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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상 (행 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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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행 10:9-16)

베드로는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은 비전입니다. 현실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환상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게 하는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환상에서 나옵니다. 환상을 보면서 상상력이 발동하고 꿈을 향해 발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베드로가 정오 점심시간쯤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더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 네 발 달린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파충류와 공중에 나르는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이것이 환상 중에 들려온 음성입니다.  

  
󰊱 선교적 명령이다

베드로아 일어나 잡아먹어라!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선교적 명령입니다.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하는 일은 구지 명령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을 명령합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꼭 해야할 일을 명령합니다.
  
바울이 말씀에 사로잡혀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 환상가운데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도 너를 해롭게 할 자가 없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행18:9-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종들을 격려하시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잡아먹어라 하셨지만,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두 번째 소리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마침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가 묵고 있는 집을 찾아 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환상을 곰곰이 생각하고있는데 성령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세 사람이 너를 찾아왔다. 일어나 내려가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이니 의심말고 따라가라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가보니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고제 하는 것이 위법인줄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니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다”(행10:28-29) 
  
나폴레옹은 우수한 장교를 추천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운이 있더냐?”고 물었답니다. 그리고 평소 “난 항상 운이 좋아”라는 말을 잘했다고 합니다.  
  
한자로 ‘옮길 운(運)자’는 군사 군(軍), 책받침변(辶) 입니다. 이 글자의 의미는 “움직이다 운전하다. 운용하다.”라는 뜻입니다. 운이 따르는 사람이란 자기 힘이 아닌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센 물결이 군대를 움직인다는 뜻으로도 해석하기도 합니다. 운 좋은 사람이란 높은 곳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센 물결의 힘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이 있다 하고, 우리는 환상이 있다고 합니다. 환상은 하늘로부터 오는 비전과 능력입니다. 환상의 사람은 하늘 군대의 도움을 받는 사람입니다. 즉 성령의 사람입니다.   

  
󰊲 문화적 명령이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는 환상은 문화적 명령입니다. 
  
그때 베드로에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베드로는 “주님, 그렇게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짐승들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식생활 문화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식사 관습은 엄격합니다. 먹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의 구분이 확실합니다.  
  
그들의 음식문화는 레위기 11장에 근거합니다. 짐승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을 하는 소는 먹을 수 있습니다.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은 약대는 먹지 못합니다.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해서 먹을 수 없습니다. 잡아먹을 수 있는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해야 합니다. 
  
물고기도 닥치는 대로 잡아먹지 못합니다.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장어는 비늘이 없어 먹지 못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나누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유대인입니다. 보자기 같은 그릇에 담긴 환상으로 보여주신 짐승은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음식 문화는 철저합니다. 진정한 유대인은 결코 부정한 동물을 먹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베드로에게 깨끗지 않은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말씀은 수용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 뜻을 꺾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의 혼란을 잠재우고 통일 시대를 열었던 오다 노브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 버리겠다.”고 했던 인물입니다. 
  
타성에 젖어 낡았거나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제도나 관습은 가차없이 제거하는 혁신주의자였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경멸하는 이유 중 하나가 깨끗지 않은 것을 먹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방인과 교제할 수 없게 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만일 어떤 유대인이 이방인의 음식을 먹게 되면 부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의 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대인문화 전통에 뿌리 박힌 베드로가 이방세계로 진출한 것은 기독교가 세계화하는 전기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보았던 환상이 경계를 뛰어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먹어라! 명령하신 것은 문화의 경계를 뛰어 넘으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미국 선교사님들이 조선시대 한국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면서 문화적인 차이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선교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중심으로 선교사 지침서를 만들었는데 재미있습니다.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 남의 집에 가면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라. 방에 들어가서는 윗목에 앉으라. 그런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면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조선시대 한국 문화는 그랬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남의 집에 가서 아랫목에 앉는 것은 상식 없는 짓입니다.  
  
유교문화 전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이 땅에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 사람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애원했습니다(행16:9-10). 바울이 그 환상을 본 후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써 거기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환상은 유럽 선교의 단초가 되어 경제 선진국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몸을 던졌습니다. 

  
󰊳 은혜의 명령이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이것은 은혜의 명령입니다. 율법적으로는 안되는 일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은혜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롬14:20)
  
주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폐지 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인종도 폐하고 제도나 계급도 폐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구별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편견은 무너졌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12)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하나님이 옳다 하셨는데 사람이 옳지 않다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은혜를 이해합니다. 은혜 받는 것도 일종의 모험입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자기 편견으로 되니 안되니 하는 것은 율법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은혜에 도전해야합니다. 
  
북한 청소년들 지력이 남한 청소년에 못 미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한 결과 체력도 떨어지고 지력도 저하 된 것입니다. 
  
빌게이츠는 자신의 성공비결은 “열정을 갖고 남보다 한 발 빨리 움직인 실행력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일등도 성취도 해본 사람이 합니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되는 일은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과를 내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전도는 구호나 외친다고 되는 것아 아닙니다. 실패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입으로만 외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공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구호형이 아니라 실천형,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입니다. 환상이 있는 사람은 동사형, 실천형입니다. 그들은 실천 중심적입니다. 묵묵히 실천합니다. 그들은 소명 의식이 있습니다. 이 일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이 일을 위해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이는 은혜의 명령입니다. 사자도 배가 고파야 사냥에 나서고 사냥 성공률도 배고픔에 비례됩니다. 새로운 은혜에 도전해야 합니다. 
부싯돌도 부딪쳐야 불꽃이 일어납니다. 문제에 부딪치며 역경에 부딪치면서 길을 찾게 됩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환상 중에 주신 명령입니다. 환상은 생동력이 있습니다.  환상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갑니다. 헌신하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환상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원입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거기서 보여주는 가수는 열정으로 노래합니다. 핏대를 올려 핏줄이 터지게 목이 터져라 노래합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열정에 감동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다녀온 후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 보고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여주신 환상과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본 은혜를 보고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11:17) 하는 말로 “잡아 먹어라!” 하신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가수는 “나는 가수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나는 전도자다!” 합시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이 환상은 선교적 명령입니다. 문화적 명령입니다. 은혜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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