 의하여 저렇게 희생을 당하실 수가 있는 것일까? 모두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분개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예수의 부활은 이런 모두의 슬픔과 아픔을 벅찬 기쁨과 감동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기쁩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이렇게 고백할 수만 있다면... 그런 삶은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일까요? 그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가 다시 살아오시듯... 그런 기쁨... 너무 기쁘고 좋아서 저절로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그런 기쁨... 그런 기쁨은 하나님께서만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에 주님께서 이루신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입니까?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주님, 기쁩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생각할 때마다 기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롭습니다.’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v.10 ‘그러나 주님은 나를 들소처럼 강하게 만드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어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그가 경험하게 되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한 때 마치 들에서 올라오는 풀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기세를 떨치고 올라오는 것들이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다 시들고 쇠잔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질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시인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겠지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늙고 쇠퇴해 가는 것... 그것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이 주시는 강건함과 신선함입니다. ‘그러나... 주님은...’(v.8) 이렇게 시작합니다. 일종의 반전인 것이지요. 주님에게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신비함이 있는 것이지요. ‘나를 들소처럼 강하게 만드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어 새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신선한 기름을 내게 부어 주셔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신다.’는 대목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신선한 기름을 부어주신다는 것... 이것은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주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기름을 붓는 다는 것 속에는 ‘나를 너를 특별한 사람으로 선택하였다...’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은 그가 자기에게 특별한 존재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머리에 기름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머리에 신선한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여겨주신다는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신선한 기름을 부어 주시면서 ‘너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도 시편 23에서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시23:5)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새롭게 볼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어주심!’
   
그 이전까지는 자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껏 피었다가 곧 시들어 버리는 꽃이나, 아니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잡초와 같은 존재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은 자신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게 하여 줍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이다...’(v.12)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입니까?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는 자기도 별 수 없이 곧 시들어 버리는 풀이나 꽃처럼 생각하였는데... 이제 그는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 것이지요. 아... 나는 종려나무처럼 더욱 뻗어 나가는 그런 존재이구나... 아는 나는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아주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게 되고 고귀한 향내를 풍기는 존재로구나... 이렇게 자신을 바라 볼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v.14) 얼마나 활기에 찬 모습입니까? 여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할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바울의 말처럼(고후5:17) 그의 삶은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생기로 가득합니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새로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새롭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선한 기름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기에... 우리는 새로움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에 머물러 있을 때에 우리는 늘 생기로 충만하고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으니,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다.’(v.13)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집에서 뿌리를 내릴 때에, 또는 하나님의 집에 심겨졌을 때...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 항상 머물러 있을 때... 바로 그것이 우리가 늘 새롭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말씀이지요. 

오늘 우리는 참 간단한 말이지만, 쉽게 할 수 없는... 하지만, 우리가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와서 그렇게 말할 때에 우리를 참 행복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말... 그런 세 마디 말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습니다.’ ‘기쁩니다.’ ‘새롭습니다.’ 늘 이 말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서 다가오는 느낌은 다릅니다. 같은 위로니 칭찬이나 격려의 말이라도 거기에 묵직한 연륜과 진정한 사랑과 확신이 배어 있다면... 그것은 아주 큰 힘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특별히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나이가 드신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 자녀들과 함께 있으면서 믿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이 말들을 많이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가정들마다 ‘좋습니다.’ ‘기쁩니다.’ ‘새롭습니다.’ 이런 말들이 거듭해서 들려온다면... 그 가정은 정말 행복하고 건강함으로 가득한 가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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