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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찾도록 찾아다녀야 할 양 (눅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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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도록 찾아다녀야 할 양 (눅 15:3-7)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설날과 추석같은 명절이 오면 비록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마음 아프기 이를 데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이유는 잃어버린 내 가족을 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에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이 80세 생일에 52세의 신부를 맞아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자칭 노추(老醜, 나이를 먹어 추함)라 하여 빈정댈 만도 한데 온 세상이 흐뭇하여 축복을 보냈습니다. 세계 언론은 한결같이 "옥중 28년간의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인류 애정의 보상이다"라고 했던 말은 여기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것과는 전혀 개연성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 브에노스 아이레스를 헤매는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동화는 어린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아직까지도 케이블 방송에서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국민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등장인물과 구조적인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등장인물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극적 상황이 지나치게 작위적(作爲的,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의식적으로 한 적극적인 행위나 동작)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년 동안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한 김탁구의 삶의 전체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잃은 양의 비유와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탕자의 비유입니다. 

본문은 그 첫 번째인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주님은 그 양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양을 찾아오신 목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양들 가운데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라고 했습니다. 그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아다니는 목자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아흔 아홉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 잃은 양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왜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도록 찾아 다녀야 합니까? 아흔 아홉 마리가 우리에 있는 데도 말입니다. 

Ⅰ. 그 양이 주님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입 니다. 

본문 15장 4절에 『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여기 양 일백 마리의 비유는 숫자적으로 성도 일백 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예정의 본 수에 들어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이스라엘의 총수를 말합니다. 이를 테면 구원 받기로 작정된 자들을 말합니다. 

이 양들이 지금 들판에 있다고 했습니다. 들판은 양들이 살아가는 무대이지만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푸른 초장이 있어 좋지만 사나운 이리나 맹수들이 양들을 삼키려고 두루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들과 맹수들이 다같이 푸른 초장을 찾는데 양들은 풀을 먹고 맹수들은 양을 먹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극적 상황은 악의 세력들이 세상 도처에 믿는 자들을 삼키려고 도사리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15장 6절에 『 나의 잃은 양 』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생들은 주님의 소유입니다(마 1:21). 자기 사람들(요 13:1)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것(요 17:6, 9)이라고 했습니다. 내 것(요 17:9, 10)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왕상 3:7). 너희 주(마 24:42)라고 했습니다. 주 곧 우리 하나님(막 12:29)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딤전 1:14)라고 했습니다. 주 곧 너희 하나님(눅 1:16)이라고 했습니다. 내 주여(계 7:14)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롬 14:9)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인생들을 영원히 소유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고 하는 데는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도 없습니다. 

Ⅱ. 그 양은 잃어버린 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장 4절에 『 …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 』라고 했습니다. 
본문 15장 6절에도 『 … 나의 잃은 양 …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잃으면 』라고 했는데 이것은 본래는 자신의 것이었는데 자의든지 타의든지 그것이 자리를 이동한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점유물이 이전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본래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50장 6절에 『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역은 평균 해발 500m가 되기 때문에 일단 양이 목자를 떠나 길을 잃어버리면 사고를 당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우리에 들어온 양을 매일매일 세어 보아야만 합니다. 만일 한 마리라도 잃으면 목자는 이 곳 저 곳을 분주히 찾아다닙니다. 

여기 『 잃다 』는 말에 대하여 마태는 플라나오( )를 사용하여 양떼 스스로가 벗어났다는 의미로서 복음의 진리를 스스로 거부한 자들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는 "파멸하다"는 뜻으로 아폴뤼미( )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양이 고의, 혹은 악의를 품고 사악한 길을 나간 것이 아니라 그 양이 연약하고 무지하여 올바른 목자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잃어버린 양은 분명히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죄 중에 있는 인생들은 잃어버린 양과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는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버렸다 』(사 53:6)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 우리가 이전에는 양같이 길을 잃었다 』(벧전 2:25)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라고 했습니다(렘 50:6). 『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고 했습니다(렘 50:17). 

그 잃은 양은 한 마리였습니다. 『 하나를 잃으면 』이라고 했습니다(눅 15:4). 그럼에도 그것은 온 천하보다 귀합니다.
마가복음 8장 36-37절에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 하나의 생명을 위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로마서 14장 15절에 『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말라 』고 했습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당위가 여기에 있습니다. 

