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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쟁 (창 30:1-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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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창 30:1-8, 22-24)

현대 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은 동물 왕국 비디오를 즐겨봤다고 합니다. 충남 태안, 현대 서산 농장에 가면 아담한 단층 건물이 있는데, 정회장이 서산 간척지 공사가 시작되던 1979년부터 2001년까지 살던 집입니다. 그 집에는 정회장이 사용하던 유품들이 놓여 있는데, 닳고닳은 운동화와 부인이 사용하던 재봉틀 같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유품은 동물의 왕국 비디오 테이프입니다. 
그 분은 왜 동물의 왕국을 즐겨 보았을까?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는 놈과 잡아먹기 위해서 뛰는 동물의 세계에서 경쟁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배웠을 것입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고 했습니다. 내가 라헬의 별명을 짓는 다면 “경쟁”이라 하겠습니다. 

󰊱 경쟁은 본능이다. 

라헬의 경쟁심은 본능적입니다. 본능이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감정이나 충동입니다. 이성이나 사고에 앞서가는 감정적 행위입니다. 
  
무조건 이기고 싶은 승부근성이 동물의 본능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디슨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지나친 경쟁심에 사로잡힌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들이 볼 때 아버지가 이룬 성공의 열쇠는 경쟁심이었다고 본 것입니다. 
  
경쟁심은 사람을 발전시킵니다. 경쟁심은 훌륭한 재산입니다. 더 잘하려고 애쓰면서 목표에 도달하고 향상됩니다. 경쟁자가 없으면 효율도 떨어집니다. 경쟁은 분발하게 하고 에너지를 방출시켜 최고의 효과를 얻도록 자극합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자매를 아내로 삼고 살았습니다. 언니인 레아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동생 라헬은 불임입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습니다”(창29:31) 

레아는 네 아들을 낳는 동안 라헬은 한번도 임신한 일이 없습니다. 
여기서 시기와 경쟁 관계가 발생합니다. 차라리 언니 없이 자기 혼자서 아내였든지 언니도 불임이었다면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1절)
  
도자기 장사는 도자기 장사를 시기하고 거지는 거지를 시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매 사이는 자매 서로 시기합니다. 언니가 누리는 여인의 행복을 못 견딥니다. 언니가 누리는 행복이 배가 아픈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겪는 불행이나 괴로움에 대하여 기쁨을 느낀답니다. 왜 그럴까? 그 속에 시기심 때문입니다. 라헬의 시기는 숙녀의 모습을 망가뜨립니다. 그녀의 언행은 광란입니다. 
  
경쟁은 나쁜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경쟁이 만들어 내는 비참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경쟁은 자연의 본능입니다. 둥우리에 있는 새 새끼는 두 마리이기 때문에 서로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서 야성이 길러지고 경쟁하면서 성장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강한 생존력이 길러집니다. 
  
여성에게 출산은 본능입니다. 다말은 남편 없는 과부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를 창녀처럼 변장하고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쌍둥이를 임신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창38장). 다말이라는 여인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있습니다(마1:3). 다말의 아들 베레스는 다윗의 조상이 되었고 세라는 유다지파의 유명한 집안을 이루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자식이 없으면 나는 죽은 여자라는 것입니다. 옛날 유대 속담에 “자식이 없음은 생명이 없음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출산의 본능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 대리모로 빌하를 쓰다.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내 남편을 딴 여자와 동침하게 하다니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는 미쳤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라헬은 자기의 여종 빌하를 대리모로 이용합니다.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며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4-5절) 
  
라헬은 빌하와 남편을 동침하게 하여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하고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습니다(6절). 라헬은 아들을 달라고 호소했고, 하나님이 그의 호소를 들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의 불임부부들이 인도 여성을 대리모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한해동안 인도에서 1천건 이상의 대리모 출산이 이루어졌고 올해에도 1천 5백건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인도 여성이 가정부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이 20달러라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2만 3천 원입니다. 대리모 한번 하면 2천 달러, 230만원입니다.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대리모로 내놓는다고 합니다. 가난이 죄라는 말이 실감나는 이야기입니다. 

라헬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정자만 받아서 주입하는 인공수정이 아닙니다. 자기 남편을 다른 여자와 동침하게 하는 겁니다.
  
