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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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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요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은 해피데이, 행복한 날입니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행복한 날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참께 하신 여러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39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교회는 1972년 6월 25일에 창인동에서 창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이곳 부송동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여, 오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초청하여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욱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요?

지난 화요일은 어머니의 1주기 추도식이었습니다. 작년 6월 21일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추도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 모인 자리였습니다. 추도예배 끝부분에 어머님을 기억하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둘째 형수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삼일 전에 하신 말을 기억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제 이 못난 죄인을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는구나!”라는 것입니다. 토요일에 이 말씀을 하시고 월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셋째 형님이 어머님께서 평소에 하셨던 말씀이라며 들려준 말은 “무거운 은금을 지려고 애쓰지 말고 가벼운 복을 지려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동생은 어머님이 늘 외우시던 말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를 외었습니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에게서 사랑받았음 기억하는 자리였기에 슬프면서도 기뻤고, 가슴이 아리면서도 흐뭇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표현입니다만 저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표현이 저의 어머님이 예수님이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어머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어머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어머님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조루즈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년)가 1938년에 그린 예수님의 모습에서 어머님을 보았습니다. 루오라는 화가는 전능하고 영광에 찬 예수님을 그린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려는 고난의 길을 걷는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이 예수님은 산 위에서 가르치실 때,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마 5:3). 또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마 5:4). 이것은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계셨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행복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야 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즉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I. 사랑
  
성경은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6a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놀랍기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온전한 사랑입니다. 

1.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누리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각 사람에게 온전하고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셨고 또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자식을 둘씩이나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고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그 어머니는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을 책에 담아냈는데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랍니다. 그런데 책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어머니가 미안하다고 해야 합니까? 미안한 것으로 치자면 먼저 간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해야지, 왜 어머니가 미안하다고 합니까?

그런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머니는 자식 둘을 먼저 떠나보낸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엄마라고 자책합니다. 가난한 생활에 지치고 힘들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변변히 해주지 못한 것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힌다는 것입니다. 남매가 불행하게 삶을 마친 것을 자신이 가난한 생활에 지치고 힘들다는 핑계로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 것 때문이라고 자책합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라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가 됩니다. 가족이라서 다 이해할 것이라고,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가슴에 못이 박힐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외침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을 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실까요?

다시 요한복음 3장 16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6a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독생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누리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엄청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로 표현되는 분을 죽게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것은 인간이 절대 절망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분신으로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인간은 절망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절망은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사랑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비극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그 자식이 그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비극입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사랑하는데 그 학생이 그 선생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비극입니다. 창조 이후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는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릅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이것이 근원적인 절망입니다. 이 절망을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죄 가운데 있습니다. 인간은 거짓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결정적인 방법으로 친히 사람이 되어, 독생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제가 받았습니다. 이 사랑은 당신에게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이루다 말로 할 수 없는 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당신을 위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그 값을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값을 지불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II. 생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생명은 어떤 생명일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6b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생명은 멸망하지 않는 영생입니다.

1. 멸망치 않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오랫동안 길게 오래오래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을 영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영생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인간은 저 세상에서의 삶을 위하여 죽습니다. 의학이 발전되어 무병장수한다고 해도 인간은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였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죽음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 후에 있는 심판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저 세상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불행한 삶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영원한 불행입니다. 이 불행을 오늘 말씀은 ‘멸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멸망하지 않는 영생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심판입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통과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왕 제 어머님 이야기로 시작하였으니 조금 더 하겠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두 주일 전,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달려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를 알아보고 소리를 내지 않으셨지만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어머님이 좋아하던 찬송을 줄줄이 부를 때마다 ‘아멘! 아멘!’하며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어서면서 “다음에 다시 뵈어요.”하였더니 고개를 끄떡거리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나흘 전에 다시 들려서 찬송을 불러드렸더니 힘이 없으시지만 여전히 ‘아멘! 아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어서면서 “다음에 다시 뵈어요.”하였더니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 말고 그 방안에 누가 있기라도 하듯이 두리번거리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둘째 며느리에게 ‘이제 이 못난 죄인을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아 주심, 이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이 몸을 벗은 후에 영혼이 하나님 계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으셔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은 멸망,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것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충분한 값을 치루시고 멸망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다시, 요한복음 3장 16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6b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는다[pisteuvw/피스튜오]’은 ‘설득되다’는 뜻이 있습니다. 설득되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맡기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설득되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2.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아야 아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꼭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척 보면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번 보아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는 척 보면 아는 것이 있는가 하면 깊이 사귀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머리를 써서 배워야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하여 배우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믿어야 아는 신앙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여야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1892년, 미국의 조지 윌슨이라는 한 남자가 우체국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강도와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유죄가 입증되어 결국은 교수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러자 주위 친구들이 그를 위해 탄원하였습니다. 다행이 앤드류 잭슨 대통령으로 부터 사면장을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조지 윌슨은 죽겠다고 고집하면서 사면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보안관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면을 하였는데 정작 당사자가 거부를 하니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앤드류 잭슨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혹스럽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사면해 주었는데 사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형을 당하겠다니 여간 곤혹스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미 연방 법원으로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 대법원장 존 마샬은 다음과 같이 최종 판결하였습니다.

“사면은 한 장의 종이일 뿐이며 그 종이의 가치는 전적으로 관계된 사람의 수락여부에 달려 있다.”

결국 조지 윌슨은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으나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 구원에 관한 모든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면 됩니다. 대통령의 사면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로 쓴 사면장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면 그것으로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독립 운동가이자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120세는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 테야!”

월남 이상재 선생이 영원히 살겠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믿음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는 멸망과 영생이 됩니다. 믿는 자는 이미 현세에서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면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믿음에 굳게 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어머님을 통하여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어머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창문이었습니다. 비록 방안에 있어도 창문을 통하여 밖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머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님도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어머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의 충실한 전달자였을 뿐입니다.

지금 이곳에 믿음의 어머님을 두지 않으셨다고 실망하는 분은 계시지 않으시겠지요? 어찌하여 어머님께 사랑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는 설교자인 저를 창문으로 이용하셔서 어떤 분에게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지금 여기에 하나님을 믿어지게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방법이 서툽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툽니다. 그래서 종종 오해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을 박는 것입니다. 가장 큰 불행은 사랑받지 못했다는 절망입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사랑받은 기억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준비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믿음으로 이 땅에서부터 저 세상에서까지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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