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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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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바울사도가 에베소교회에 들렸을 떄에 에베소교인들은 신실하고 정직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는 여전히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회개에 이르게 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강조하여 고상한 인격생활을 유지하려고 힘쓰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인들은 전반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정직은 하였으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느끼게 하는그런 영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방문하자 마자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이런 영적 상태를 알아차렸습니다. 

에베소교인들은 열정과 뜨거움과 감사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행복을 잃어버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방문해 보고서 처음 느낀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요한의 회개의 세례에 머물러 있으므로 인해서 그들의 신앙이 도덕생활, 금욕생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무감과 책임감에 짖눌려 있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생활은 금욕도 말하고 검소를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도덕과 윤리를 말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아닙니다. 계명과 율법을 말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닌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도덕생활 그 이상이어야 하고 금욕을 실천하는 생활 그 이상으로 윤택함이 있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끝없는 회개만 있고 끝없는 도덕생활만이 요구된다고 하면 얼마나 지치고 무미하고 건조하고 재미가 없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앙의 실체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껍데기에 불과하며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많은 열매중에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부가 아닌란 말입니다. 
  
이것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충만을 받고 성령의 임재와 도우심으로 우리의 전 인격이 윤택한 즐거움과 참 만족함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신앙생활을 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도덕생활과 금욕생활까지 즐겁게 해낼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역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 도착하여 처음 만난 12명 가량의 예수 믿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질문되어져야 할 말씀입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진단했을 때 모든 것이 다 잘 갖추어져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한 가지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성전도 있고, 에배도 있고, 기도와 찬송도 있고 구제와 봉사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마른 뼈와 같이 생기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신나보이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좀 신바람이 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신들린 것처럼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주일이 기다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맥이 빠져있었고 신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디는 "만일 당신이 성령에 의해서 거듭난 사람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을 억지로 섬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움이 되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 거듭날 때,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을 때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휼륭해도 성령이 없으면 힘이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자원할 심령이 없습니다. 성령이 계셔야 합니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끈임없이 부흥이 계속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하셨습니다.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의 힘 가지고 아무리 애쓰고 몸부림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믿는 자에게 허락하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요 "위로부터 믿는 자에게 능력으로 입히울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예수 믿고 중생한 믿음생활만 가지고는 만족스러운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은 믿는 자에게 "능력으로, 큰 확신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의 질문에 대답하는 에베소교인들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이 있음도 들어보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들이 가르침 받는 것은 세례요한의 세례였고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교인들은 세례요한의 가르침 그의 교훈은 "나에게서 머물지 말고 나를 넘어서 예수에게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예수의 세례, 불로 주는 성령의 세례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에베소교인들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여전히 세례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고 그것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성령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빈곤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약속, 축복들을 누릴 수 있는데도 생각만하고 누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에게는 부어주시는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행 2:13에는 초대교회의 성령 받은 자들을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술에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말 그대로 새술에 기분이 좋게 취한 상태를 유지하며 항상 영적 희열과 열정의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토저(A.W.토저)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열정 속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룩한 열정이 충만한 상황에서 그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신앙체험의 길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심오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훨씬 심오합니다. 앓은 물 가에서 서성거리고만 있는 성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넓은 곳으로 더 심오한 것으로 나아가려고 힘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가르침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그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성령을 들어보지도 못한 에베소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성령을 말씀하였고, 듣고 믿는 자에게 세례를 배풀고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했습니다. 
그리해서 에베소교회가 처음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채워지는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답답해하는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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