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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끊을 수 없는 사랑!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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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수 없는 사랑!  (롬 8:31-39)


가시고기의 사랑을 아십니까?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정액을 뿌립니다. 수정이 됩니다. 그 때부터 수컷이 알을 돌봅니다. 알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넣기 위해 쉴 새 없이 몸으로 부채질을 합니다. 알을 먹으려는 다른 물고기들의 공격을 막아내어 알을 지켜냅니다.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날 때까지 아버지 가시고기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습니다. 
새끼 가시고기가 알에서 깨어날 때 쯤 아버지는 자식들 옆에서 죽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자식들이 죽은 아버지의 살을 뜯어먹으면서 자라갑니다. 
가시고기의 사랑에 대하여 더 이상 뭐라 말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끊을 수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가시고기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31절 “그런즉 일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무엇에 대하여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걸까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일하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를 다시 한 번 말씀합니다. 몇 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1.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답은 무엇입니까? 31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만일 ... 위하시면’ 이 말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를 위하신다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정확한 번역은 ‘위하시기 때문에(snce)’ ‘위하시는 것이 확실하므로)(surely)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것이 분명한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누가 감히 하나님과 맞서겠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게 사실일까요? 사실이라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 게 사실이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문제는 그런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얼만큼 표현하시냐 하면 이만큼입니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었을 때에 독자를 주셨습니다. 이삭입니다. 딸 열 낳고 열한 번째 아들을 낳은 그런 아들보다 더 한 아들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창22: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들은 번제에 쓸 나무를 한 짐 지고 삼일 동안 갑니다. 아버지는 칼과 불을 들고 뒤 따라 갑니다. 마침내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놓습니다. 칼로 내리 찌려는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창22:12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아끼지 않았다구요? 수백 번이나 수천 번이나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말했을 겁니다. ‘하나님 아들 대신 저를 제물로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 독자인 이삭은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겁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독자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겁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제가 독자 이삭을 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까? 독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님 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훨씬 더 크신 겁니다. 그 사랑이 커서 예수님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까? 가룟 유다의 돈 욕심 때문입니까? 로마의 권력일까요? 아니면 제사장들의 시기심일까요? 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죽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될 때가 있습니까? 다른 생각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또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도 너희에게 무엇인들 주지 않겠느냐? 장래에도 너희에게 무엇인들 주지 않겠느냐?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염려가 될 때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도 물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굳게 서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 좋은 것으로 만들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든지 하나님 편에 서 있으십시다. 그러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2. 누가 우리를 정죄하려고 고소할 수 있을까?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고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죄하려고 고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법정에서 재판이 시작됩니다. 판사가 입장합니다. 검사와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내가 서 있습니다. 

내 양심이 검사가 되어 나를 고소합니다. ‘네가 그러고도 목사냐?’ ‘네가 그러고도 리더냐?’ 유죄! ‘나는 자격 없어’ 죄책감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내려놓아야 해!’ 포기하게 만듭니다. 
선한 양심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율법이라는 검사가 우리를 고소합니다. 너는 성경대로 못 사는 죄인이라고. 
마귀가 검사처럼 내 죄 목록 들춰내어 고소합니다. 마귀는 고소자라는 뜻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판결을 내리십니다. 33-34절 “의롭다 하신 이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조상구 무죄! 조상구 의인!! 무죄판결입니다. 칭의판결입니다. 최종판결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도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의 판결 근거가 분명합니다. 무엇입니까? 34절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게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첫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죄입니다. 우리에게 의를 입혀주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의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변호하고 계십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재판장님 제가 조상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구는 무죄입니다. 제가 부활하여 조상구에게 의를 덧입혀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구는 의인입니다.’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 근거로 판결을 내리신 것입니다. 사50:8-9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대법원 판결처럼 최종 판결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예수님을 믿는 나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의를 제기해도 더 이상 번복되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주님이 물으십니다. 내 사랑에서 너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있겠느냐? 
어떤 사람이, 어떤 환경이, 어떤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합니다.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힘들수록, 고난이 올수록 이것을 이겨내려면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도망가면 집니다. 품으로 들어가면 승리를 주십니다. 

사람의 사랑은 끊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끊어지기도 합니다. 성격이 안 맞으면, 건강이 나빠지면, 직장을 잃어도 끊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스런 것이 사라지면 사람의 사랑의 끈은 끊어지기 쉽습니다. 이런 일들로 부부의 사랑의 끈이 끊어집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우정이 끊어집니다. 성도의 사랑도 끊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사랑은 조건적인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어떤 조건을 보고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조건이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롬5장에 ‘우리가 연약할 때도’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도’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끈은 끊지 않으셨습니다. 
연약할수록 더욱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연약한 자녀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동원되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도 마귀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끈을 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가 총동원 되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신 분입니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맺는 말 
암벽을 타는 등산전문가들이 수백미터나 되는 절벽을 타고 올라갑니다. 올라가다가 그 절벽에 텐트를 칩니다. 절벽 틈에다 밧줄로 텐트를 매어 답니다. 그 텐트 속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잡니다. 믿음이 아주 좋은 분들입니다. 무엇을 믿는 겁니까? 텐트를 매언 단 끈을 믿는 겁니다. 그 끈이 절대로 안 끊어질 줄 믿는 겁니다. 그 믿음으로 절벽에서 편히 잡니다. 

사람이 만든 등산용 끈도 거의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끈은 절대로 끊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 사랑의 끈을 노으시지 않으십니다. 영원토록 놓치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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