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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 (창 26: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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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 (창 26:12-33) 
 

어느 부흥집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도중에 성도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그곳은 ‘썰렁해’입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입니까?” 성도들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목사님은 “사랑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두가 재미있어 했습니다. 평소에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듣는 것이 소원인 여 성도님께서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게 한번 맞추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라고 해요~~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디일까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온갖 애교 섞인 목소리로 힌트를 주면서 아내가 말 했습니다. “여보! 이럴 때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아-하 열~~바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살아가면서 열 받는 일 많으시죠? 본문의 이삭이 당한 상황은 정말 열 받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온유한 이삭은 그 열 받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반응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막을 수 없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니다. 온 천지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막을 사람이 있습니까? 우산을 쓰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서 비를 피할 수는 있어도 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작정하신 심판도 막을 수 없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축복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7인 재앙, 7나팔 재앙, 7대접의 재앙을 내리시는데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계시록 6장에 보면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인이 굴과 바위틈에 숨어서 산들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은 계속해서 내리고, 결국 그들은 크고 흰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자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삭을 복주시기로 작정하시니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흉년도 막을 수 없었고, 그랄의 왕 아비멜렉도 막을 수 없었고, 그랄의 목자들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삭이 흉년에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랄에 머물게 됩니다. 이삭은 그랄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100배나 얻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복입니다. 1천만원을 투자해서 10억을 거둔 것입니다. 1억을 투자해서 100억을 거둔 것입니다.
이삭이 백배를 거두고 하나님께서 복주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니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를 합니다. 그들은 이삭이 사용하던 우물을 막아버립니다. 이삭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복주시기 때문이지만 믿음이 없는 그랄 사람들의 생각에는 우물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물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우물을 막은 후에 그랄의 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그랄을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이삭은 나그네로 그랄에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그랄의 왕이 떠나라고 하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팝니다. 두 번째 우물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샘 근원을 발견하여 샘까지 갖게 됩니다. 그러자 그랄의 목자들이 와서 그 물이 자기들의 물이라고 하며 물을 빼앗아버립니다. 이삭의 목자들이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세 번째 우물입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그랄의 목자들과 이삭의 목자들이 다툽니다. 이삭은 다툼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다시 우물을 팝니다. 네 번째 우물입니다. 네 번째 우물을 판 후에는 더 이상 그랄의 목자들이 시비를 걸지 않아서 다투지 않습니다.
   
이삭이 네 번째 우물을 판 후에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가 브엘세바로 올라간 그 날 밤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삭을 번성하게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쳤는데 이삭의 종들이 또 우물을 팝니다. 다섯 번째 우물입니다.
   
다섯 번째 우물을 판 후에 아비멜렉과 그랄의 군대장관 비골이 이삭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그 조약 후에 이삭의 종들이 또 다시 우물을 팝니다. 여섯 번째 우물입니다.
이삭이 그동안 팠던 우물이 6개이고 샘 근원도 얻었습니다. 물이 귀한 중동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우물을 팠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중동지방의 우물은 우리나라 샘물 같은 우물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들의 우물은 석회석을 대각선으로 땅속 깊이 파 들어가야 하는데 150미터 200미터씩 파야 합니다. 판다하더라도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습니다. 많은 품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중동지역에서는 우물 하나를 확보하면 엄청난 재산이 되었습니다. 특히 사막 땅에서 우물을 얻는 것은 횡재에 가까운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서 숨어 지내던 곳 중에 엔게디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2번 가보았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이었습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엔게디만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신기합니다. 엔게디에서 밑으로 내려와 보면 푸른 농장 하나가 있습니다. 그 농장에는 종려나무들이 즐비합니다. 제가 어느 글에서 읽어보니 종료나무가 약 10,000주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 농장주의 말에 의하면 그 나무에 대추야자열매가 열리는데 일 년에 한 나무에서 10만원 수입은 족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농장주는 대추야자 열매로 일 년에 10억 정도를 벌어 드리는 셈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사막 가운데서 이런 종려 농장을 만들었습니까?”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곳은 사막입니다. 일 년 내내 따가운 해가 있습니다. 땅값은 헐값입니다. 그런데 엔게디 물을 보는 순간 저 물을 끌어다가 농장을 만들어야겠다. 일조량도 많고 물도 풍부하여 과일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농장을 시도하였습니다. 지금은 사막이 낙원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이런 곳에서 우물을 6개나 그리고 샘 근원까지 얻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얻은 본문의 기록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이 복주시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처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이삭이 이렇게 특별한 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은 이삭이 받은 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한 사람에게 보상하시는 분입니다. 
   