Ⅲ. 그 양은 반드시 찾아야 되는 양이기 때 문입니다. 

본문 15장 4절에 『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 『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자는 병든 자입니다. 잃어버린 자는 죄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습니다(마 10:6; 15:24). 바로 그 잃어버린 양을 찾는 본질적인 방법이 예수 자신의 희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대신 사망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 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요 10:11). 성경은 언제나 강조하기를 그의 피로 우리를 사 내었다(구속)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9-10절에 『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고 했습니다. 
그 피의 표현이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이, 뜨거운 사랑이, 희생의 사랑이 잃어버린 양을 찾는 동력이 된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창 12:1).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출 3:4).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찾아오셨습니다(수 1:1). 하나님은 사무엘을 찾아오셨습니다(삼상 3:4-11).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을 찾아오셨습니다(삼상 16:13). 
하나님은 솔로몬을 찾아오셨습니다(왕상 3:4-15). 주님은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눅 19:1-10). 주님은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요한을 찾아오셨습니다(계 1:1-8). 주님은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행 9:1-9).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마 4:18-22). 주님은 우리를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에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에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

Ⅳ. 그 양을 찾는 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 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장 5절에 『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도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목적을 성취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요 19:30). 이것이 주님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골 1:24). 목적을 성취하는 것은 정상을 정복하는 쾌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5장 5-7절에 『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은 목자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아흔 아홉 마리가 목자와 잃은 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한 마리를 찾음으로 이제 백 마리가 채워졌습니다. 부족한 한 마리가 채워진 것입니다. 한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완전한 가족의 수가 채워진 것입니다. 

주인은 이렇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은 것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벗과 이웃을 불러다가 흥겨운 잔치를 열었습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 『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고 했습니다. 

곧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두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구원 받기로 작정된 숫자입니다. 이것은 이방 복음 운동의 완결을 의미합니다. 영생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되는 시기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그 시기는 예수 재림 시기가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선택받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됩니다. 
로마서 11장 26절에 『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 온 이스라엘 』이란 모든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 『 모든 이스라엘 』이란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유대인의 충만한 수를 말합니다. 즉 선택된 유대인 전체, 곧 모든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합니다. 곧 십사만 사천입니다. 
계시록 7장 4절에 『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 십사만 사천은 구원 받은 모든 자의 상징 수이지 여자적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7장 9-10절에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7장 13-14절에 『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하나"는 전도의 시작입니다. 그 "하나"는 전체의 마침입니다. 주님은 하나의 생명을 위해 피 흘렸습니다. 하나가 있기에 아흔 아홉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있어야 완전충족이 됩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찾아야 할 양들이 있습니다. 그 양들은 썩어질 세상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 양들이 거기 있어서는 안됩니다. 찾아 내와야 합니다. 주님은 반드시 찾아낼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는 아흔 아홉이 관심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흔 아홉 마리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한 사명에 몸부림 쳐야 합니다. 남의 집의 양을 훔쳐 와서도 안됩니다. 반드시 잃어버린 자신의 양을 찾아야 합니다. 이방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은 우리의 잃어버린 양이 아닙니다. 우리와 신앙고백을 달리 하는 자들은 
우리의 잃어버린 양이 아닙니다. 

찾기 힘들다고 다른 양을 데려올 수는 없는 일입니다. 비록 일백 마리가 넘어 이백. 삼백 마리가 되었더라도 내 양이 아니고 다른 양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찾아야 될 잃어버린 내 양 한 마리는 반드시 찾아 와야 됩니다. 주님은 그 사명을 우리에게 남기고 가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금년도 지난주까지 등록 숫자가 61명입니다. 이렇게 계속 사람들이 전도되어 오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비취리라 』고 했습니다단 12:3). 『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아름다운고 』라고 했습니다(사 53:7).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라고 했습니다(롬 10:15). 
우리 교단 교회는 국내 188개 교회, 해외 327개 교회, 총 515개의 교회입니다. 국내 교인 수는 48,127명, 해외 교인 수 23,306명, 전체 71,433명입니다. 
잃은 양을 찾는 것이 우리 모두의 존재 의의와 존재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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