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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의 선물 (고전 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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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선물(고린도전서 12:1-11)

저는 1977년도에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학번을 물으면 감신 77학번이라고 대답을 하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저를 다시금 쳐다보고는 합니다. 동기들 중에서 유명하고 잘나가는 목사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 동안 서울 장안에서 역사가 깊고 유명한 교회들이 담임자를 청빙할 때, 저희 동기들 중에서 뽑혀서 간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고, 지금도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77학번하면 꽤나 실력 있고, 잘 나가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사상이라는 잡지에서 기획특집으로 우리나라의 유명한 설교가들을 소개하고, 전문가들이 그들을 평가하는 시도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거기에 이름이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영광된 일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설교를 잘한다고 전문가들이 인정한 목사도 감신 77학번인 목사였습니다. 이렇게 저희신학교 동기들 중에서 잘 나가는 목사들이 꽤나 여럿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오늘 제가 잠시 언급하려고 하는 친구는 사실은 잘 나가는 목사는 아닙니다. 잘 나가기는커녕 지금도 아주 작은 교회를 맡아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같은 반을 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감신에 입학을 하고 나서부터였는데, 외모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운 스타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나 붙잡으면 꾸준히 행하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우리 교회에서 25년하고 6개월째 목회를 하고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 중에서 다시 쳐다보기도 하는데, 그 친구는 저보다 몇 년 전부터 한 교회를 섬기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를 만나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장애인들이 출석하는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달변가는 아니지만... 저는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는데, 마침 우리 반에 전도하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찍힌 것이지요.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으니까 그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도 나는 네가 예수를 믿도록 기도할거야...’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는 것이고... 그 때부터 슬금슬금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 것인지... 그 친구를 통해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한 번은 저에게 대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너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편하게 해주는 힘이 있어...’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제까지 제 자신이 그런 줄을 몰랐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저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것... 위로해 주는 것...’ (여러분은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그게 나의 은사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자주 만나서 식사도 하고... 그런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웬만해서는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러다가 만나면 또 굉장히 친한 것처럼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 주님이 약속하셨던 성령이 임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 그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약 120명쯤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면서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오순절이 되었을 때, 갑자기 그들이 모인 곳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뜨거운 불길이 갈라져서 각 사람에게 내리는 모습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하게 되는... 새로운 언어로 그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임하셨던 성령이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모든 시련이나 어려움과 싸우면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였던 근본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오순절에 임하셔서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던 성령님이 오늘 우리들 가운데도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면서 좀 진지하게 성령의 임재하심과 하시는 일에 대하여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성령은 정말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것처럼... 세찬 바람이나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만 임하시는 것일까? 오순절에 임하셨던 성령의 현상이 하도 인상적이고 강렬하여서 우리는 성령님을 말하자면 항상 놀랍고 충격적인 모습으로 임하시는 성령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감리교를 시작하신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돌이켜보면... 그 회심은 무엇인가 자기의 내면에 변화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 변화의 증거는 자기의 마음이 따스해지는 현상으로 감지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과 같은 그런 뜨거움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그냥 가슴이 약간 따스해지는 경험이었다고 웨슬리 목사님은 표현하셨는데... 그것이 가진 영향력은 대단하여서 2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오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지나치고 있는... 성령님의 다른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모두가 알 수 있는 마치 토네이도 같은 세차게 불어 닥치는 바람이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서 누구나 금방알 수 있는 그런 성령님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밋밋해서...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는 성령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 이미 우리가 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임재하심임을 모르게 되는 그런 경우를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껏 사람들에 의해서 잘 이야기 되지 않던 성령님의 다른 모습을 고린도 교회를 향한 편지 가운데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바울이 왜 이런 이야기를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신약성경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교회들 중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면... 바로 고린도교회가 아닐까 합니다. 바람 잘 날이 없다고...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분열되어 있고... 개인주의적이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무엇보다도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이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고전1:5) 말 잘하고 아는 것이 많은 교인들... 어쩌면 이것이 바울이 보았던 그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고전1:7) 바울은 이렇게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넘치도록 채워진 교회... 이게 바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고... 모든 면에서 은사가 넘치고 있으니... 웬만한 사람은 입도 열수 없는 것이지요... 아마 그렇게 된다면... 너는 그 것밖에는 알지 못하냐? 너는 겨우 그것 밖에는 하지 못하냐? 그렇게 하고도 은혜를 받았다고 하냐? 아마 이런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 한국교회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요즘 별로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지를 않다가 가끔 그런 자리에 가보면... 항상 앞장 서서 말하는 사람들은 이른 바 대형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입니다. 뭐 그리 자랑할 것이 많고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은지...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들 교회를 통해서만 일하시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자기들 교회에만 임재하시는 것처럼... 그런 식입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 말한 번 잘못 꺼내면... 눈치 없는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맙니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이런 방법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는 방법일까요? 어쩌면 오늘 바울은 마음먹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만이 성령을 경험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풍조에 대하여 바울은 성령님께 대하여 이제껏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령님은 아주 특별한 신앙적인 경험을 하였다든지,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나사렛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더 나아가서 나사렛 예수가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아주 평범하게 표현해서... 나사렛 예수는 비록 2000년 전에 살았던 분이시지만, 그분은 나의 인생에 아주 특별한 분이시라는... 나는 지금도 나사렛 예수에 의해서 영향 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임하여 계시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3절)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이해하고 또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가 대단한 능력을 행할 수는 없어도... 그리고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지식은 가지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예수가 나의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성령의 영향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면... 