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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팀웍이 만들어 가는 믿음의 역사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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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웍이 만들어 가는 믿음의 역사 (출 17:8-16)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함께 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능력도 함께 하는 능력입니다.  사람은 함께 할 때 아름답습니다.  혼자보다는 함께 할 때 더 큰 힘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옛말에 백짓장도 받들면 낫다고 했습니다.  혼자서는 힘들어도 같이 하면 즐겁고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머리를 맞대고 땀과 열정과 노력을 가지고 함께 만들어 가는 인생 이야기,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깊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함께 감당하십시오.  혼자서 아파하지 말고 함께 나누려고 하십시오.  누군가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그를 찾아가십시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대상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신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 헤맵니다.  사랑을 받겠다고, 사랑을 받으려고, 자신만을 사랑해 줄 대상을 찾아 헤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만나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언제나 아픔과 상처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찾아갔지만 아픔을 가지고 헤어집니다.  위로를 받으려고 찾아갔지만 더 큰 무거운 짐을 안고 돌아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바른 인간관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내가 진지한 마음으로 찾아가 그와 관계를 하면 그를 사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사랑보다 만남의 관계가 먼저 앞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창조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다리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은 찾아오시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나타납니다.  

죄악된 인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을 사랑하시고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무너진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시고자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올바른 관계는 그를 위해서 내가 스스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와의 합력적이고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주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먼저 서로에 대한 부족함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공동체 속에 뛰어드십시오.  그리고 그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은 행동하지 않는 자를 도운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시고자 우리들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웃을 찾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을 열심히, 뜨겁게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왔든, 어떤 상황에 있든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희망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붙들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붙잡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다시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 가십시오.  주변에 머물러 서서 혼자 가슴앓이를 하지 말고,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아름답고 좋은 만남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축복된 만남을 만들어 가십시오.  우리 인생에서 축복된 만남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물론 사람과의 공동체 속에서 때로는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공동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주위에 보면 다수의 군중들 속에 묻혀서 조용히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공동체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성숙을 배워갑니다.  관계 속에서 사랑을 경험합니다.  관계 속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는 관계가 단절될 때 더 깊은 고독과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것은 자신을 파멸과 절망으로 이끄는 무서운 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약돌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들이 모나지 않고 둥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약돌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구르고 구르면서 다른 돌들과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있었겠습니까?  돌과 돌들이 부딪힙니다.  부딪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모나고 볼품없었던 돌들이 아름다운 조약돌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상처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축복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서 아름다운 믿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십시오.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꿈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과거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공부 잘하는 엘리트형의 사람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유수 대학을 나와야 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음을 근간에 와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엘리트형의 사람들을 채용했더니 자기만 알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여차하면 자신의 더 나은 자리를 위해서 공동체를 배신하더라는 것입니다.  수년에 걸쳐서 엄청난 재정을 투자해서 개발한 기술을 빼돌려서 다른 회사에 넘겨버리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엘리트형보다는 사회 통합적인 섬김의 인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얼마나 지속적으로 사회적 봉사를 많이 했는가를 봅니다.  더구나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해병대와 같은 특수 부대 출신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희생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사람들은 개인주의보다는 팀웍을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1세기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함께 스마트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요구합니다.  21세기의 기업도 혼자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함께 팀웍을 이루어서 일하는 기업들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곰처럼 혼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맙니다.  기억하십시오.  팀웍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팀웍이 더 큰 기적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살 줄 모르는 자들을 축복한 예가 없습니다.  함께 열심히 일하고, 함께 뜨겁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러나 팀웍을 이루어서 스마트하게 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스마트하게 함께 일하십시오.  함께 일해야 됩니다.  함께 일하는 팀웍, 이 팀웍이 바로 되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몇 배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1 더하기 1은 2입니다.  그러나 팀웍이 가져오는 효과는 그것이 100이 될 수도 있고, 1,000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함께 살아가는 팀웍입니다.  팀웍은 모든 생태계의 기초입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생태계는 함께 일하고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에 짝이 있게 하셨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음과 양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생태계의 기초는 팀웍입니다.  팀웍이 무너지면 생태계의 존재가 무너집니다.

그런데 인간이 팀웍을 할 줄을 잘 모릅니다.  더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팀웍이 잘 안되기로 유명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혼자서는 북 치고 장구 치고 잘 합니다.  그런데 두 세 사람 이상 모이면 안 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 보면, 소위 나름대로 신앙에 좀 열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혼자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큽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잘난 사람, 아무리 잘난 나라, 아무리 잘났어도 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겸손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온유해야 됩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에게서 배울 수 있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팀웍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함께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훌륭한 지도자입니까?  팀웍을 만드는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모든 조직과 사람들에게 함께 하는 팀웍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자꾸만 흑백논리들을 가지고 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자기 판단과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두드려 죽여 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모임의 장이 되면 생명을 걸고 헌신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 모임의 장에서 물러나면 완전히 방관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방관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딴 죽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네가 회장이 되기만 해 봐라.  나도 한 번 골탕을 먹일 것이다.  내가 어디 협조를 하나 봐라."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면서 한 공동체 안에서 관계성이 깨어지고, 팀웍이 무너진 채로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나쁜 심보입니까?

