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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으로 사십시오 (갈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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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사십시오 (갈 5:16-26)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외치신 성령충만한 생활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청년인 예수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독생 성자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로 우리의 생각이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성령이 임재한 사람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면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적인 견해를 정립하신 분입니다. 롬8:9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만 신령한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12:3에서도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고전12:3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확정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받은 사람들입니다.

고전12:13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성령의 부어주심을 받아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성령을 마신 사람들입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거듭남은 성령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요3:5 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죄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이렇게 누구나 다 내주하시고 임재하시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그 후에 성령을 주시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있습니까?  

갈4:6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롬8:14-15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이런 말씀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누구나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는데, 성령을 소유하였다거나, 성령-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고 하셨습니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모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이 우리 영과 더불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성령을 따라 살아라,  성령의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먼저 16절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분류해보면 대개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연인, 육체를 따르는 사람,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개 양심의 지도를 받고, 본능을 따라 살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지성의 인도를 받고, 자기가 살아온 경험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성 주도형의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있어 가치를 판단하고, 추리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의 사람은 예수를 믿으나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풍성한 생명을 누리면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육체를 따라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욕심에 매이고, 정욕에 매여서 자연인처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아직도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옛 사람에 매여 있습니다. 

세 번째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입술로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령이 지시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 번째의 사람처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이제는 충만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따르고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이 땅보다 더 두터운 것을 절감합니다.   육체의 욕심은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정욕을 내려놓고 모든 탐욕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싶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도 거스르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육체의 욕심이 한번 발동하면 성령을 거스르고 대적합니다.   성령이 온전히 우리 안에서 주인이 되시고, 왕으로 통치하시고 나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위탁하여야 합니다.  

마가복음8:34에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을 좇아 행하면 기쁜 마음으로 옛 사람의 육체를 죽일 수 있고, 육체의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를 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은 내 안에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무엇을 해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성령, 성령 하지 말고, 온전히 성령님에게 우리의 모든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가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가만히 계시고 내가 무엇을 해보겠다고 하면, 그는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도 좌충우돌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요한 칼빈 선생님은 개혁교회를 이루신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입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하시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된 자는 이미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마음이 간절하다. 그는 자기의 사욕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일은 참으로 현저합니다.   여기서 육체란 하나님과 원수된 부패성을 의미합니다. 19-21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데, 육체의 일에 매어 있어 하나님의 나라로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일들만 골라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지, 성령 받았다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사사시대와 같습니다.    자기만 좋으면 할 말 다하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할 말을 다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적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으며 성령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행동해야, 그 다음에도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성령께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성령님이 우리를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복음주의 지성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실 때에는 성령님과 동사하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순간,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오늘, 이 순간도 성령님의 인도함을 사모합니다.  주님이시라면 오늘 저를 통하여 무엇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시라면, 주님이 결정하시면 저는 따르겠습니다. 성령으로 인도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갈 생각이 없었는데, 교회에 도착해보면 사무실에 아주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찾아와 소중한 상담을 하고 갑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하시려는 일에 순종한 것으로 감사하고,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할 때에 더 큰 일에 쓰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손해 보는 법이 없습니다.  다 유익하게 하십니다.  언제나 승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성령과 동사하였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러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금식하러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셨고, 성령님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치유와 이적의 사건은 성령님의 역사였으며, 성령의 임재와 무관한 예수님의 사역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베드로 사도의 사역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역사가 따랐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사도베드로의 외침은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성령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행2:38-39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전도로 세워진 모든 교회도 성령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가 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행9:31에서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성령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 성령의 위로가 넘쳐야 교회가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위로가 넘치는 교회여야 풍성한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 은혜받고 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다 “말씀”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지만, 그리스어에는 하나님을 말씀을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고스입니다.   이것은 문자화된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레마”라고 하여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로고스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의 말씀이 어느 날에는 문자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강하게 들려오고 아주 큰 글자로 읽혀집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 활동하는 말씀이 레마요, 그 말씀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나를 재촉하시는 말씀, 불 같이 뜨겁게 다가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보았던 말씀이었는데, 내 눈에 강하게 들어오는 말씀입니다.  그냥 들리던 말씀이었는데 내 귀에 박히듯 분명하게 들어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는 오늘 이곳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지고 선포되고 있습니다. 

살전1:5입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 따라야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의 영과 육과 혼을 다 열어놓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때에,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하실 일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전 삶을 성령님이 기름 부어지는 것을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개끗하게 청소하는 일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입었습니다.   정결하게 씻어 깨끗한 영과 육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성령은 온전히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까?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열매의 또 하나는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날마다 죽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완전히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날마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라는 책을 쓰신 찰스 스탠리는 미국남침례교단의 총회장을 두 번이나 지낸 애틀랜타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의 목사입니다.  그 책에서 “과연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가?”에서 지금도 성령으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있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의 영에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찰스 스탠리 목사님은 교회에서 땅을 사기 위해 땅 주인을 만나 계약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그 날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시편77:13-14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은 곧 그 날 하나님이 스탠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땅 주인과 대화하는 중에 그가 먼저 말을 했습니다.    “이 땅을 구입하는데 얼마나 예산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 때 성령께서 “대답하지 말라”고 목사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스탠리 목사님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 주인은 계속 말했지만, 목사님은 한 말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 값을 제안하였고, 그 가격이 적당하였기에 목사님은 동의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매우 선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쳐주셨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귀로 듣는 것만이 음성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에게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실 때도 많습니다.  

슥4:6에는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힘으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성령의 사람으로 사십시오.  성령으로 살아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서툴고 힘들어도 한 걸음 또 한걸음 걷다보면 우리의 모든 날에 성령을 따르게 되고, 그 성령의 충만은 그의 일생을 성공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따라 행하고 성령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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