잠 22:4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대로 이삭에게 보상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가뭄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가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그랄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니 순종은 해야 하겠지만 그랄에 머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머물려면 먼저 그랄 사람들이 허락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랄도 흉년이기 때문에 물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한정된 그랄이라는 공간에 이삭의 식솔들이 머문다면 그랄 사람들과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 이삭의 식솔들의 반대도 있을 것입니다. 환경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볼 때 그랄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그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말씀에 순종해서 그랄에 머물렀던 이삭에게 축복으로 보상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순종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중에 길로 인하여 불평을 하다가 뱀에게 물린 적이 있습니다. 불뱀이 나와서 백성들을 물었습니다. 불뱀에 물리면 처음에는 큰 고통이 없지만 몸에 독이 퍼지면서 온 몸이 붓고 불에 데인 것처럼 고통을 당하다가 죽게 됩니다. 그래서 불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본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뱀의 독으로부터 해독되는 비결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놋뱀을 장대위에 달고 높이 들게 하고 누구든지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놋뱀을 장대위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그 놋뱀을 보면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놋뱀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백성들 중에는 모세의 말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이 있었고, 불순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불순종한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우습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 뱀에게 물려 죽겠는데, 또 뱀을 쳐다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모세의 말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놋뱀이 달린 곳으로 가지 않았고 “놋뱀을 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순종한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들은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말을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놋뱀이 달린 장소까지 찾아갔을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은 신기하게 해독이 되면서 몸에 부기가 빠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이용효 목사님의 설교에 나온 예화입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 온 초기에 미국의 선교사님 사택에 일하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외출하시면서 머슴에게 “비가 올 것 같으니 감나무 밑에 있는 장작을 처마 밑으로 옮겨 놓게” 라고 하였습니다. 머슴은 선교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모든 장작을 처마 밑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선교사님은 머슴을 불러 “여보게 아무래도 저 장작을 창고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라고 말했습니다. 머슴은 “예”라고 하더니 두 말 없이 그 많은 장작을 창고로 다 옮겨 놓았습니다. 오후에 선교사님이 머슴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 한 것 같아 장작은 역시 감나무 밑에서 말려야 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머슴은 “예”라고 하더니 그 날 오후 내내 땀을 흘리며 그 많은 장작을 감나무 밑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순회전도를 떠나기에 앞서 선교사님이 머슴에게 “그래도 비를 맞으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처마 밑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도 머슴은 “예”하고 대답하더니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나중에 선교사님은 미국선교본부에 보내는 편지에 “순종 잘 하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 사람을 미국으로 보냅니다. 신학을 가르쳐 조선의 일군으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써서 보내고, 그 머슴을 미국에 유학 보내어 공부를 하게 한 다음 나중에 한국 신학교의 교장으로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이나 환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하신 것처럼 우리의 순종에 보상해 주시는 분입니다. 
 
2.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갈 6:7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또 마 7:12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요구하는 그랄 사람들에게 우물을 양보를 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점점 더 좋은 우물을 주십니다. 이삭은 우물을 심고 우물을 거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것을 열매로 돌려받게 하시는 데 더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요즘 시대하고는 거리가 있게 들릴지 모르는 예화를 하나 들겠습니다.
   
오래 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울 때 일입니다. 군산에 미군 부대 비행장이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옥봉이라는 마을에 거지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요. 그들은 비행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먹을 만한 것은 먹고, 돈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팔아서 살았습니다. 거기에 아들과 단 둘이 사는 한 미망인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집이 없어 굴을 파놓고 그 굴 앞에 막대기를 걸친 다음 기름종이를 치고 살았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또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서 팔아 그 돈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을 사려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회 건축을 한다.’는 광고를 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는 말씀이 생각난 집사님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굴에서 사는 내가 작은 집 하나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있는데, 이것을 헌금해야 되나? 초가집이나 함석집이라도 있으면 헌금해도 좋은데, 나는 집도 없이 굴에서 사는데…….’ 상황을 보면 헌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씀으로 감동이 왔습니다. 집사님은 말씀에 의지해서 결단하고 어렵게 모은 집값을 헌금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감동을 받고 집사님을 위해 크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에 미군 부대의 목사님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에서 신비로운 빛이 어느 마을을 비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소를 가득히 머금으시고 그 마을의 어느 굴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깨니 꿈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꿈이 너무 신기해서 통역관을 데리고 꿈속에서 본 마을을 찾아가 보았더니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굴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와 아들이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꿈 이야기를 했더니 집사님이 건축 헌금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에 불이 붙은 목사님은 당장 힘을 써 집사님을 미군 부대 식당의 종업원으로 취직시키고 그 아들은 부대 비행장의 경비로 세웠습니다. 그 후로 목사님이 제대하고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내를 잃은 큰 부자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부인에게 감동을 받았다며 그 부인과 아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가족으로 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과 아들이 미국으로 가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물로 심은 이삭이 우물로 돌려받은 것처럼 물질로 심은 집사님이 물질 걱정 없이 살도록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감동 하나를 받았습니다. 2주 후 7월 3일은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보리를 거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인데, 이 시대의 교회들은 전반기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로 지킵니다. 이번 맥추감사절에는 우리 모든 교우들이 전반기 동안 우리를 지켜주시고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전 보다 좀 힘써서 감사하는 절기를 보내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일에 맥추감사절 헌금봉투가 주보에 삽입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 봉투를 받으시고 한 주간 기도하면서 헌금을 준비하십시오. 지나간 다른 절기 때 드렸던 것보다 더 힘을 쓰고 최선을 다해서 드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드린 맥추감사절 헌금은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외부로 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맥추감사절 절기 헌금이 이삭이 우물을 포기하고 더 좋은 우물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감리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속회별로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였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이 어찌나 설거지를 깔끔하게 잘 하는지 여 집사님들이 감탄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집사님은 설거지를 깔끔하게 잘하세요. 남자들 설거지 하는 걸 보면 더러워서 여자들이 다시 하는데...” 그 남자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예. 제가 고등학교 때 수련회를 갔습니다. 선생님들이 간식시간에 먹을 토스트를 준비해 놓은 것을 우연히 보았어요.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 중에 토스트 하나를 들어서 계란을 몰래 살짝 빼먹어버렸답니다. 드디어 간식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계란이 하나 없어진 줄을 모르고 토스트를 나누어주셨지요. 그런데 그 계란 없는 토스트가 정확하게 제 앞에 놓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내가 저지른 행동은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지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성실하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만약에 지금 제가 이 그릇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분명히 다음 주에 제 밥이 그 밥그릇에 담길 것입니다. 나는 성실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살고 있지요.”
심는 대로 거둡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을 거둡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보상하시는 분입니다. 
 