우리는 두 가지를 정리하셔야 합니다.  먼저는 지금 내가 가진 삶의 목표가 내 조직의 목표와 조화를 이룰 수가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헌신자들로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것이 정리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내가 팀웍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정리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팀웍이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시작은 아멜렉 족속의 도전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본문 8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여기에서 주어는 아말렉입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있는 상황에서 아말렉이 싸움을 걸어온 것입니다.  싸움을 걸어왔다는 것은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말렉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그들이 쉽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허술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을 해도 모든 사람들은 아말렉이 쉽게 이길 싸움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광야로 나온 백성들이 군대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전투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기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8절은 이 싸움을 이렇게 간단히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러나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25장 17-18절에 보면, 아말렉 족속이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공격했는지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아말렉 군대가 오랜 행진으로 지친 이스라엘의 등뒤에서 공격했고 그것도 특별히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대오에서 뒤로 떨어질 때마다 후방에서 기습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말렉 족속이 이미 싸움을 많이 해 보았고 전술에 능한 전사들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힘든 싸움을 해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먼저 아말렉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과 갈등 관계에 있었던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창세기 36장에 보면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인 엘론의 딸 아다와 결혼하여 엘리바스를 낳고, 그 엘리바스가 아말렉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아말렉 부족의 조상은 아말렉인데 그는 에서의 손자였습니다.  그 아멜렉 족속이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어떻게 싸우는가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먼저 모세는 여호수아로 하여금 최전선에 나아가서 싸우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기도하러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호수아가 쉬웠을까요, 아니면 모세가 쉬웠을까요?  우리는 이 상황을 놓고 모세가 쉬운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번 모세의 입장에 되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지팡이를 들고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 지팡이를 들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손을 들고 서 있어 보십시오.  얼마나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모세는 오래지 않아 그가 피곤을 느끼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노동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전투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싸우는 전투 이상으로 기도는 중요한 영적 전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사람들은 기도를 회피합니까?  왜 우리는 기도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지 못하는 것입니까?  기도가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습니다.  이 시간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습니다."

이제 선배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요?  그는 여호수아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힘을 힘입어 여호수아는 르비딤의 골짜기에서 용감하게 싸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세와 여호수아의 팀웍, 이 공동체의 팀웍을 통해서 그들은 바로 이 한 판의 영적 전쟁에서 멋진 승리를 이끌어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믿음의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오늘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도 이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이 믿음의 공동체를 통하여 교제를 하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전쟁터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팀웍을 만들어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아니라면 교회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혼자서 가정에서 신앙을 지키면 됩니다.  공동체가 아니라 가정에서 혼자 신앙을 지키면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시험에 빠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믿음의 공동체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때로는 상처를 받고, 시험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를 통하여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목회자의 설교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목회자의 설교가 중요합니다.  한 주간 동안 세상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영적 양식을 제대로 공급하는 것은 목회자의 중요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회자를 통해서만 은혜를 누리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팀웍을 이루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감동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각각의 자리에서 열심히 섬겨주는 헌신된 성도들을 통하여 세워 가는 이 팀웍이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체들의 은사에 따라 각각의 부장을 세우고, 셀리더를 세우는 것도 이런 분담 사역을 통해서 공동체의 승리를 누리고자 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봉사하고, 서로를 섬겨주면서 거기에서 공동체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4장 9절에 보면 전도서 기자는 팀웍의 아름다운 유익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10절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공동체가 없으면 화가 있다.  목회를 하면서 가끔 장례식에 가보면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과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례식에 가면 너무 썰렁합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공동체에서 교제하던 사람들은 우리 가족과 내 인생의 슬픔의 시간에도 서로가 와서 붙들고 격려하면서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거룩한 축제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세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세상적인 공동체는 지극히 계산적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적인 공동체는 이 땅의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는 희생적입니다.  헌신적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아가페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공동체는 우리의 생명이 끝나도 저 영원한 천국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거룩한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거기에서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와 축복과 영광을 누리십시오.  무엇보다도 공동체 속에서 믿음의 팀웍을 이루어서 이 험난한 영적 전투에서 멋진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명기 25장에 보면,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렬에서 뒤에 처진 약한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했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자는 무리들 속에 있는 얼룩말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사자는 얼룩말의 무리 뒤를 따라가다가 그 무리에서 처져 떨어져 나온 얼룩말을 발견하면 잽싸게 달려가 잡아먹습니다.  믿음의 행렬에서 뒤 처진 사람들,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진 사람들, 교회의 비전에서 멀리 처진 사람들, 믿음의 확신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 중심자리에 몸을 던지지 못하고 변죽이나 울리면서 구경꾼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오늘 사단의 공격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공동체를 벗어나 주변인으로 서지는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함께 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시험에 듭니다.  베드로가 시험에 빠진 이유도 그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 갔다는 것을 공관복음에서 똑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관복음의 세 명의 기자가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에 시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멀찍이 서 계시지 마십시오.  주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공동체의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가까이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길은 어차피 팀웍이 만들어 가는 역사입니다.  빨리 자기를 깨뜨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고 하는 눈을 뜨십시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붙잡아야 할 숙제입니다.  가장 강력한 팀웍!  교회를 향한 팀웍!  가정을 향한 팀웍!  기업을 향한 팀웍!  지금 이 시대는 강한 팀웍을 가진 조직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에 아름다운 팀워커가 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때 더 큰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강한 팀웍을 이룰 때 우리는 더 큰 역사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혼자서는 힘들고 한계가 있지만 그러나 팀에 들어가면 내 능력과 내 재능이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팀웍이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팀웍이란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현재의 모습대로 상대를 해주면 현재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앞으로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하는 모습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희망을 갖고 행동하십시오.  모든 무지와 무력감을 회복하십시오.  합해진 믿음이 더 큰 기적을 낳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역할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머리가 되려고 하면 그 공동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각각의 은사를 따라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모세는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그의 손이 내려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세 사람 다 노인이었습니다.  무슨 힘이 남아 있어서 누가 누구의 팔을 붙들어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팔을 붙들어 줄 때 놀라운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혹여 이렇게 반문하는 분이 계실는지도 모릅니다.  "나 혼자 일어서 있기도 힘에 지치는데 내가 누구의 팔을 붙들어 준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부족한 목사의 팔을 붙들어 주면, 내 남편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내 아내의 팔을 붙들어 주면, 내 셀리더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힘에 지쳐 쓰러져 있는 셀가족들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의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서 불평이 없는 사건, 원망이 없는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처음으로 원망과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팀웍을 이루어서 하나가 되었을 때 젊은이들은 피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고 골짜기의 전쟁을 치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팀웍을 이루어서 하나가 되었을 때 노병들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아픈 팔을 서로 붙들고 몸부림치며 기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들의 심장 속에는 불평이 없었습니다.  원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재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 승리의 깃발이라고 말입니다.