자식욕은 생명의 본능입니다. 본능적 욕망이 생명을 낳습니다. 욕망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손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참된 욕구가 없으면 참된 만족도 없습니다. 몸종을 첩으로 들여 아들을 낳는 일은 당시 용인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이 낳기를 싫어하면서부터 국가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 출산으로 인한 노동인력의 감소는 곧 국가 경제의 하락을 초래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영적자녀를 잉태하고 잉태된 아기를 낳는 곳입니다. 나로 아이를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라헬 같은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낳을 수 없으면 대리모라도 낳게 하려는 거룩한 욕망의 불꽃이 있어야 합니다. 불꽃이 없다는 것은 불이 꺼졌다는 말입니다. 불을 붙여야 합니다. 
  
라헬은 빌하의 몸을 통해 두 번째 아들을 얻었습니다.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그 이름을 에셀이라 하였더라”(12,13절)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는데 라헬의 이런 경쟁심이 없었다면 열두 아들을 둘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라헬의 본능주의를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승부욕, 지고는 못사는 성격을 통해 장차 세워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계획하셨습니다.

  
󰊳 남편을 주고 합환채를 사다.

승부를 다투는 경쟁의 세계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경쟁이 아무리 비정하다 하더라도 경쟁이 없는 세상은 발전이 없습니다. 
  
경쟁자체가 악덕일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방법이 문제일 것입니다. 잘못된 경쟁이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경쟁을 하면 영웅이 되고 박수를 받습니다.
  
라헬은 본능적으로 자식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밀을 수확할 무렵입니다. 언니인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합환채를 발견하고 자기 어머니에게로 갖고 왔습니다. 라헬이 그것을 알고 레아에게 말합니다. “언니 아들이 가져온 합환채를 나한테 넘겨 달라” 그 말을 들은 레아가 내 남편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부족하냐? 이제는 내 아들이 구해온 합환채까지 차지하려느냐? 라헬이 레아에게 말하기를 “합환채를 내게 주면 오늘밤 남편과 자도록 할께” 라헬은 남편을 내주고 합환채를 샀습니다(14-15절).
  
합환채가 뭐길래 남편을 내주면서 가지려 할까? 합환채는 임신촉진제입니다.  
라헬은 임신하고 싶어서 합환채를 약재로 쓰기 위해 남편을 내주면서 합환채를 받은 것입니다. 합환채를 받고 남편을 언니에게 건넸습니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어서 들어오니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합니다. 내게로 들어 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다하고 그 밤에 야곱이 레아와 동침했습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았고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이름을 잇사갈이라 지었습니다. 또 다시 임신하여 여섯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셨다하며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이름을 스블론이라 하였습니다(19-20절).
  
합환채를 주고받으면서 레아는 두 아들과 한 딸을 낳았습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합환채를 먹고 나서 라헬이 임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 하시기를 원하노라”(22-23절) 

요셉의 이름이 “다른 아들을 더”라는 뜻입니다. 소원대로 또 다른 아들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여러분은 라헬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기 싫어하는 성격, 언제나 경쟁하는 사람으로 싫어하시나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라헬은 신사고 현대 여성상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들을 낳아 아내의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와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임신 가능하게 하는 약초를 먹고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인행의 승리요 자기실현의 모델입니다.
  
교회가 영적 자녀를 얻기 위한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라헬 같은 열정이 필요합니다. 물불을 안 가리고 오직 아들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인의 본능 같은 그 영성이 우리 교회에 필요합니다.

경쟁은 인생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괴테는 “나도 인간이다. 내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경쟁하는 자라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경마장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경쟁의 스릴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주영씨가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 것은 동물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과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야생 동물의 경쟁을 보며 즐긴 것 아니겠습니까? 
  
성공이란 제대로 된 경쟁의 결과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를 경쟁의 자리에 올려놓고 경쟁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박지성 선수는 “경쟁이란 축구화를 벗을 때까지 짊어지는 짐”이라고 했습니다.  
  
라헬은 언니와 경쟁하다가 나중에는 자기와 경쟁했습니다. 임신할 수 없는 자기 몸을 합환채로 고쳤습니다. 라헬은 자녀에 대한 욕망은 대리모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것으로도 양이 차지 않아 합환채를 먹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낳은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기쁨이요, 축복의 계승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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