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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전에 꿈꾸지 못하던 일 (창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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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꿈꾸지 못하던 일 (창 15:1-11)

남자의 신앙과 여자의 신앙은 성격이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더라도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 여성의 신앙을 들라면 한나를 들 수 있습니다. 한나는 눈물의 기도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자신의 억울함, 자신의 한스러움을 기도로 하나님께 쏟아놓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께 한 서원을 지킵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신앙 스타일입니다. 대조적으로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기도한 경우도 있지만 남자는 남자대로 믿는 스타일이 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처럼 믿지 않는다고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대표적인 남자 신앙인을 들라면 다윗과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영성에 대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편을 근거로 평가하려고 하지만 시편을 제외하고 사무엘상, 하를 읽어보면 거기에는 시편과는 좀 다른 다윗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무엘상과 하에 나오는 다윗의 모습은 매우 남성적이고 단호하고 그리고 단순한 신앙을 소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을 쫓아갈까요 라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서 이기는 그런 식의 신앙이었습니다. 좀 더 대표적인 신앙의 남성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데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남자가 제일 듣고 싶어 하는 칭호 중의 하나가 아버지입니다. 영화 뮌헨을 보면 날보고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call me papa-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주인공은 저는 이미 아버지가 있습니다 라고 거절을 합니다만 마피아 보스를 대부라고 부르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godfather-대부. 마피아를 조직이라고 부르지 않고 패밀리라고 하고 또 보스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남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많은 사람들을 아버지와 같이 거느리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대부, 국부, 교부 이런 말이 있는 것입니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는 많은 전쟁고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김일성을 아버지처럼 여겼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국가가 그들을 키워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김일성이 죽었을 때 통곡하던 사람들은 연기하는 게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아버지처럼 받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전쟁을 일으킵니까. 아무튼 제가 갖고 있는 소원도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영화 대부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목사도 일종의 아버지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 말은 father, 영어권에서는 신부님을 father라고 불러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인데 아브라함은 그 이름이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한국어와 샘족어에서 같은 단어가 바로 아바, 아버지라는 단어입니다. 아부다비라는 국가의 이름은 양의 아버지라는 뜻인 것처럼.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이러니는 이름은 아버지인데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주목할 것은 오늘 본문까지 아브라함은 한 번도 하나님에게 자기에게 자식을 달라고 기도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소원은 자식을 얻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아브라함이 그 소원을 하나님께 아뢨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에 처음 이 주제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아브라함이 아니고 하나님이 언급하셔서 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장 큰 개인적인 소원을 아브라함이 꺼내지 않고 하나님이 언급하셨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이루십니다. 

왜 그랬을까, 왜 아브라함은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을까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마는 아마 아브라함은 이미 마음을 접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차라리 그 소원을 접는 것이 마음에 평강을 얻는 길입니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그 소원을 접는 것이 마음에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접을 때는 힘들지만 한 번 접고 나면 일단 마음에 평강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고 

또한 아브라함은 공과 사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일은 그에게 개인적인 일이 아니고 공적인 사명입니다. 역사적인 사명이고 거시적인 직분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과 대비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앙을 사적인 소원을 이루는 방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건 그러기에는 너무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입니다. 사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가깝다는 사실을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소원을 모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뢰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속에 접었다고 해서 하나님도 접으신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우리의 소원을 모르는 게 아니고 무시하시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참신앙의 증거가 있다면 내가 내 소원을 아뢰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의 소원을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아브라함이 자기의 무자함의 문제를 먼저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원래 고등학생이었을 때 벌써 그때 목사가 되기로 서원을 하고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른 일에 대해서 욕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길을 열어주셔서 명문대에도 가게 되고 로스쿨도 가게 됐습니다. 그게 제가 애초부터 계획한 게 아닙니다. 그런 대학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입니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하지만 제가 주의 종이 되기로 결단을 하고 났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던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셨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제가 야심만만하고 교육열이 높아서 그런 길을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는데 제 삶을 주님께 드리고 났더니 전혀 생각하지 않던 방법으로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서 아주 쉽고 평탄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마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진리입니다마는 되풀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가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다보면 우리 스스로는 꿈꿀 수 없고 또 기대할 수 없었던 길을 주님이 열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그게 진짜 축복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얻을 때 욕심으로 얻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결과는 같을지 몰라요.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 그러나 내가 욕심을 갖고 애써서 얻는 것과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얻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평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나이에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셨어요.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장차 한국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미국의 대표적인 부흥사였던 오럴 로버츠 목사는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something good is going to happen to you-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곤 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신, 합력하여 선을 이룸, 좋을 선자지요. 합력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말인데 이 좋다는 말, good 이라는 말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개념이요 매우 성경적인 단어입니다. 

세상은 운수를 말하고 재수를 말하고 대박을 말할 수는 있지만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좋은 것이라는 개념을 갖지도 못합니다. 타종교도 마찬가지에요. 타종교도 거룩함을 말할 수 있고 자비를 말할 수 있고 평강을 말할 수 있지만 좋다는 개념은 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고, 좋은 것을 주시고 모든 선한 선물이 위로부터 내려온다, 좋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결과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좋은 것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다만 어떻게 되는 것이 좋은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주로 단기적인 선을 원합니다. 단기적인, 당장 좋은 결과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그게 우리가 당장 바라는 선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선은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산 너머 산이라고 또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더라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야 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되고, 좋은 배우자를 얻어야 되고, 또 손주를 얻어야 되고…, 이런 식으로 산 너머 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기적인 것들 단기적인 소원은 그것을 이루었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인생은 끊임없는 염려와 고민의 연속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인 선한 결과를 얻었더라도 유효기간이 짧아요.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단기적으로도 좋고 장기적으로도 좋습니다. 단기적으로 당연히 좋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두고두고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신 것은 단기적으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큰 기쁨이 되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을 이루게 하시고, 또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이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당장 기쁜 것으로 끝난 게 아니고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이름 그대로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어요. 

처음부터 이것을 이루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처음부터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러 오신 게 아니고 갈릴리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어부들을 제자로 삼음으로 시작하셨어요. 이스라엘 땅에서 시작하셨어요. 그것이 누룩처럼 번지고 자라나서 땅 끝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첫술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처음에 작다고 멸시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를 두고두고 지켜봐야 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 또 하나님이 주신 은사, 사명, 꿈, 하나님이 주신 믿음, 이것은 잠깐 쓰고 버릴 것이 아닙니다. 용도 폐기되는 게 아니에요. 인스턴트가 아니에요. 인스턴트 라면처럼 먹고 버리는 게 아니고 지금 경험하고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선반에 쌓아두고 먼지가 쌓이게 하면 안 되고 매일매일 그 믿음이 내 안에서 자라나게 하고 그 믿음의 영역이 더 넓어지게 하고 그래서 오늘도 그 결과를 보고 내일도 그 결과를 보고 내년에는 그것이 더 커지고 더 자라나고 다음 세대에도 그 열매를 먹고 두고두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표본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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