톰 워샴의 기러기 이야기에 보면, 기러기에 대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러기는 추운 겨울을 피해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만 킬로미터를 날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그리며 머나먼 여행을 합니다.  모든 기러기들이 날기 위해서 날개를 퍼덕이면 기류에 영향을 만들어서 그 뒤에 있는 새에게 양력이 작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 보다 71% 정도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들은 머나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에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울음소리가 아니라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고 합니다.

기러기는 그렇게 4만 킬로미터의 머나먼 길을 옆에서 함께 날개 짓을 하는 동료를 의지하면서 날아갑니다.  기러기 한 마리가 대열에서 이탈하면 대기의 저항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탈했던 기러기는 재빨리 대열에 다시 합류합니다.  그리고 선두에서 날아가는 기러기가 지치면 뒤쪽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는 금방 다른 기러기가 대신합니다.

만약에 어느 기러기가 총에 맞았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하여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서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까지 함께 지키다가 무리로 다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기러기처럼 아주 멀고 험한 길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폭풍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곳을 뚫고 날아가는 아주 힘든 여정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함께 하는 팀웍이 필요합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가 함께 가야 할 저 영원한 본향을 향해서 믿음의 팀웍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길에서 힘들고 지칠 때 먼저 당신의 등 뒤에서 당신을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껴보십시오.  때때로 당신의 한계를 느낄 때 힘 있는 그분의 손길을 느껴보십시오.  쓰러져 일어날 수 없을 때 당신에게 힘을 주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와 식구들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저 영원한 본향을 향해 함께 가야할 믿음의 형제자매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저는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팀웍으로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먼저는 존경만 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섬김의 자리에 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는, 인기만 얻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낮은 자리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적으로 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는, 칭찬과 칭송만 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먼저 칭찬하고 사랑하는 존경하는 겸손한 자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네 번째는, 대우만 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먼저 대접하고 베푸는 일에 앞장 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섯 번째, 인정만 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멸시천대 십자가를 지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는 삶을 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혹여 내가 천대받는다고, 멸시받는다고, 조롱당한다고, 무시당한다고 억울해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주님 걸어가신 골고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충성되게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사명자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969년에 폴 사이먼(Paul Simon)이 기독교 신앙을 밑바탕으로 작사 작곡했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가사를 들려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신이 맥이 빠져 어두운 기분일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넘칠 때,
내가 눈물을 닦아 드리지요.
나는 당신 편이거든요.
세상의 바람이 차갑고 친구도 없을 때,
고뇌의 강에 걸린 다리처럼 내가 몸을 던져 드리지요.
당신이 충격을 받았을 때, 정처도 없이 헤맬 때,
괴로울 때 내가 위로해 드리지요.
내가 당신의 몸을 대신해 드리지요.
어둠이 오고 고통이 주위에 가득 찰 때,
고뇌의 강에 걸린 다리처럼 내가 몸을 던져 드리지요."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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