그 동기가 어떻든지 간에 이미 그 사람은 성령이 그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를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성령강림절을 준비하며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지난 주일에 강화에서 있었던 성암축제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감사하고 감격스런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곳의 경치가 참 좋기도 하였지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우리를 기쁘게 하고 감동을 준 것은 함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몸이 편치 않아서 힘든 하루였을 텐데... 그래도 함께 하신 분들도 있었고... 평소에는 잘 참여하지 못하다가 몇 년 만에 그런 자리를 찾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바빠서 곧 돌아가야 하는데도... 거기까지 왔다가 잠시 동안 밖에는 머무르지를 못하고 다시 먼 길을 돌아간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생각하면서 무엇이 우리를 그곳에 모이게 하였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모임은 결국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그리고 우리들이 섬기는 성암교회 공동체를 움직이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물론 어떤 때에는 아주 자극적이고 요란스럽게 우리에게 찾아오시기도 하고, 우리를 깨우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에 조용히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위로와 희망을 얻게 하시고... 그를 높이고 찬양하며 예배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나는 지금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고, 영향을 끼치실 때... 물론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을 지향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현실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였는데... 성령을 통해서 얻어지는 아름답고 고상한 아홉 가지의 품성을 열거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 열매라고 하는 말과 견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은사라고 하는 말입니다. 은사라는 말에는 ‘값  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바울은 은사에 대해서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말씀드렸던 것처럼 모든 은사가 부족함이 없이 나타난 공동체였습니다.(고전1:7) 하지만, 그들은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에 대하여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을까? 그 목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부합할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서로가 받은 은사를 비교하면서 자기가 받은 은사가 더 좋은 것이라고... 진짜라고 자랑하면서 다녔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방언을 하게 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습니다. 12장부터 14장가지 이르는 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이런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은사는 다양하다는 것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8절에서부터 10절까지를 통해서 바울은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려 하는 것은 은사가 가지는 다양한 모습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바울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은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은사를 내리시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것이지 결커 자기의 은사를 자랑하거나 남과 비교하면서 교만한 생각을 가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7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은사는 우리가 달라고 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가 원하시는 대로 내려 주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11절) 저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대목이 우리가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내려 주시는 은사에 대하여 중요한 깨달음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갑자기 은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은사라는 단어가 실감이 나십니까? 그런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 나는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야...’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은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이야기하고... 은사를 말하면 나는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과 같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이 받고 싶은 은사가 있는지요? 나도 그 사람처럼 하고 싶어... 기도를 유창하게 잘하시는 분이 있다면... 찬양을 아주 잘하는 분을 보면... 그런 것을 닮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 제게도 이런 은사를 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은사를 내려주실까요? 물론 은사를 내려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은사를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은사에 대하여 생각하고 할 일은 어떤 것일까요? 아무개 집사가 가진 은사를 제게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끝장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요?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과 성령님께서 생각하시는 은사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내가 성령님께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어떤 은사도 내게 주시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내게 이런 은사를 주십시오?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제게 주신 은사가 어떤 것인지...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게 바로 우리가 은사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합당한 태도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야기의 서두에 제가 오랫동안 알고 있는... 성품이 아주 조용하고 차분해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통찰력이 있는 한 친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본문을 묵상하면서 자꾸만 그 친구가 생각났었습니다. 특별히 그 친구가 가진 개성이 마치 인격을 입고 제 곁에 머물고 있는 성령님처럼 생각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둔해서 느끼지 못하였을 뿐이지... 성령님은 항상 제 곁에서 저를 지켜보아주시며, 어렵고 힘들 때마다 힘을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는 것을 그 친구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그 친구가 제게 대해서 해 주었던 말... ‘너에게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위로해 주는 힘이 있어...’ 처음에는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거니... 여겼지만... 몇 번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 이게 바로 그동안 내가 찾지 못하던 성령님께서 주신 소중한 은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이렇게 고백을 하면... 그게 무슨 은사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고린도 교인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그렇지를 못했거든요... 그리고 이것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원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까... 저는 참 멋진 은사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서 많이 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처럼 좋은 순간도 없습니다. 어느 날 문득... 성령님께서 나에게 주신 아름답고 소중한 은사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기쁘게 주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 
   
이러한 발견은 그런 믿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주님은 내게 이미 어떤 남다른 은사를 주셨을 거야... 내가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할 뿐이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차분히 자신을 살핀다면... 우리는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서... 또는 성령님께서 우리 주변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을 통하여서 내가 이미 가진 아름답고 반짝 반짝 빛나는 소중한 은사를 알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다시 말하면 교회와 성도들과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주신다는 것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 생각하였던 것처럼... 절대로 나를 과시하거나 치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위한 목적도 아닙니다. 단지 주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은사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추어진 아름다운 부분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는 일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게 그런 친구가 없었다면... 저는 삶에 이어서 중요한 부분을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이렇게 한 교회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서로가 삶을 나누며 주님을 섬기도록 한 데에는 그런 주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아름다움과 장점을 말해주도록 하는 것... 그래서 아직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은사를 찾아주는 것... 이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입니다. 
 
성령님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아주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우리를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시는 힘으로 지금도 우리 가운데 머물러 계십니다. 
   
성령님은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게 되며...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기쁨으로 살도록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며 나에게 꼭 맞는 은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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