3. 하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사실 이삭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랄 사람들과 전쟁을 할 수도 있었고 우물도 빼앗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고 말합니다. 이삭의 힘은 이미 그랄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우물을 막고 우물을 빼앗는 그랄 사람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삭의 온유함 모습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삭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 보니 결국 이삭이 승리합니다. 이삭은 계속 양보하는데 희한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우물을 파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말하고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싸울 일이 참 많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너무 피곤해서 좀 쉬려고 도심지를 빠져나가 시골길을 드라이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졸음이 와서 잠시 잠을 자려고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막 잠이 들려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던 어떤 아저씨가 자전거를 세우고 차 문을 두드렸습니다. “왜 그러세요?”, “지금 몇 시입니까?”, “2시입니다.”,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다시 잠이 들려는데 또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실례합니다. 지금 몇 시입니까?”, “2시 5분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생각했습니다. ‘아하, 이러다 잠도 못 자겠다.’ 그래서 창에 ‘시계 없음’ 하고 붙여 놓고 또 잠이 들려고 하는데 누가 또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왜 그러시오?”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지금 2시 10분입니다.” 하고는 지나갔습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열을 받았겠습니까? 그렇다고 싸우면 되겠습니까?
   
이삭은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기업체를 빼앗긴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유하게 반응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판 붙고 싶은 상대를 만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악으로 독으로 반응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한 자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주님을 믿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에머슨이 송아지를 우리에 넣으려고 하는데 송아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에머슨은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빠, 좀 도와주세요. 이 송아지가 말을 안 들어요.” 에머슨이 송아지를 외양간에 넣으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써 보았지만, 송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부른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고 송아지를 앞에서 잡아당겨 보았습니다. 

그러나 송아지는 앞다리를 버티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래서 에머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뒤에서 밀어보렴.” 아버지는 앞에서 당기고 소년 에머슨은 뒤에서 밀어 보았지만, 역시 헛수고였습니다. 두 사람은 지쳐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때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늙은 여자 하인 하나가 달려왔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손가락 하나를 송아지의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송아지는 젖을 빨듯이 하인의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하인이 자기 손가락을 송아지에게 물린 채로 뒷걸음질을 치자, 송아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서 외양간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아무리 힘을 써도 할 수 없었는데, 늙은 여자 하인은 너무 쉽게 해낸 것입니다. 이 일은 어린 에머슨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습니다. 힘보다 온유가 더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손해를 볼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온유하게 반응하면 바보 취급 받을 것처럼 생각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온유한 자의 편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의 중심인물은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이태리의 무솔리니와 영국의 처칠 세 사람인데, 이 세 사람을 풍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세 사람이 한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잡기 내기를 했습니다. 제일 먼저 히틀러는 권총을 뽑아 발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총알은 물고기를 맞추지 못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의 실패를 본 무솔리니는 연못에 직접 뛰어 들어가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물고기가 사람보다 빨라서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칠 차례가 되자, 처칠은 연못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연못의 물이 줄어들자 물고기는 가장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한 처칠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비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국가 유공자로서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고 후손들에게 귀한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최후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칼로서 온 유럽을 정복하였지만 결국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정복하였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승리합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복주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늘 좋은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싸우지 마시고 부드러움으로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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