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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나리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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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환(동화작가)

우리 동네 입구에 들꽃 같은 빵집이 하나 있다. 빵집 이름은 파리바게트도 아니고, 크라운베이커리도 아니고, 뚜레쥬르도 아니다. 주인 아들의 이름을 붙여 만든 아주 조그만 빵집이다.

주인 아주머니 얼굴은 언제 보아도 개나리꽃이다. 빵집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들은 굳이 빵 값을 묻지 않는다. 빵을 고르고, 말 없이 돈을 주고, 말 없이 거스름돈을 받는다. 바스락바스락거리는 비닐봉투 소리도 저녁 내내 숨을 죽인다. 주인 아주머니가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를 해도 손님들은 말 없이 웃으며 빵집을 나온다.

빵집 한 쪽에는 개나리꽃 같은 노란 등불이 매달려 있다. 중학교 다니는 빵집 아들의 공부방이다. 공부방인데 방이 없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아무런 칸막이도 없이, 몸 누일 한 조각 방바닥도 없이, 나무 십자가 매달린 책상에 삼단 책꽂이 하나가 공부방의 전부다. 빵집이 공부방이고 공부방이 빵집이다. 숫기 없는 빵집 아들은 출입문에 돌아 앉아 늘 공부만 한다. 손님들이 삐거덕 삐거덕 시끄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도 동요 없이 공부만 한다. 불평 없이 신나게 공부만 한다. 빵집 아들은 아버지가 없다. 빵집 아들은 가난한 엄마를 위해 밤마다 눈물 같은 강을 건넌다.

빵집 아주머니는 아들의 뒷모습으로 빵을 만든다. 빵집 아들은 엄마의 가난으로 빵을 만든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들은 사랑하는 이의 속눈썹처럼 둥글고 예쁘다. 엄마와 아들은 서로의 배를 채워주는 빵이다. 서로를 비춰주는 환한 등불이다. 빵집 앞 살구꽃이 몽개몽개 피어나는 봄날이면 별들도 이따금씩 소풍을 온다. 가까운 숲속으로 북한산 소쩍새도 소풍을 온다. 밤 12시가 지나고 빵집이 문을 닫아도 개나리꽃 같은 빵집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 차가운 빵집 바닥에 전기 돗자리 깔고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엄마가 안쓰러이 말해도 아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을 건넌다. 웃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눈에 라일락 흰꽃송이가 하늘하늘거린다. 사랑이 깊어지면 웃음도 눈물겹다. 사랑이 깊어지면 가난도 눈부시다.

빵집 아들은 나의 선생님이다. 천둥치는 밤을 지나, 폐허를 지나, 추운 겨울을 건너왔지만 나는 봄이 될 수 없었다. 소리쳐도 소리쳐도 시냇물은 수평선을 만들 수 없었다. 작은 일에 불평을 하고, 작은 일에 화를 내고, 작은 일에 걸레를 입에 무는 나에게 빵집 아들은 선생님이다. 늙으신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핀잔을 주는 철없는 나에게 빵집 아들은 빛나는 거울이다. 빛나는 뉘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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